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퍼즐] 학업과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여자대학농구의 부활①)

김도곤 입력 2015. 10.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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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한새 박혜진 / 사진=스포츠투데이 DB
KB국민은행 스타즈 홍아란 / 사진=스포츠투데이 DB
2013-2014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 / 사진=아시아경제 DB
WKBL 레전드 올스타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아시아경제 DB
2014-2015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 / 사진=아시아경제 DB

[스포츠투데이 하숙례 칼럼] 여자대학농구는 지난해의 시범정규리그를 시작으로 올해, 정식으로 ‘2015 대학농구리그’가 출범했다. 남자대학농구(2010년 리그제 도입)에 비하면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리그제로의 변화는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며 여자농구 발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여자선수들의 경우 실력 있는 선수들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아 체육관에서 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국제대회 출전이 거의 없을 정도의 불모지였다.

현재 9개의 여자대학팀이 있지만 선수부재로 7개 팀이 리그제에 출전하여 2라운드(팀당 12경기)로 리그는 개막되었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시작은 미묘한 연한 빛을 띠며 용인대의 독주(8연승)로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에 극동대는 연승을 거듭하여 약체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전반기 2위를 사수했다. 여자대학의 강호로 자리 잡고 있던 광주대, 수원대, 단국대 등을 상대로 승리했고 용인대의 연승까지 저지하면서 결코 우연이 아닌 노력과 실력을 겸비한 결과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극동대의 선전이 놀라운 이유가 있다. 2009년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아닌 규칙도 알지 못하는 일반학생들로 창단했을 뿐만 아니라(2012년부터 엘리트 운동선수들을 선발) 전용체육관이 없어 주변의 체육관을 빌려 연습하는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을 보낸 여자대학농구는 평준화 현상을 보이며 더욱더 알차고 발전된 모습으로 후반기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전력상으로 가장 우세했던 용인대가 전국체전 예선전에서 수원대에 패하면서 밸런스를 잃기 시작했다. 이 경기 이후 모든 팀들이 용인대를 상대로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극동대, 광주대, 단국대, 수원대는 용인대와의 경기에서 근소한 스코어 차이로 승패를 가져가며 경기의 흥미와 재미, 그리고 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한껏 뽐내기 시작했다.

결국 1위 용인대(10승 2패), 2위 광주대(8승 4패), 3위 단국대(7승 5패), 4위 극동대(7승 5패)로 플레이오프 진출 팀이 결정되었다. 플레이오프의 준결승(용인대 vs 극동대, 광주대 vs 단국대)은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경기라 각 학교의 학생 관중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경기였다.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인 용인대와 극동대의 경기는 1위 팀 홈인 용인대에서 개막했고, 홈 팀의 이점과 여자농구의 강호로 정평이 나 있는 용인대의 우세한 경기로 예상되었다. 교내에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장학생 집단으로 불리는 용인대 농구부의 인기는 하늘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듯 용인대의 홈 응원은 대단하였다.

이에 맞불을 놓은 극동대도 인원수나 규모는 작았지만 약 100여명이 버스로 원정 응원을 와 선수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극동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며 경기 종료 2분전까지 리드했다. 그러나 에이스 선수의 5반칙 퇴장으로 아쉽게도 마지막까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했다.

하지만 거함 용인대를 상대로 보여준 극동대의 패기와 젊음과 도전은 선수 개인-팀-학교-대학리그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리그에 참여한 학교들 중 가장 열악한 여건 속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극동대 선수들은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2위의 광주대 체육관에서 열린 단국대와의 플레이오프도 실력과 열정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결국 치열한 경기 끝에 조직력을 앞세운 광주대가 승리했다.

광주대는 부상선수의 부재와 프로/실업 출신 선수들이 리그 경기에 나설 수 없는 규정 때문에 5명의 인원이 거의 리그 전 경기를 소화했다. 1학년 선수 1명이 식스맨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광주대는 리그 초반과 달리 강인한 체력과 탄탄한 조직력을 겸비하고 있는 팀으로 팀 전체가 일취월장하였다.

단국대는 신구의 조화 속에서 4학년 선수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하는 노력이 단연 돋보였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기였다. 그만큼 승리에 애타게 목메는 모습으로 학생선수로서의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며 최선을 다했다.

여자대학농구는 1980년대 후반에 이화여대, 숙명여대를 주축으로 중앙대, 수원대, 성신여대 등의 팀으로 경기를 치루면서 대학이 활성화되었다. 그 시대에는 고교 졸업 후에 곧바로 실업에 진출하여 대표선수로 국위선양을 한 후,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었다.

삼성에서 숙명여대로 진학한 국가대표 차양숙 선수(현 WKBL해설위원), 한국화장품에서 이화여대로 진학한 박양계선수(현 한국대학농구연맹 이사), 정지혜선수(현 숙명여대 교수) 등 그 시대에 인기농구스타였던 쟁쟁한 선배들이 대학의 문을 열었고 여자대학농구 활성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대학에 가면 농구를 포기하고 공부만을 하여 농구선수로서의 꿈을 잃어가는 침체기를 겪다가 3~4년 전부터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는 사례(신정아선수 : 용인대-우리은행, 윤미지선수 : 수원대-신한은행, 백지은 선수 : 용인대-KEB하나은행, 이수연선수 : 광주대-KEB하나은행, 강계리선수 : 한림대-삼성생명 등)가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프로에서 역할을 다하며 활약 중이다.

여자대학농구가 올해 정규 리그제 도입으로 첫 발을 내디디면서 더 큰 발전을 가져왔다. 학생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땀을 흘린다. 리그제 도입으로 연습량이 많아지고 경기 경험도 많이 갖다보니 운동선수로서의 노력과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교육의 흡수가 어우러져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침체되어 과도기를 맞고 있는 한국여자농구에 단비를 뿌리고 있다.

올해도 7명의 선수가 프로 진출을 위한 드래프트에 신청하고 꿈을 키워가며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프로선수, 나아가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라는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스포츠투데이 하숙례 한세대 교수(체육학박사)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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