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현의 스포츠 On Air]아이들이 가르쳐주는 스포츠 정신

조회수 2015. 4. 15. 13: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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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은 구리시장기 리틀야구 결승전 중계를 다녀왔다. 사실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야구가 없는 월요일은 단비 같은 휴식일이기도 한데, 월요일마저 중계가 있으면 다소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야구 중계는 큰 부담이 없다. 경기 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참 재미있게 경기를 한다. 머리보다 엄청 큰 헬멧을 쓰고 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퍽 귀엽기도 하다.

경기 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에게 직접 자기소개를 시켜봤다. 장래희망과 함께 닮고 싶은 선수를 물었다.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 최정, 김광현, 강민호 등 하나같이 최고의 선수를 닮고 싶다고 수줍게 얘기한다.

인천 남동구와 김해시가 맞붙은 경기는 인천 남동구의 10대 2로 승리로 끝났다. 다소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이기든 지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심히 치고 달리는 모습이, 아마 빈볼시비로 어른들의 리그가 다소 얼룩진 직후라 더 인상깊었는지도 모르겠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우리나라 리틀야구 대표팀.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지난해 여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중계를 한 적이 있다. 미국 팬실베니아주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참가팀들이 모두 같이 합숙을 하는데, 경기가 없는 날에는 각종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등을 통해 서로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각국에서 온 대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자웅을 겨루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당시 우승을 차지한 우리나라 대표팀의 경기력도 대단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아이들이었다. 국제그룹 결승에서 우리나라에게 패해 최종 결승 진출이 좌절됐는데, 우리나라와 미국 일리노이와의 결승 경기에 우리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당시 객원 해설을 맡은 심재학 넥센 코치는 "이런 모습은 정말 놀랍다. 어른들이 배워야 할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나라를 응원했던 일본 리틀야구 대표팀. 신선한 충격이었다.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기억나는 장면이 더 있다. 미국 컴버랜드팀의 데이비드 벨리슬리 감독은 2패를 하며 탈락이 확정된 선수들을 경기 종료 직후 운동장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대단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당시 중계를 맡은 미국의 ESPN은 원하는 감독들에 한해 무선 마이크를 달았는데, 덕분에 데이비드 벨리슬리 감독의 스피치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얘들아 고개를 들어. 우린 정말 대단한 여행을 했어. 전광판을 봐 8대 7이잖아. 우리는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우리야!"

"이제 우리 주 전체가 들썩이고 미국 전체가 들썩이겠지. 왜 그런지 알아? 그들은 파이터를 좋아하거든. 스포츠맨을 좋아하고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을 좋아하지. 우리처럼 플레이하는 팀이 있다면 아마 그 팀은 분명 세계 최고일거야."

"나한테 이런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준 너희들을 사랑한다. 오랫동안 감독을 했지만 이런 순간이 없었어. 앞으로도 아마 잊지 못하겠지.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 여름의 멋진 소년들아!"

<경기가 끝나고 감동적인 연설을 남긴 벨리슬리 감독. 동영상 링크 http://espn.go.com/video/clip?id=11373945>

비단 야구뿐만 아니다. 지난해 10월 MBC꿈나무재단에서 선발한 대표선수들의 독일 축구연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동행했을 때도 아이들의 순수함에 깜짝 놀랐던 적이 많았다. 독일 선수들과 그라운드 안에서는 걱정이 될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는데, 경기가 끝나면 어느새 친구가 돼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축구를 매개체로 느낌을 공유하고 금세 공감대가 형성되는 모양이다. 패한 직후에는 분해서 눈물도 흘리지만 이내 웃으며 툴툴 털어버리는 모습이 순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성숙해 보였다.

현지에서 아이들을 직접 지도한 독일 축구의 레전드 프랭크 밀 감독도 한국의 소년들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을 독려했다.

<독일에서 한국 선수들을 잠시 지도했던 프랭크 밀 감독.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던 독일의 레전드다. '꿈나무축구 독일 원정기' 캡쳐>

아이들은 그렇게 스포츠를 접한다.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길 줄 안다. 경기 중에는 승패의 치열함 속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경기 후에는 뿌듯함 혹은 아쉬움 속에 상대를 격려하고 또 축하하고 덤덤히 다음을 준비한다.

결국 이게, 우리가 가끔은 잊곤 하는 스포츠 정신이 아닌가 싶다. 스포츠를 접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은 아마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성숙함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얼마나 성숙하게, 또 얼마나 순수하게 스포츠를 접하고 있을까. 각자 닮고 싶은 선수처럼 언젠가 프로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리틀야구 소년들에게, 빈볼로 얼룩졌던 지난 주말의 KBO리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꿈에 부끄럽지 않은 경기였을까.

리틀야구 중계의 터줏대감 한만정 위원의 경기 중 코멘트가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 점수 차가 벌어지더라도 공 하나하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 이런 부분은 프로선수들이라도 분명 배워야 하겠죠"

* 덧붙여, 1년 전 우리 곁을 떠난 그 아이들도 각자의 순수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미처 피지 못했던 그 꿈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글=박차현(MBC스포츠플러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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