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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S담쓰談]합법적인(?) 금지약물 '공인구 반발계수'

조회수 2015. 4. 22.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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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금지하고 있다. 선수가 자신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권장할 만하나 본인의 노력과 훈련이 아닌 약물에 의한 것이라면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까닭이다.

더욱이 금지약물은 선수의 건강에도 치명적 위협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스테로이드 계열 금지약물이다. 근력 강화에 탁월하지만 심혈관계에 이상을 줄 수 있다.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최소 13명의 운동 선수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민스포츠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때 약물 천국이었던 미국 메이저리그(MLB)보다는 덜 하지만 국내 적발 사례도 있었다. 2009년 에르난데스(당시 삼성), 2010년 로드리게스(당시 KIA), 2011년 김재환, 지난해 이용찬(이상 두산) 등이다. 감기약 복용 등의 이유가 있었다지만 어쨌든 금지약물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합법적인 금지약물'도 있다. 바로 공인구의 반발계수다. 공인됐고, 모두 같은 조건을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합법적인 반면 다소 기록에 비정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약물이 갖는 효과도 지닌다.

< '이게 바로 문제의 그 공' 최근 KBO의 반발계수 검사에서 기준치를 넘은 하드 스포츠 계열 에이치앤디가 생산한 공인구. 롯데가 쓰는 공이다.(자료사진=하드 스포츠) >

야구공은 반발계수에 큰 영향을 받는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방망이에 맞아 나가는 게 야구의 기본이다. 반발력이 크면 타구는 더 빠르게, 더 멀리 뻗는다. 투수와 수비수들이 그만큼 잡기 어려워 타자들이 득세한다. 반대로 반발력이 작으면 타구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덜 뻗어 투수들이 유리하다. 스테로이드 효과에 버금갈 수 있다.

그래서 각 리그는 공인구 반발계수에 대한 엄정한 기준치를 두고 있다. 선수들이 같은 조건 하에서 경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만 반발계수를 높이고 올리는 것은 각 리그의 몫이다. 다른 리그와 너무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기준치를 조정할 수 있다. 이른바 타고투저(打高投低), 반대로 투고타저 현상도 반발계수에 따라 가능할 수 있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야구기구(NPB)는 2011년부터 국제 대회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세계 대회에서 사용하는 공에 맞게 공인구인 '통일구'의 반발계수를 0.41~0.44로 조정했다. 기존보다 3m 정도 덜 나가는 공인구에 투고타저 현상이 현저해졌다.

이에 NPB는 고심에 빠졌다. 타자들이 풀이 죽은 리그가 재미없다는 비판이 쏟아진 까닭이다. 2012년 NPB 12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7개 팀의 평균자책점(ERA)이 2점대였고, 홈런 100개를 넘은 팀이 없었다.

결국 NPB는 2013시즌을 앞두고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조정했다. 그러자 홈런이 급증했다. 시즌의 절반도 치르지 않은 6월 초까지 512개의 홈런이 터져 2012년 시즌 전체 수치(881개)를 따라잡게 된 것. 바라던 타고투저를 이루게 된 것이다.

< '어쩐지 좀 다르더라' 2012년부터 일본에 진출한 거포 이대호. 오릭스를 거쳐 현재 소프트뱅크에서 활약 중이다.(자료사진=SBS CNBC) >

하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당초 NPB는 반발계수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엄청난 변화에 의문을 제기한 야구 팬과 선수 노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실을 털어놨다. 이에 NPB 총재 등 수뇌부들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합법적이라 해도 당사자들 몰래 조정한 반발계수는 결국 '금지약물'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KBO 리그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당초 KBO 리그는 2012년 역대 최다인 715만여 관중을 찍으며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13년 644만여 관중으로 줄었다. NC의 가세로 9구단 체제 하에 44경기가 늘었는데도 팬들은 감소했다. 류현진(LA 다저스)의 MLB 진출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화끈한 공격 야구로 리그 인기를 끌어올릴 방안을 세웠다. 외국인 타자 제도를 전격 부활시켰고, 공인구의 반발계수 조정도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해는 역대 가장 두드러진 타고투저 현상이 벌어졌다.

홈런, 타점 2위 에릭 테임즈(NC), 한국시리즈 MVP 야마이코 나바로(삼성) 등 외인들이 맹위를 떨치기도 했지만 공인구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넘어가지 않을 타구가 넘어가고, 살짝 넘어갈 공도 펜스 상단을 때리더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다만 KBO는 NPB처럼 조정을 몰래 한 게 아니라 쉬쉬 하면서도 공공연한 비밀처럼 퍼졌다.)

빅이닝과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나자 올해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는 달라졌다. KBO는 공인구 제작사에 반발계수 조정을 요청했다. 0.4134~0.4374인 기준치 상향선에 몰려 있는 수치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을 조정하는 의도인데 일단 정금조 KBO 운영육성부장은 "반발계수를 낮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기준치의 중간에서 형성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공인구 반발계수 논란이 불거졌다. 하드 스포츠의 자회사 에이치앤디가 생산한 공인구가 지난 17일KBO의 수시검사에서 반발계수 기준치를 초과했는데 공교롭게도 홈에서 홈런이 많이 나온 롯데가 쓰는 공이었다. KBO가 인정한 나머지 3개 업체는 이상이 없었다.

< '홈런친 게 죄인가' 사직 구장에서 올 시즌 홈런을 날린 롯데 정훈(왼쪽부터)-장성우-김대우의 모습.(자료사진=롯데 자이언츠) >

하드 스포츠의 공인구는 반발계수가 0.4414로 기준치를 0.004 넘었다. 보통 반발계수가 0.01이 높아지면 2m 정도 타구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0.004면 1m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홈런과 뜬공의 차이가 될 수 있는 데다 롯데가 이를 알고 큰 스윙을 하니 장타가 많이 나오지 않느냐는 의혹이 일었다. 롯데는 20일까지 홈 10경기에서 18홈런, 원정 7경기에서 5홈런을 때렸다.

이에 롯데와 하드 스포츠 측은 고의는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는 업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고, 하드 스포츠는 단순 결함이라고 해명했다. 이 업체 한동범 대표는 "고의가 있었다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며 일각의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야구공은 습도 등 조그마한 날씨의 변수에도 민감하다. 코르크와 실 등 내부 요소들의 수분율이 당일 습도에 따라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반발계수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범 대표는 "한 달에 300박스, 3만6000개의 공을 생산하는데 그 중 한 타스(12개)를 표본 삼아 검사를 한 것"이라면서 "물론 우리의 잘못이나 모두 기준치에 부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공인구 논란이 커진 것은 하드 스포츠의 공을 롯데만 사용한다는 점에서다. 롯데는 물론 원정팀도 함께 쓴다는 점에서 일견 공평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한화는 사직 3경기에서 6개의 홈런을 날렸다. 롯데보다 많은 수치다.

하지만 반발계수가 높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는 차이가 크다는 게 일부 야구 팬들의 의견이다. 그런 점에서는 NPB의 홍역 사례와 비슷한 면도 있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이는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많다. 반발계수를 높이면 타자들은 좋지만 투수들은 죽어나는 까닭에 임의로 조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야구인은 "야구는 투수놀음인데 공격과 득점력 높이자고 투수들을 혹사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내가 쳤으면 논란이 덜 됐을 텐데...' NC 에릭 테임즈는 올 시즌 괴물 모드를 달리고 있으나 사직구장에서는 홈런을 날리지 못했다.(자료사진=NC 다이노스) >

논란을 해소하는 방법은 단일구 도입이다. KBO 리그는 현재 4개 업체가 공인구를 생산한 공을 쓰고 있다. 때문에 어느 구단이 무슨 공을 쓰는지가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에 KBO는 빠르면 내년부터 단일구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10개 팀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한다면 최근 불거진 공인구 논란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금조 부장은 "MLB나 NPB 역시 단일구를 쓰고 있다"면서 "KBO도 이런저런 논란을 방지하고 국제적인 추세에 맞춰 2년 전부터 단일구 도입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KBO는 올해 하반기 중 단일구 제조업체를 선정한 뒤 내년부터 도입할 방침이다.

약물(?)도 모두가 함께 복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미리 알려만 준다면 또 기준치에서만 허용된다면 타고투저도, 투고타저도 충분히 납득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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