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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그들이 권혁이고, 그들이 김태균이다

조회수 2015. 7. 6. 0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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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일) 오전에 기상청이 발표한 일기예보다.

"현재 중부지방은 대체로 맑고, 남부지방은 구름이 많다. 오늘은 동해상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전국에 구름이 많겠고 서울과 경기, 강원영서, 충북북부, 경북북부내륙에 대기불안정으로 늦은 오후부터 밤 사이 소나기가 오는 곳이 있겠다."

"제주도는 흐리겠고 충남과 전북은 오후에 산발적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겠다. 오전 0시부터 자정까지 예상 강수량은 서울과 경기, 강원영서, 충북북부, 경북북부내륙에 5~30㎜다." 사실 이 때만해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나기' '산발적 빗방울'. 그런 단어들이 심각성을 해제시켰다. 설마 5~30㎜가 대전 중구를 겨냥하겠어? 낙관론이 대세였다. 맞아, 비가 좀 와야지. 농사짓는 분들 오랜만에 단비 좀 맞으시겠네.

[SPOTV 중계화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대전 날씨'

일찌기 그런 적이 없었다. 건드리면 안타였다. 1회말 홈팀의 공격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팔색 변화구를 시전한다는 백전노장 손민한도 꼼짝 못했다. 이용규가 물꼬(?)를 텄다. 기념비적인 시즌 100번째 안타였다. 그리고 3번 정근우의 적시타, 4번 김태균의 행운의 안타. 요즘 한껏 물(?) 오른 이종환이 또 득점타. 하위 타선으로 내려가도 뜨거운 화력은 식지 않았다. 무려 5-0.

와중에 두번이나 게임이 멈췄다. 이종환 타석 때 5분(6시19~24분)간 1차 중단. 권용관 타석에서 19분(6시30~49분)간 두번째로 스톱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비는 사그라들었다. 2회부터 다시 굵어지기 시작한 빗줄기. 김경문 감독이 심판에게 짧게 어필했다. 포수 김태군이 구심의 얼굴을 쳐다보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급기야 3회초. 세번째 중단이 선언됐다. 이 무렵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대전 날씨'였다.

날씨는 심상치 않았다. 사그라들 기미는 커녕 점점 세차게 뿌려댔다. 이미 그라운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바다였다. 다이노스 덕아웃에서는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피어났다.하물며 홈팀 덕아웃도 마음을 비운 것 같았다. 아마도 공식 판정을 앞두고 본부석 쪽에서의 교감은 있었으리라. 그 정도라면 당장 비가 그쳐도 속행이 어렵다는 걸 안다. 심판도 알고, 선수도 안다. 몇몇은 양머리를 만들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소박한 이벤트였으리라. 어느 네티즌의 댓글이 달렸다. '하늘이시여, 진정 3연승만 허락하시렵니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 '필승조'들이다

그 무렵이다. 강렬한 장면 하나가 [...구라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건 수십~수백명의 모습이었다. 마치 환영(幻影) 같았다. 흩날리는 빗줄기 탓에 세상이 온통 뿌연 가운데 처연해 보일 정도다. 그들은 우산도 없었다. 홑겹 비옷 차림이었다. 온몸을 적실듯 맹렬히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30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이미 대부분 관중들은 몸을 피했다. 비바람 막아줄만한 곳에서 속행을 고대하고 있었다. 5-0으로 이기고 있던 홈팀 선수들조차 마음을 비운 상태다. 양머리를 얹고, 애써 허탈함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양머리 바로 위, 그러니까 1루쪽 홈팀 응원석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수십~수백명의 '필승조'들이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그런 것이었으리라. 혹시라도 텅 빈 관중석이 속행/취소 결정에 영향을 끼치면 안된다는. '우리는 절대 이 경기를 버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너무나 간절한 메시지였으리라.

그들이 이글스의 견디는 힘이다

'김성근호'가 출범한 뒤로 이글스는 한시도 순탄한 날이 없었다. 늘 주력 선수의 부상에 시달렸다. 빈볼 시비, 약물 스캔들에도 중심에 있었다. 무엇보다 야신의 방식에 대한 찬반 논란은 끊임없이 각종 커뮤니티를 달궜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단단하다. 아직도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매달 반복되는 위기설을 너끈히 견뎌내고 있다. 누구 덕인가. 야신? 권혁, 이용규, 김태균?홑겹 비닐 옷이 장대비에 얼마나 버티겠는가. 아무 것도 없는 흥건한 그라운드를 무엇하러 30분이나 지켰겠는가. 몇 걸음만 옮기면 제 아무리 강한 빗줄기도 막아줄 안식처가 있는 걸 왜 몰랐겠나.하지만 그들은 비바람을 견뎠다. 자기들이 있어야 할 응원석을 지켰다. 맞다. 그들이 바로 권혁이다. 그들이 바로 김태균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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