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강민호 야신의 퍼즐을 풀다

조회수 2015. 6. 1. 14:37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강민호, 야신의 난해한 퍼즐을 풀어내다

어제(31일) 이글스의 선수 기용은 의외였다. 포수 때문이다. 야신은 선발 오더에 허도환을 썼다. 이건 뭘까? 언뜻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김경언이 빠지고, 이용규에게도 휴식을 줬다. 핵심 타자 2명을 제쳐놓고 하는 경기라면 당연히 공격력을 걱정해야 한다. 그럼 누가 봐도 허도환 보다는 조인성 아닌가?

그런데 정작 야신의 선택은 특이했다. 허도환은 5월 21일 이후 9경기만에 선발 마스크를 썼다. 혹시 선발 송은범 때문인가? 그렇지도 않다. 최근 그의 파트너는 주로 조인성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아마도 뭔가 깊은 뜻이 있으리라.

독한 번트, 더 독한 유인구

주력 타자 2명을 잃은 이글스는 울산 시리즈 마지막 게임에서 완패했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타력의 차이를 절감해야 했다. 그래도 유일하게 승부처라고 꼽을만한 순간은 있었다. 5회초 공격 때였다. 1사후 9번 강경학의 안타, 1번 정근우의 볼넷으로 만든 1, 2루였다.

이 순간 야신 특유의 비범한 수가 번뜩였다. 2번 권용관에게 나온 보내기 번트 사인이었다. 1사 후에 희생번트? 일반적인 교본에는 없는 작전이다. 아마 보통 감독이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독수(毒手)였다. 그럼에도 망설임조차 없었다. 단호했다. 지시는 완벽하게 이행됐다.

그 작전에 설득력을 부여하자면 이런 거다. 이글스는 1-3으로 끌려 가고 있었다. 불펜을 고려하면 승부를 봐야 할 순간이었다. 다음 타자는 3번 김태균과 4번 최진행. 자이언츠가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었다.

송승준-강민호 배터리는 김태균과 볼카운트 2-0으로 불리해지자 승부를 포기했다. 1루를 채우는 쪽으로 방향으로 잡았다. 2사 만루.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마주해야 할 타자는 최진행이었다.

그의 앞선 두 타석을 보자. 2회 선두타자로 나선 그는 볼카운트 1-0에서 송승준의 가운데 낮은 직구(141㎞)를 담장 너머로 날려보냈다. 두번째 타석에서는 역시 몸쪽에 바짝 붙인 빠른 공을 깔끔하게 받아쳐 좌익수 앞으로 보냈다. 2타수 2안타. 둘 다 그다지 못 던진 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주한 세번째 타석은 만루. 여기까지는 야신의 깊은 수읽기에 상대 배터리가 그대로 걸려든 모습이었다. 왜? 송승준의 빠른 볼은 이미 최진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게 입증됐다. 그럼 떨어지는 변화구로 승부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만루다. 폭투의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속지 않으면 볼카운트가 점점 불리해진다.

이 대목에서 울산 구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초구는 빠른 볼로 최대한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렸다. 그러나 빠졌다. 카운트 1-0. 이제 더 이상 피해갈 곳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승부를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다. 양팀 벤치도, 타자도, 모두들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터리의 선택은 유인구였다. 가운데로 오다가 떨어지는 128㎞짜리 스플리터(포크볼). '당연히' 직구라고 믿은 최진행의 배트는 헛돌았다. '아차' 하는 순간 주도권은 강민호에게 넘어갔다. '설마 2개 연속?'이라고 생각했지만 3구째도 130㎞ 스플리터였다. 헛스윙. 결국 타이밍에 혼란을 느낀 타자는 카운트 2-2에서 몸쪽 빠른 볼에 막혀 평범한 2루수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타자는 안타 2개를 치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승부구보다는 유인구가 효과적일 것이다.' 아마도 이게 강민호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 5회 최진행 타석 볼배합① 바깥쪽 직구 144㎞ = 볼② 가운데 스플리터 128㎞ = 헛스윙③ 가운데 스플리터 130㎞ = 헛스윙④ 바깥쪽 직구 143㎞ = 볼⑤ 가운데 스플리터 130㎞ = 파울⑥ 몸쪽 직구 143㎞ = 2루 땅볼

주말 2연전을 볼배합으로 풀다

다시 토요일 게임을 얘기해보자. 극적인 대타 홈런으로 역전승한 야신은 특이한 소감을 남겼다. 이성열의 얘기는 둘째고, 무엇보다 허도환에 대한 칭찬이었다. "오늘 최고 수훈선수는 허도환이다. 블로킹과 투수리드가 아주 좋았다." 그러면서 그는 승리가 확정된 뒤 벤치 안에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나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밝은 모습은 아주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자. 허도환이 그렇게 잘한 경기였나? 그는 후반부에 교체 멤버로 마스크를 쓰고 3이닝 동안 4피안타 볼넷 2개를 내줬다. 9회에는 황재균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1점 차가 된 뒤에도 최준석에게 안타를 맞았다. 결코 수월치 않은 막판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야신을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 게임의 마지막 타자가 강민호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칫 넘어갈뻔한 흐름, 볼카운트도 3-2로 팽팽했다. 여기서 허도환은 몸쪽 슬라이더(투수 윤규진)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삼진으로 경기가 끝났다.

주말 2연전을 패키지로 정리해보자. 단, 포인트는 결정적인 순간의 볼배합이다. 토요일 경기 8회 대타 이성열이 초구 카운트 잡으러 들어오는 직구를 노려서 역전포를 터트렸다. 그리고 막판에 회심의 변화구로 상대 포수를 삼진시키면서 게임을 끝냈다.

스몰볼을 추구하는 야신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팩트다. 리그 최정상급 포수를 상대로 볼배합에서 완승했다. 이건 다음 날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허도환을 극찬하고, 선발 마스크를 맡겼을 것이다.

일요일인 어제 경기. 야신은 유독 대기 타석에 있는 타자를 자주 불렀다. 상대방 배터리에 대한 분석을 직접 설파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1사 후에 나온 희생번트는 강한 독을 품은 수다. 그러나 만루, 볼카운트 1-0으로 몰린 가운데도 떨어지는 유인구로 상대방의 허를 찌른 것은 더 비장한 독수다. 그리고 이 한 수로 사실상 이날 게임은 정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이런 거다. 학점 짜기로 유명한 깐깐한 교수님이 어려운 문제를 냈다. 첫번째는 학생이 절절 매고 풀지 못했다. 그러나 두번째. 더 어려운 난이도에서는 답을 찾았다. 특이한 퍼즐의 해법은 상식으로 평범하게 접근하면 안된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