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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오재원 시리즈 - 이슈가 지배하다

조회수 2015. 10. 14.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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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아나운서가 체이스 어틀리를 호명했다. 뉴욕의 시티필드를 꽉 채운 관중들은 일제히 성난 야유를 쏟아냈다. 온갖 저주와 욕설은 한참 동안 계속됐다. 다음 선수, 그 다음 선수를 소개하는 멘트까지 삼켜버렸다.

스탠드에는 수많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어틀리를 비난하는 글들이었다. 어느 팬은 지명 수배 전단을 만들어 붙였다. 발견하면 맷 하비(이날 선발투수)나 메츠 팬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상(상금)은 99마일짜리 패스트볼이었다. 그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SNS에는 어틀리와 그의 가족에 대한 살해 위협도 등장했다. 한 막가파는 "LA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만 내 손에 쥐어달라"고 했다.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어틀리는 이날 선발 투수 맷 하비 공을 꽤 잘 치는 타자 중 한명이었다. 통산 성적이 18타수 6안타였다(.333). 홈런도 1개 있었다. 하지만 매팅리 감독은 그를 출장시킬 수 없었다. 대신 6타수 1안타(.167) 밖에 되지 않는 하위 켄트릭을 2루수로 써야 했다. 다저스는 시리즈의 분수령이 된 이 경기에서 탈탈 털렸다. 13점이나 내줘 구단 역사상 포스트시즌 최다 실점을 기록했다. 전적도 1승 2패로 막판에 몰리게 됐다. 결국 그들은 4차전에 클레이튼 커쇼를 내보낸다. 가장 모범적인 선수로 존경받는 투수다. 하지만 뉴욕 팬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틀리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2루에서 오버랩 된 그들

한국 시간으로 같은 날 저녁. 목동 구장도 비슷했다. 뉴욕의 시티필드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척 격앙된 분위기였다. 현장에 나온 모든 미디어들의 포커스는 한 선수에게 향했다. 물론 당사자는 음소거 모드였다. 일체의 멘트, 표정 변화 없이 경기 준비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첫 타석이 3회였다. 그의 이름이 불리자 3루측에서는 맹렬한 야유가 터져나왔다. 엄지를 거꾸로 뒤집는 여성 팬들의 모습도 있었다. 반대로 1루쪽에서는 그의 이름이 연호됐다. 마치 최대의 승부처를 맞는 분위기였다. 1사 후, 주자도 없는 경기 초반인데 말이다. 그가 묘한 내야안타로 출루했다. 홈 팀이 막 기분 나빠지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채 1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번개같은 견제구가 그의 등에 꽂혔다. 환호와 탄식이 또다시 엇갈렸다.

1차 충격이 일으킨 쓰나미는 곧이은 3회말에 현상이 됐다. 홈 팀의 공격. 그와 대척점에 있는 타자가 왼쪽 타석에 들어섰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가 친 타구는 다이아몬드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갰다. 중견수가 담장 위로 힘껏 뛰어올랐다. 하지만 공은 그 너머로 사라졌다. 0-0의 균형이 깨졌다.

홈런을 친 타자가 베이스를 도는 순간 둘은 2루 부근에서 오버랩됐다. 한 명은 땅을 보며 달리기에만 열중했다. 또 한 명은 뒤로 돌아섰다. 시선은 애써 외야쪽을 향했다.

이슈로부터의 출구 전략

오재원의 견제사, 그리고 서건창의 솔로홈런. 경기 초반인 3회에 일어난 플레이들이다. 그래봐야 스코어는 고작 1-0. 따지고 보면 그 영향력이 크게 대단할 리 없다. 기껏해야 초반 흐름을 바꾸는 변수로 여겨지는 정도다. 일반적이라면 그래야 정상이다. 실제 승부의 고비는 그 후로도 몇 차례는 더 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2개의 장면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냥 단순히 '크다' 정도가 아니다. '결정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당하는 쪽의 내상은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절대 맞아서는 안될 타자에게 홈런을, 그것도 선제 솔로포를 맞았다.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주자가 어이 없이 베이스 위에서 횡사했다. 그 충격의 크기만큼, 상대에게는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뉴욕도 그렇고, 목동도 그렇다. '어틀리 시리즈'가 됐고, '오재원 시리즈'가 됐다. 그곳은 이미 평범한 그라운드가 아니다.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한 게임이 됐다. 그들의 시리즈를 지배하는 것은 이슈다. 그걸 어떻게 다루고, 거기서 어떻게 잘 빠져나오느냐가 승부를 결정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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