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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김기태의 미안함 – 양현종을 움직이다

조회수 2015. 8. 3. 13: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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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대전 3연전은 참 다사다난했다. 홈팀은 충격적인 연패를 당했고, 원정팀은 6연승을 달리며 일약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특히 토/일요일 2연전은 엄청났다. 그건 미리 보는 플레이오프 같았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알 수 없었던 그 시리즈. 그곳에는 이상하게도 '미안함'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했다. 첫 경기, 첫 타석에서 이용규가 공에 맞은 것부터 그랬다. 그로 인해 이글스는 핵심 전력을 4주 이상 잃어야 했다. 당연히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피해자와 그의 팬들은 놀랍도록 성숙하게 대응했다. 이용규는 "못 피한 내 잘못도 있다. 개의치 말고 열심히 해라"며 사과하는 후배를 다독였다.

그리고 또 다른 미안함이 하나 더 있었다. 원정팀 전체를 감싸고 돌던 자책, 안쓰러움. 이상하게 그런 감정들이 이 시리즈를 지배했다. 결코 편치만 않을 감독과 간판 선수의 관계. 그들 사이에 흘렀던 미묘한 감정선에 대한 얘기다.

양현종, 윤석민을 기다리다

어제(2일) 경기 후반전. 원정팀 덕아웃에서 투수 한 명이 불펜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몸풀러 가는 투수는 백넘버 54번이었다. 양현종.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중계방송하던 이순철 해설위원이 추억담 하나를 풀어놓는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어요. 선동열 투수가 불펜에서 몸 푸는 시늉만 해도 상대방에게 주는 압박감이 있었죠.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리그 1위 선발 투수의 불펜행은 과시용이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9회에 등판했다. 마치 한국시리즈 최종전 같았다. 경기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포인트 역할은 내가 자청한 일이예요. (윤)석민이 형이 전날도 많은 공을 던져 내가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가 맡은 타자는 김경언이었다. 좌타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처리해주면 윤석민의 부담을 한결 덜어줄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웬걸. 야구가 어디 계산대로 되건가. 안타를 맞았다. 다음 타자 조인성의 보내기 번트로 1사 2루. 김기태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왔다. 예정된 투수교체였다.

이럴 때 보통 강판되는 투수는 공을 넘긴 뒤 미련없이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양현종은 달랐다. 이미 심판에게도 통보가 된 상태에서도 마운드를 지켰다. 괜히 스파이크에 흙을 털면서 쓸 데 없이 시간을 끌었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 투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윤석민이 올라오자, 그는 뭔가 얘기를 건넸다. 글러브로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미안했어요. 내 딴에는 석민이 형 짐을 덜어준다고 원포인트를 자청한 건데…. 안타 맞고 더 어려운 상황을 넘겨주게 됐으니 말이예요. 감독님께서도 '어려운 상황에 내보내서 미안하게 됐다'고 하시다라구요. 제가 더 죄송했지요."

윤석민의 후회 "저도 인사했어야…"

결국 그들은 워크오프(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안타나, 홈런, 실책 같은 게 아니라 '끝내기 비디오 판독' 승리였다.

그리고 그 하루 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장면이 있었다. 경기 후 김기태 감독이 윤석민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 그림 말이다.

SBS Sports 인터뷰에서 윤석민이 그랬다. "사실 저도 상당히 놀랬어요. 저도 감독님 한 번 보고, 시선이 옆으로 가서 제대로 못봤어요. 저도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데…. 그냥 지나간 것 같아요.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주변에서 본 사람도 긴기민가 했는데 선수 본인이야 오죽했겠는가. 설마 나한테? 그런 생각 때문에 (인사를 받고도) 깍듯이 예를 차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인사 받은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그렇게 저를 존중해주시고, 믿어주시고" 많은 생각이 스치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은 안가지셔도 되는데, 마음들이 너무 고맙게 생각되고…. 앞으로 더 힘든 상황들이 많겠지만, 그런 거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감독이 투수에게 정중히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한다니…. 말이 되나? 우승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1경기 세이브일 뿐인데.

<스타뉴스>의 김우종 기자가 그 장면을 물었다. 김기태 감독은 "그런 것까지 봤냐"고 놀라며 "뭐, 뭐, 그…그냥 고마웠다"며 심히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스케치했다.

그의 진심이 그들을 마운드에 세웠다

김기태 감독의 스타일은 '형님 리더십'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젊고, 선수들과 소통을 나누는 데 장점을 가졌다는 말이리라. 하지만 그런 리더십은 종종 실패한다. 냉정하고, 강해야 하는 세계에 어울리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정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그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토요일 9-8 승리 후. 김 감독은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윤석민의 차례가 되자 모자를 벗고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그 다음 차례는? 늘 윤석민을 따라다니는 후배다. 맞다. 양현종이다. 그는 그 장면을 바로 옆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이튿날 스스로 청해서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섰다. 힘든 석민이 형을 위해서. 미안해 하는 감독을 위해서.

그라운드는 메마른 곳이다. 감정? 사치다. 한 푼어치의 사사로운 감정도 허락되면 안된다. 승부사는 비정해야 한다. 결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미안함' '고마움' '배려' 따위는 유약한 언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닐 때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렇게 됐다. 김기태의 미안함은 윤석민에게 위안이 됐고, 양현종에게 울림이 됐다. 그 진심이 그들을 마운드에 세웠다. 그건 팀이고, 그게 바로 그들이 싸우는 힘(전력ㆍ戰力)이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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