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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륭의 원사이드컷] 한국은 아직 월드컵에 불참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조회수 2017. 3. 24. 0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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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6차전 중국 - 한국 매치 리뷰
슈틸리케 감독과 인연은 계속 되어야 할까?

나는 매주 한편씩 칼럼을 작성한다. K리그,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지역예선 등 다양한 경기를 해설하기에 그 중 가장 주목받는 매치의 리뷰를 주로 다룬다. 이번주 축구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는 당연 한중전이였다. 칼럼 작성을 위해 나는 평상시처럼 노트에 경기의 상황을 적으며 경기를 시청했다.

0-1 패배.

하지만 내 노트의 상황은 평소와 많이 다르다. 많은 메모로 종이가 지저분해야 하는데, 오늘은 너무 깨끗하다. 매치 리뷰는 피치에서의 경험에 이론적 상황을 추가하여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의견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가 생긴다.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 써 온 매치 리뷰 칼럼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써야 할 것 같다.

전략과 전술이 없는데 그것을 억지로 지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중국 전 선발 라인업 (KFA 페이스북)

# 한국 없는 월드컵은 어떨까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 해 시리아 전 무승부, 이란 전 패배 직후와는 다른 불쾌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어쩌면 정말 못 나갈 수 도 있겠다...’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까지, 한국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다. 그렇기에 현재 40대 이하 축구팬 대부분은 한국 없는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했다. 처음 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기까지 32년이 걸렸다. 그 기간동안 한국 축구인 중 그 누구도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했다. 유일한 국제 무대가 아시안컵과 메르데카컵에 불과하던 시절을 거름 삼아 오늘에 이르렀지만, 현재 국내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들 중 한국이 월드컵을 나가지 못했을 때 발생 할 수 있는 상황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없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최근 야구대표팀의 WBC 탈락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국내 프로야구와 달리 프로축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같다. 연맹이나 구단 모두 이제 막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몸부림 칠까말까 고민하는 단계인데, 그나마 4년 주기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월드컵에 대표팀이 불참한다면 한국 축구에게는 암흑기의 시작이요, 재앙까지 될 수 있다. 축구 산업에 대한 투자는 더욱 위축 될 것이고 리그 경기력은 좀처럼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 또한 선택을 망설일 것이고 현재 혼란을 겪고 있는 학원 축구 시스템은 더욱 복잡해 질 가능성도 있다.

혹자는 차라리 월드컵 한 번 떨어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프랑스도 1998년 역사적인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 전, 1990년과 1994년 칸토나, 파팽 등 호화 멤버를 보유하고도 두 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프랑스와 다르다. 프랑스는 오랜 역사를 통한 경험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있었다. 즉, 월드컵 진출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우려하는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오히려 경험이 없기에 더 용감하게 극복 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앞 일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7년 한국에서 축구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소름 끼칠 정도의 위기감을 느낀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중국에게 패했다. (FIFA.COM)

# 전반전, 나쁘지 않았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전반전을 꽤 긍정적으로 봤다. 중국은 콤팩트 했다. 전-후, 좌-우 간격을 잘 압축시켜 라인 높낮이에 따라 견고한 수비 블록을 유지했다. 전반 15분이 지나면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완성도 높은 조합 플레이가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 팀이 어떤 방법으로 공격 루트를 개척 할 것인지, 그리고 감독이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어떤 역할을 부여했는지 엿볼수 있었다. 이정협은 부지런히 움직였고 지동원은 몇 차례 좋은 슈팅을 시도했다. 왼쪽 풀백 김진수는 공격 작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남태희도 세밀함을 보탰다.

중국의 전반전 전략은 분명했다. 콤팩트한 간격을 통해 한국의 속도를 제어하고 최대한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커버 서포트에 집중했다. 자신의 진영에서 수비에 성공하면 곧바로 우레이나 유다바오에게 직선적으로 연결했다. 때문에 전반 20분 무렵에만 중국은 다섯 차례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했다. 전반전 45분 동안 중국의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 좀처럼 번뜩임을 찾기 어려웠다. 한두차례 역습을 통해 슈팅까지 연결했지만 이용이 미끌어진 것처럼 한국 선수들의 개인 실수를 통해 발생한 장면이였기 때문이다.

전반전, 중국의 역습 루트는 단순했다. (JTBC 중계 화면)

하지만 34분, 코너킥에서 발생한 유다바오의 골은 중국이 잘해서 넣은 것이였다. 계획된 킥과 움직임, 준비된 세트피스 였다. 결과론이지만 가까운 쪽 골대에 대한 대비가 아쉬웠다.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 지역 방어를 선택하면 상대의 킥이 시작되는 순간 근처 공격수의 스타트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세트피스 수비 상황에서는 공에 가장 관여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 선수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한국은 경기 리듬이 가장 좋았던 시점에서 정지된 상황에 있던 유다바오를 살피지 못하며 실점했다.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는 공에 가장 관여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 선수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 후반전, 45분이 너무 괴로웠다.

중국은 선취골로 자신감을 얻었지만 한국은 실점 이후 전반전 남은 10분을 비교적 잘 활용했다. 일격을 당했지만 경기 리듬을 내주지 않은 채 후반전을 시작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이정협 대신 김신욱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선택은 너무도 괴로웠던 후반전 45분의 시작이였다.

경기 중 선수 교체가 발생하면 경기의 세부 계획 또한 바뀐다.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훈련과 팀 미팅을 하는 이유다. 김신욱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누구나 예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후반전 첫 15분은 애매모호 그 자체였다. 김신욱이 깊게 포진했지만 사이드 플레이에 의한 크로스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낀 김신욱이 공을 받으러 내려오자 그 때 다른 공격수를 겨냥한 크로스가 올라갔다. 한국은 후반 첫 15분을 너무 쉽게 낭비했다. 새로운 유형의 공격수가 투입되었으나 한국의 팀 밸런스는 후반 15분에 깨져버렸다. 이후 황희찬과 허용준이 추가로 교체 투입되었으나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이 전개되는 상황과 선수의 움직임이 따로 놀았다. 공을 받기 위한 서포트를 언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공이 측면으로 나가야 하는지, 중앙으로 투입해야 하는지. 높게 가야 하는지, 발 밑으로 투입해야 하는지.

측면? 중앙? 발밑? 크로스? 애매한 한국의 공격 루트 (JTBC 중계화면)
중국은 후반전에도 몇 차례 높은 지점에서 수비를 시작하며 콤팩트한 간격을 유지했다.

후반전 한국이 갈팡질팡하며 밸런스가 무너지자 중국은 인홍보, 우시 등 공격적인 자원을 투입하여 높은 수비 시작점을 설정하여 한국의 볼 전개를 방해했다. 실제로 후반전 45분 동안 한국은 좋은 공격 형태를 거의 만들지 못했다. 기성용의 중거리슛과 코너킥 상황에서 홍정호의 헤더 등 몇 차례 기회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20분은 중국이 역습을 전개하기 이상적일 정도로 공수 간격에 문제가 발생했다. 전반전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한국이 개인 기량에서 앞선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후반전은 진심으로 끔찍했다.

남태희의 돌파 시도, 과연 누가 공을 받아줄수 있을까?

"한국이 만약 내려서서 플레이 한다면?"

작년 10월, 카타르 전 이후 작성한 팀 스타일 관련 칼럼  

# 감독 울리 슈틸리케, 어찌해야 할까요?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유일한 감독, 마르첼로 리피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까? 지난 해 10월, 중국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리피는 최종 예선 캠페인 다섯 경기 동안 승리가 없던 중국에게 첫 승을 선사했다. 그것도 한국을 상대로 말이다. 지난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 당한 첫 패배는 크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부담 없는 대회에서 실험적인 전술을 테스트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앞선 다섯 경기 동안 승리가 없던 중국에게 패한 것이다.

세계적 명장, 마르첼로 리피 (FIFA.COM)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의 스타일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4-2-3-1 포메이션 하나는 분명한데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4-2-3-1은 안전해야 하는데 최종 예선 치르면서 팀이 안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럼 우리 대표팀이 역습을 잘하나? 아니면 지공 상황에서 세밀한가? 아니면 투박하지만 뭔가 폭발적인가? 그것도 아니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지만 명단 발표 때 마다 감독 스스로 기준을 잡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단지 내 기분 때문일까?

그럼 도대체 우리는 뭘까? 우리는 언제쯤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투혼”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체를 우선 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능력있는 외국인 감독이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 힌트는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11월, 전체 일정의 반환점인 우즈베키스탄 전 승리로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 해 최종예선 경기들을 지켜보며 슈틸리케 감독 체재 대표팀에게 걸었던 기대를 모두 내려놨다. 경기력이 아무리 나빠도, 내년 여름 러시아에서 3전 전패를 하더라도 슈틸리케 감독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한국 대표팀이 또다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슈틸리케의 임기를 끝까지 보장한 것이 차기 감독과 협상 할 때 좋은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견에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한국 대표팀이 내년 여름,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이다. 월드컵을 향한 고비는 아직 더 남아있는 것 같다.

앞서 열린 아시아 예선이나 각종 평가전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현재 진행 중인 최종예선 여섯 경기는 내용까지 꽤 비슷하다. 다음주 28일, 시리아 전을 마치면 다음 일정은 6월에 진행된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슈틸리케 체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정말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그 어떤 선택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

반드시 2위를 지켜내야 한다. (FIFA.COM)

# 4경기 남은 상황, 필요한 최소 승점은 9점

최종 예선 10경기 중 이제 6경기가 끝났다. 3승1무2패, 8득점-7실점. 시리아가 우즈베키스탄에게 극적으로 승리한(1-0) 바람에 한국은 조 2위를 유지했다. 이란 역시 카타르에게 1-0으로 승리하며 조 선두를 유지했다. 이란이 1위로 가고, 한국은 2위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시리아, 카타르, 이란, 우즈베키스탄 이렇게 네 경기만 남았다. 당장 다음주 화요일, 턱 밑까지 따라온 시리아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자력으로 월드컵 티켓을 따내려면 적어도 승점 9점이 필요하다. 마지막 10차전까지 가면 부담이 커진다. 9월, 마지막 일정인 우즈베키스탄 원정. 그 전에 상황이 정리되길 바란다.

상황은 어렵고 축구팬들의 실망감 역시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반드시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아직 한국이 출전하지 못하는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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