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의 하프타임] '인조잔디'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언더독의 축제

조회수 2017. 2. 21. 14: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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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아닌 축제의 장' - 아름다운 언더독의 반란

‘축구가 아닌 축제였습니다.’

지난 주말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없는 주간이었지만 FA컵 16강전이 열렸습니다. 챔피언십 허더스필드가 빅클럽인 맨체스터시티와 무승부를 기록했고, 리그1에 속한 밀월이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인 레스터시티에게 승리를 거두며 하위리그 팀들의 무서움을 보여줬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이변은 논리그(5부리그)팀인 링컨시티가 프리미어리그 팀인 번리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었죠. 1914년 QPR 이후 103년 만에 논리그팀이 FA 컵 8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쓰며 상위 리그 팀들에게는 긴장을, 하위 리그 팀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팀이 있습니다.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는 그런 팀이…

서튼유나이티드 구장입구 건물


5부 리그 팀의 축제 준비

16일 아침, 서튼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인 ‘The Borough Sports Ground’(더 보로우 스포츠 그라운드)로 향했습니다. FA컵 16강전을 앞두고 미디어데이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서튼 유나이티드는 프로 리그에서 뛰어 본 적이 없는 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구단입니다.  그런 팀이 리그1, 챔피언십팀을 차례로 이기고 16강전에 진출하고, 이제 홈에서 아스널을 만난다고 하니 얼마나 설레이고 흥분되겠습니까? ‘미디어데이 할 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비좁았고, 경기장 외부도 제대로 정돈된 모습의 건물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FA컵 16강전을 해야 하다니…’ 미디어데이가 행사가 진행되는 그라운드에는 이미 기자들과 서튼 시장을 비롯해 지역 관계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라운드가 천연잔디가 아닌 3G 피치였기 때문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3G 피치에서 FA컵 16강전이 열릴 것이라고는... 내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었는지 구단관계자가 “아스널이 3년 전에 이 곳에서 프리시즌 경기를 하였다. 그런데 피치를 마음에 들어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에 천연잔디에서만 하던 선수들이 이 곳에서 경기를 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미디어데이가 진행되는 서튼의 3G 피치


미디어데이에 만난 사람들

선수들은 공개훈련을 하고 있었구요. 공개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서튼 보로우 시장을 만났습니다.  

“우리지역의 축제다. 작은 지역에서 이런 경기를 치룰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지역주민들도 행복해하고 있다. 그 날 5000석이 다 찰 것이다.”며 흥분된 모습이었습니다.

경기를 지역 축제로 생각하는 서튼 보로우 시장

훈련을 마친 후에는 팀에서 가장 많은 440경기 출전기록을 가지고 있는 크레이그 선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스널과 벌어질 16강전에 대해,

“내 인생에 이런 경기를 치루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물론 우리팀이 승리하기는 힘들겠지만 지금까지 힘든 과정을 잘 이겨왔다. 그렇기에 승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소감을 이야기 했는데 스스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스웰 감독의 기자회견을 보기에 앞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아스널에서 12시즌동안 327경기를 출전해서 78골을 기록한 레전드인 폴머슨이었는데요,

그는 “이런 매치가 성사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서튼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하였고, 결과에 대해서는 “나는 뛰지 않는다. 내가 뛰지 않기 때문에 결과를 모른다.”며 유머러스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이슈가 되는 산체스의 이적에 대해서는 “산체스는 아직 도장을 찍지 않고 있다.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네요. 

아스널 레전드인 폴 머슨

기자회견이 준비된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도스웰 감독은 30분 동안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었습니다. 피곤해하기보다는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도 이런 상황이 설레이고 행복한가 보네요. 그가 인터뷰 한 내용 중에

“우리팀은 1주일에 두 번 훈련을 한다. 우리팀 선수들은 배관공, 건설업자, 헬스트레이너 등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우리팀은 한 주에 400파운드 정도를 받는다. 우리팀은 락커룸에 히터가 고장나서 추울 때도 있다. 뜨거운 물도 안 나올 때가 있다. 지붕돈 샌다. 우리팀은… ”등 안타까운 그리고 힘든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기자회견 중인 도스웰감독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싸움

드디어 경기 당일이었습니다. 경기장에는 역대 최다 관중이 아닐까 싶을 정도도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이미 765석의 좌석은 가득 차있었고, 스탠딩으로 볼 수 있는 공간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티켓도 5000장이 이미 솔드아웃이 되었으니.. 경기 시작 전 분위기만으로도 이번 경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느낄 수 있었네요. 시작 전에 서튼 유나이티드에서 큰 이슈를 몰고 다니는 46세의 거구 골키퍼인 웨인 쇼를 만났습니다.

그는 “환상적인 밤이다. 나는 선발은 아니지만 아스널과 우리가 경기를 한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좋다.”는 소감을 전하였습니다.

서튼유나이티드의 산증인인 46세 127kg의 웨인 쇼 키퍼

“나는 팀에서 골키퍼 코치와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오늘 선발로 뛰는 케빈은 헬스트레이너고, 주장인 제이미는 건축을 한다. 그 외에도 제빵사, 배관공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급이 300-700파운드(45-100만원정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받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생활하면서 축구를 해야 한다.”며 선수들의 상황을 말해 줍니다. 이런 상황의 팀이 빅클럽.. 아스널과 경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경기장 담에 매달려 있는 팬들

서튼 유나이티드가 상대하는 아스널의 산체스는 지난 겨울 구단의 18만 파운드 제의를 거절하고 주급으로 25만파운드(약3억6천)을 원한다는 기사도 났었는데… 외질은 현재 14만 파운드를 받고 있다는데… 아스널 구장은 천연 잔디에 최신식 시설인데… 지붕이 비가 새거나 락커룸이 춥거나 덥지도 않은데… 그런 아스널과 상대하는 서튼 유나이티드의 상황은 정 반대였습니다. 사실 그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상태였죠.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낀 차이는 다윗과 골리앗, 아니 그 이상의 차이가 나는 상대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경기를 합니다. ‘산체스를 헬스 트레이너가, 월콧을 벽돌을 나르는 사람이 수비하고, 무스타피가 배관공을 수비하는 그런 경기를…’


축구가 아닌 축제의 장

경기 장의 분위기도 정감이 있습니다. 경기장 밖에는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담벼락에 매달려 훈련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많은 팬들이 선수 통로 옆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아스널 선수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들의 경기장을 찾은 선수들 중에 가장 유명한 선수들이라 그런지도 모릅니다. 훈련도중에 산체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는 어린 팬들도 있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시작전부터 축구경기가 아닌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축구 축제를 즐기기 위해 부모님과 같이 온 어린이 팬들

경기장에서 만나 팬들도 결과보다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제가 만난 팬들 대부분이 자신의 팀이 여기까지 왔고, 이런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 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아이들에게 자신의 지역팀의 자랑스럼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정말 지역 축제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경기장의 분위기는 따듯했습니다.


경기는 반전없이 2대0, 아스널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리자 수 많은 팬들이 펜스를 넘어서 그라운드로 뛰어들었습니다. 경기 결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였습니다. 패자가 없이 모두가 승자인 것처럼 소리치며 환호하는 축구 팬들. 선수들에게 달려가서 손을 내밀었고, 상대팀 선수들에게도 달려가서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축구 팬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순간..  서튼 유나이티드, 그곳은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렇게 축제의 장은 막을 내렸습니다. 작은 마을의 축구팀이 써 내려가는 스토리도 끝이 났습니다. 패배, 토너먼트 탈락 같은 우울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들이 써 내려간 이번 스토리는 해피엔딩이라는 확신이 경기장에 가득했습니다. 링컨 시티와 같은 언더독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게 되었지만 , 그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팬들은 서튼 유나이티드 팬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을 것이고, 선수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기에… 


잠시 그들의 도전은 멈추었지만 내일이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 도전이 많은 언더독들에게 무명의 팀들에게 희망이었으면, 다시금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며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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