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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폴더 '류현진 관련'을 정리하며

조회수 2015. 5. 22. 0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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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 류현진 관련 > 을 정리하며

며칠 전이다. 옆에서 작업하던 선배가 갑자기 붉으락푸르락이다. "아...열 받는다"라며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다. 또 얼어붙은 모양이다. 슬쩍 넘겨다 봤다. '우와~' 바탕화면이 장난 아니다. 아예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무수한 동영상과 사진 파일들, 하다못해 워드 문서 하나까지 죄다 '차렷' 자세로 준비태세다. 그 중에서 물건(?) 찾는 것도 용하다 싶다.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거 정리 좀 해요. 그렇게 다 밖에 나와 있으면 속도도 느려진다는데."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화려한 걸 즐기는 편이 아니다. < ...구라다 > 의 취향이 그렇다. 그래서 바탕화면도 가능한 간결함을 유지한다. 가급적 아이콘 숫자도 줄이고, 웬만한 문서나 자료들은 폴더로 관리한다.

그럼에도 몇 달째 바탕화면에서 치우지 못한 파일들이 있다. '2014 체인지업 로케이션' '2014 체인지업 릴리스 포인트' '투심 변화폭' '투심 스피드' 등등. FanGraphs, BrooksBaseball 같은 곳을 서핑하다가 챙겨둔 자료들이다.

그가 오늘(한국시간 22일) 수술대에 누웠다. LA 국제공항(LAX)에서 머지않은 유명한 컬렌 조브 클리닉이었다. 다행히 세계적인 외과의사가 집도했다니 수술은 잘 마무리 됐으리라 믿는다.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그와 그의 가족들은 끝까지 외과적인 수술만은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재활 치료를 통해 회복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불가피한 상황이 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좌절하고, 절망했을까.

모두에게 그렇듯이 그는 각별하다. 늘 < ...구라다 > 의 컨텐트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였다. 가장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했고, 언제나 믿고 쓰는 원톱 주연이었다. 그를 통해 풍성한 소통이 이뤄지고, 많은 공감도 형성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고맙고, 소중했다. 그리고 대단했다.

살다 보면 그런 게 있다. 별 것 아닌데, 까짓 버려도 그만인데. 차마 그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받았던 이메일, 문자, 카톡... 달랑 '삭제-확인' 클릭/터치 두번이면 그 뿐인데 지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 ...구라다 > 가 쓰는 데스크 탑의 바탕화면에는 분명 '류현진 관련'이라는 폴더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썼던 그에 대한 글들, 지나간 자료들, 참고할만한 것들을 담아놓은 곳이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2014 체인지업 로케이션' '투심 변화폭' 등등의 데이터를 몇 달째 그곳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을 바탕화면에 그냥 방치한(?) 건 기다림이었다. 마치 멀리 떠난 가족의 방을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마음이랄까.

수술을 마친 그는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나타났다. 왼쪽 어깨를 보호대로 감싼 채…. 아마도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다. 늘 화창하던 LA 하늘도 오늘은 왠지 구름이 잔뜩이다. 아주 보기 싫고, 우중충하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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