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류현진 타석 때 3루 도루 - '더 스틸'의 DNA

조회수 2017. 6. 26. 12: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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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는 지난 금요일(23일)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99번 투수의 직전 등판 경기였다.

3-2로 앞서던 홈 팀의 4회말 공격. 선두 타자인 7번 오스틴 반스가 볼넷을 골랐다. 다음 타자는 야시엘 푸이그. 원정 팀 메츠의 선발 스티븐 마츠가 초구를 던지는 순간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 트래비스 다노가 황급히 2루로 쐈지만, 아주 넉넉한 타이밍으로 세이프됐다.

이때 마츠의 릴리즈 타임(퀵모션)은 1.5초를 넘었다. 1.3초만 넘겨도 약점으로 지적되는 게 요즘 추세다. 아무리 좌완 투수라 하더라도 1.5초 이상은 심각한 수준 미달이다. 2루에 프리 패스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포수의 팝 타임이 아무리 빨라도 소용이 없었다.

투수 마츠의 릴리즈 타임     1.52초

포수 다노의 팝 타임            2.04초    (ML평균 1.98초)

합계                                     3.56초    (3.3초 이내라야 OK)

1사 3루 기회에서 첫 타점 의지를 불태웠던 류현진. 아쉽게 삼진으로 물러났다.           mlb.tv 화면

도루를 성공한 뒤 진루타가 나왔다면 흐름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푸이그는 힘 없는 투수 땅볼에 그쳤다. 아웃 카운트만 늘어나며 다음 타자에게 1사 2루를 물려줬다.

놀라운 장면은 여기서 나왔다. 2구째. 2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가 허겁지겁 3루로 배달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였다. 주자 2루 때 투수 마츠의 릴리즈 타임은 더 느려졌다. 1.6초가 넘었다. ‘설마 또 뛰겠어’라는 마음이었는 지 모른다.


오스틴 반스가 류현진 타석 때 3루 도루를 성공시키는 장면.      mlb.tv 화면        

1사 3루가 되면서 득점 확률이 높아졌다. 타석에는 올 시즌 첫 타점을 노리는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굳이 파울이 된 선상 타구를 아까워할 필요도 없었다. 웬만한 타구를 외야 쪽으로 날려줘도 충분했다. 그럼 4-2가 됐을 것이다. (구차하지만 게임을 재구성하면) 그랬다면 승리 투수는 그의 몫이 됐을 것이다. 물론 삼진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 되고 말았지만.


10연승 다저스의 또다른 면모 ‘발야구’

다저스가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10연승을 달리며 독주 체제에 돌입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은 화력이다. 코디(벨린저)와 코리(시거)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연일 폭발하고 있다. 저스틴 터너마저 똑딱이로 느껴질 정도다. 에이드리안 곤잘레스의 공백 따위는 전혀 느낄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공격력의 구성이 홈런만으로 완성될 리 없다. 타력이라는 게 원래 연교차/일교차가 심한 변덕꾸러기 아닌가. 그 불확실성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또다른 득점 루트가 필요하다. 그래야 기복 없는 승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츠 감독이 기습적인 도루에 성공한 뒤 그라운드를 향해 뭔가를 외치고 있다.    mlb.tv 화면


인상적인 경기가 있었다. 막 상승세를 시작한 6월 16일 클리블랜드 전이었다. 0-0이던 2회 2사 2, 3루에서 내야 안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계속된 1, 3루. 타석에는 야시엘 푸이그였다. 초구에 사인이 나왔다. 더블스틸이었다. 1루 주자였던 작 피더슨이 2루를 향해 스타트했다. 포수가 송구하는 사이 3루 주자 크리스 테일러가 홈을 밟았다. 허둥대는 2루수(에릭 곤잘레스)의 송구가 빗나가자 선발이었던 코리 클루버가 힐끗 째려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 경기를 6-4로 승리했다

2사 1, 3루에서 더블 스틸을 성공시키는 다저스. 초반에 기선을 잡는 점수였다.       mlb.tv 화면

그보다 열흘 쯤 전이다. 6월 4일 밀워키전이었다. 치고받는 난타전 끝에 9회 크리스 테일러의 그랜드슬램으로 10-8로 재역전승했다. 하지만 그 만루 홈런의 이면에 가려진 놀라운 기록이 있었다.

이 경기에서 다저스는 무려 7개의 베이스를 훔쳤다. 벨린저, 테일러, 푸이그가 각각 2개씩. 그리고 에르난데스의 1개가 합작됐다. 1경기 7도루는 1999년 8월24일 이후 18년 만의 기록이었다. (그 때도 밀워키 원정경기였다.)

10연승을 채운 오늘(26일)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폭투를 난사하던 콜로라도 배터리는 8회 테일러의 3루 도루에 꼼짝 못하고 당했다. 결국 테일러마저 와일드 피치 덕에 공짜로 홈을 밟았다.


더 스틸(The Steal)의 DNA

2004년이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결정전이 열렸다. 양키스가 레드삭스를 3연패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4차전도 4-3으로 앞선 채 마지막 이닝이 남았을 뿐이다.

전성기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뒷문을 잠그러 나왔다. 마침 구장 스코어보드의 시계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모자를 뒤집어 쓴(랠리 캡) 홈 팬들이 펜웨이 파크의 담장을 두들겨댔다. ‘둥.둥.둥.둥’. 마치 진격의 북소리처럼 구장에 울려퍼졌다.

천하의 리베라도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말았다. 와중에 중계 카메라는 계속해서 레드삭스 덕아웃의 한 명을 클로즈업 하고 있었다. 13년 지난 지금보다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32세의 데이브 로버츠였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타임을 걸었다. 그리고 주자를 바꾸겠다며 1루쪽을 가리켰다. 로버츠가 달려나갔다. 펜웨이 파크는 또다시 함성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리베라는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루에 빠른 견제구를 3개나 연속으로 던졌다. 대주자는 매번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세이프됐다. 심지어 견제구가 거듭될수록 리드폭을 늘려나갔다.

드디어 초구. 리베라의 첫번째 공이 홈으로 향하는 순간 1루 주자도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의 저격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온 몸을 던진 로버츠의 슬라이딩이 훨씬 강렬했다. 불과 몇 인치 차이로 생존이 결정됐다. 곧이어 빌 뮬러의 중전 안타로 동점이 만들어졌다.

레드삭스는 기사회생했다. 전설의 역(逆)스윕을 달성했다. 급기야 월드시리즈(세인트루이스)까지 손에 넣었다. 84년간 따라다닌 지긋지긋한 저주를 풀어낸 순간이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대담했던 도루였다. 후에 ‘더 스틸(The Steal)’이라고 명명됐다.

대주자 로버츠가 2루 도루를 성공시키는 장면. 밤비노의 저주를 풀어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mlb.com

       다저스               도루 (홈런)

크리스 테일러            10    (9)

야시엘 푸이그             9    (14)

코디 벨린저                 5    (24)

오스틴 반스                 4     (2)

키케 헤르난데스         3     (8)

코리 시거                     3    (12)

체이스 어틀리             3     (4)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있다. 위기(리스크)에 대한 관리다.

홈런은 간단하다. 점수내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어렵다. 매일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계획되고, 관리하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긴 페넌트레이스의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시도하는 플랜B는 ‘달리기’다. 지극히 공격적인 발야구다. 그게 흐름의 중간중간 막힌 혈(穴)을 뚫어주고 있다. 상대 수비의 헛점을 파고들며 베이스 하나를 더 추가시킨다. 그래서 분위기를 앗아오고, 득점 확률까지 높이고 있다. 물론 이것도 젊고, 빠른 주자들이 골고루 포진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 팀 도루 숫자는 많지 않다. 42개로 리그 전체를 따지면 중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특유의 장타력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최근의 폭발적인 득점력의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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