[김세훈의 원과 네모] 비키니, 반바지 동시 허용은 솔로몬의 선택

조회수 2012. 4. 1. 09: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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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배구연맹(FIVB)은 최근 여자 비치발리볼 선수들의 유니폼 규정을 완화했다. 기존 삼각팬티형 짧은 비키니 유니폼과 함께 반바지와 소매가 있거나 민소매 상의도 공식 유니폼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는 런던올림픽 예선부터 적용된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비치발리볼은 섹시어필을 강조하며 상당히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래서 이번 결정을 놓고 득이 많다, 실이 많다는 식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논란 자체가 불필요하다. FIVB로서는 잃을 것보다 얻을 게 훨씬 많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요즘 스포츠계는 미디어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종목은 국제무대에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도태되게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비치발리볼은 섹시미로 꾸준히 인기를 누려왔다. 한양대학교 글로벌산업학과 황미야 연구원은 "비치발리볼은 특정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해 눈요기적인 신체적, 성적 대상의 이미지를 고양함과 동시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 선수에 대한 '훔쳐보기'를 유도해왔다"고 표현했다.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비치발리볼 사진은 엄청나게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다. 검색창에 비치발리볼을 칠 경우 나오는 추천 검색어도 섹시미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언론들도 비치발리볼 사진을 '상품으로서의 신체', '눈요기 대상으로서의 신체', '쉽게 절단할 수 있는 사물'로 표현한다. 이른 바 '성물신화(fetishism of sexuality)'다. 이는 다수 언론과 다수 팬들이 비치발리볼 선수들을 성적 감정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관찰하는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부인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런 환경 속에서 비치발리볼은 자기 영역을 굳건히 지키며 성장해왔다.

<다음 검색창에 비치발리볼을 치면>

<다음에서 비치발리볼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http://search.daum.net/search?w=img&nil_search=btn&enc=utf8&q=%EB%B9%84%EC%B9%98%EB%B0%9C%EB%A6%AC%EB%B3%BC

이런 상황 속에서 반바지, 민소매 또는 소매있는 상의 유니폼 허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참가국가 확대 효과다. 이는 어떤 종목이든 글로벌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브라질, 미국 등에서 비치발리볼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중동에는 여성들의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는 이슬람국가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국가들도 육상,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서 여성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점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여권신장을 요구하는 국내외적인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비치발리볼이 반바지, 소매 있는 상의를 허용했다는 점은 여성들의 노출 등을 터부시하는 국가들이 비치발리볼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비치발리볼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앞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상업화, 상품화,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다. 이런 것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글로벌 메인스포츠가 될 수 없게 현실이다.

비치발리볼은 섹시즘으로 인기를 누려온 반면 섹시즘 때문에 곤혹도 많이 치러왔다. 그런 면에서 유니폼 규정 완화는 그런 비판과 비난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반바지, 소매상의를 허용한 만큼 이제 유니폼을 선택할 권리는 국제배구연맹이 아니라 선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국제배구연맹은 비키니 유니폼을 버리고 반바지를 택한 게 아니라 둘 다 허용했고 그래서 "선수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넓히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즉 비치발리볼과 관련돼 끊임없이 제기돼온 선정성 논란이 이번 결정으로 상당 부분 수그러지게 된다. "선수들이 비키니 유니폼을 택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식으로 말하면 선정성에 대한 비판에서 국제배구연맹은 무척 자유로워진다. 인권 보호, 인권 존중의 측면으로 봐도 이번 결정은 바둑으로 말하면 꽃놀이패다.

조금 예민한 문제이지만 이번 유니폼 완화 규정은 이슬람국가에 대한 서구세계의 정치적인 노림수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서방국가는 줄기차게 이슬람국가의 개방을 요구해왔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개방보다는 체제 붕괴 또는 체제 해체를 노리는 걸로 보는 게 옳다. 다른 종목 경기 연맹은 이미 이슬람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유니폼 규정 등을 많이 완화했다. 히잡을 쓰는 축구 선수와 육상 선수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이와 마찬가지로 비치발리볼이 유니폼 규정을 완화하면 이슬람국가 남성과 여성 모두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일 게 분명하다. 이슬람국가 여성 배구 선수들이 비치발리볼을 할 날도 올 것이며 이 후에는 수영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조성식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서구스포츠단체들이 여성 성해방, 남성처럼 운동할 권리 등 여성 해방, 여권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반서국적인 분위기가 강한 이슬람국가에 접근한다면 이슬람국가와 여성들은 큰 문화적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유니폼 완화 결정이 비치발리볼의 인기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당장은 그럴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걱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비치발리볼 선수들 스스로가 비키니 유니폼 등 섹시한 의상을 입어야만 비치발리볼이 상품성이 있는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키니 유니폼에서 광고가 실리는 곳을 살펴보자. 브래지어와 팬티 뒤쪽 정중앙이다. 이는 팬들과 언론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는 걸 의미한다. 팬들이 보지 않은, 언론이 관심없는 광고는 생명력이 없다.그런 의미에서 기존 선수들이 비키니를 벗고 반바지, 소매상의로 갈아입는 경우는 있어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 반바지, 소매상의를 유니폼으로 입는 선수가 등장하면 비치발리볼은 새로운 이슈를 낳게 된다. 반바지, 소매상의 유니폼은 그동안 비치발리볼에 참가하지 않은 새로운 나라들이 입을 가능성이 높다. 출전 국가, 출전 선수들이 다양해지면 그 국가에 있는 기업 또는 그 국가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은 기업들은 앞 다퉈 반바지, 소매상의에 자신의 로고를 붙이고 싶어 할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이런 기업들은 국제배구연맹이 유니폼 규정을 완화하지 않았다면 비치발리볼 스폰서로 참여하지 못할 기업들이다.

반바지, 소매상의 허용은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선수, 새로운 스폰서, 새로운 시장, 새로운 관심을 의미할 뿐 기존 시장 축소, 비치발리볼 위상 저하 등을 뜻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국제배구연맹이 유니폼 규정을 완화하면서 그리고 있는 노림수다. 유니폼 규정완화→세계적인 관심 제고 및 섹시즘에 대한 비판 여론 축소→출전 선수와 출전 국가의 다양성 증대→TV중계 지역 확대 및 중계권료 인상→글로벌 스폰서 영입 및 시장의 글로벌화→올림픽 정식종목 선정과 높은 인기 유지 등으로 선순환하는 구조가 비치발리볼계가 원하는 그림이다.조성식 교수가 "국제배구연맹은 잃을 게 거의 없는 훌륭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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