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른손은 거들 뿐..박병호 최강 싱커를 폭격하다

조회수 2016. 5. 4. 08: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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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미닛 메이드 파크 한 켠이 시작 전부터 시끌시끌하다. 카이클스 코너(Keuchel‘s Corner)였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애들과 여성들까지. 주홍색 티셔츠에 커다란 검은 수염(가짜)을 붙이고 희희낙락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에이스다. 작년 사이영상 수상자 댈러스 카이클. 특히나 홈 구장에서 18번을 등판해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었다. 무려 15승 무패(ERA 1.46). 메이저리그가 처음 보는 기록이었다.

카이클스 존에는 가짜 수염을 단 홈 팬들이 에이스를 응원하기 위해 자리했다.                   mlb.tv 화면

그는 지난해 최강의 싱커볼러였다. 평균 90마일이 안되는(89.5마일) 패스트볼 구속으로 리그를 평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교+예리한 싱커 덕이었다. 그 공 하나로 무수한 타구를 힘없는 땅볼로 만들었다. 한다하는 슬러거도 예외가 없었다. 건드리면 데굴데굴~.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처음 보는 타자 하나가 그 공을 띄웠다. 웬만큼도 아니다. 비행거리가 무려 418피트(약 127.4m)나 됐다. 아마 이렇게 멀리 날아간 ‘안타’는 없었을 것이다.

덩치도 별로다. 생긴 것도 순해 보인다. 그런데 그 아시안 타자는 어떻게 그 싱커를 그렇게 멀리 보냈을까.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사상 최강의 땅볼 유도형 ‘싱커’ 

싱커의 개념 정리부터 하자. 이 친구의 본명은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이다. 실밥을 잡는 방법에 따라 투심, 스플리터 같은 공과 헷갈린다(사실은 그게 그거다). 투구의 궤적도 비슷하다. 어제(한국시간 24일) 그 공도 몇몇 통계 사이트에서는 투심으로 분류했다.

좌투수(카이클)가 우타자(박병호)에게 던지면 바깥쪽으로 휘어져(멀어져) 나가면서, 약간 가라앉는다. 그러니까 타자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땅볼을 생산하는 공이다.

카이클은 최고 시즌이었던 지난해 땅볼/뜬공의 비율이 3.30이었다. 그러니까 4번 치면 띄울 수 있는 건 1번 뿐이고, 나머지 3번은 굴러간다는 얘기다. 장타의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3.30의 비율은 압도적인 1위의 수치다. 2등인 타이슨 로스는 2.58 밖에 되지 않는다. 8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비슷한 투수를 한 명 만날 수 있다. 역시 독보적인 싱커볼러였던 브랜든 웹이었다(3.15).

127m짜리 타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 타석을 되돌아봐야 한다. 볼 카운트 2-2에서 쳐냈던 우전안타 말이다. 결과는 좋았다. 그러나 타구의 질은 평가받기 어렵다. 어물쩍 우익수 앞에 떨어졌을 뿐이다.

그 공은 78마일(125㎞)짜리 체인지업이었다. 그걸 다시 살펴보자는 이유는 궤적 때문이다. 타자 먼쪽으로 도망가면서 떨어지는 게 비슷하다. 이를테면 싱커의 느린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땅볼을 유도하는 데 많이 쓰이는 구질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타자 입장에서는 공략 실패다. 정타가 아니었다. 맞는 순간의 배트 컨트롤로 간신히 페어 지역으로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5회 초 그 127m짜리 타구는 차원이 달랐다. 당사자는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실투였던 것 같다. (카이클이) 제구력이 좋은 투수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아서 우리가 칠 수 있었다.”

물론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정상적인 컨디션이었지만 그렇게 난타당할 투수가 아니다.

하지만 공격당한 코스를 보면 ‘실투’라고 퉁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85마일(136㎞). 높이는 어중간했지만 스트라이크 존 가장 먼 쪽에 가까스로 걸치는 코스였다. 결코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비거리가 나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오른쪽 사진 4구째가 3루타를 만든 공이다. 단순히 '실투'라고 부르기에는 꽤 먼 코스다.           mlb.tv 화면

3-1로 앞서 있던 원정 팀이 또 찬스를 잡았다. 1사 1, 2루. 홈 팀의 에이스는 이미 한계 투구수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한꺼번에 아웃 2개를 잡고, 이닝을 끝냈으면 좋겠다.’ 땅볼 유도 1위 투수의 지극히 당연한 상상이다.

카운트 1-1에서 투수는 첫번째 함정을 팠다. 외곽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 그러나 타자는 꿈쩍도 않는다. 2-1로 불리해졌다. 또 볼을 던질 수는 없다. 선택의 범위는 좁아졌다.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역시 바깥쪽 싱커. 그 순간 꽉 닫혔던 타자의 몸이 열렸다. 번쩍. 섬광이 터지며 엄청난 파괴력이 폭발했다.

FOX 스포츠(트윈스)의 캐스터 딕 브리머가 비명을 질렀다. “가운데 깊숙히 날아갑니다. 라스무스(중견수)가 못 잡을 것 같네요. 언덕(Tal’s Hill)에 떨어져 깃대 뒤로 갑니다. 박은 3루까지.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냈습니다.”

200승 투수인 해설자 잭 모리스도 한 마디 보탠다. “425피트 정도 갔네요. 날아간 거리만요. 박의 강력함을 보여줬군요.”

허전한 오른손, 강백호가 생각난다 

케이클의 체인지업이나 싱커가 주로 땅볼을 유도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타자의 ‘힘’ 때문이다. 가운데 존으로 오는 공이라고 생각하고, 양껏 배트를 돌리다보니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강한 스윙을 하려다보니, 완고한 자세가 되고, 결국 변화에 대해서 유연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타자는 달랐다. 처음부터 조준하는 지점이 특이했다. 아예 좌측이 아닌 가운데 쪽으로 보내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여기서 해설자 잭 모리스를 다시 한번 등장시키자. 느린 화면을 감상하던 그는 감탄 어린 한 마디를 내뱉는다. “Great extension.” 번역하면 “쭉 뻗는 동작이 참 대단하군요” 정도일 것이다. 야구적인 해석을 보태면 이렇다. 감아서 돌리는 게 아니고, 가운데로 밀어내려듯 스윙을 앞으로 뻗는다는 의미다. 흔히 코치들이 ‘방망이를 투수에게 던지듯이 해야 좋은 스윙’이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엄청난 거리를 낸 3루타였지만 피니시 동작은 소박하기 그지 없다.           mlb.tv 화면

그 결과는 이후 동작(follow through)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 큰 타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피니시 때는 한 손만 남아 있다. 감아서 돌릴 때 양 손이 모두 배트를 강하게 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즉, 정리하면 이렇다. ① 투수는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바깥쪽 체인지업이나 싱커를 던질 것이다. ② 그 공을 좋은 타구로 만들려면 좌측으로 보내서는 어렵다. ③ 결국 중견수 방면을 노리는 가벼운(?) 스윙으로 대처해야 한다.

타자는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해법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걸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해냈다.

물론 그만이 할 수 있는 공략법이라고 하면 억지다. 괜찮은 타자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그만한 거리를 보낼 수 있는 타자는 결코 흔치 않다.

그 강력한 타구를 날리고도 허전한 그의 오른손을 보면 명작 <슬램덩크>가 생각난다.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한 말.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야.”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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