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약팀 상대 '모범답안' 보여..과도한 흥분은 '금물'

조회수 2015. 9. 4. 11: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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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너무 약해 큰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지만, 8-0 대승은 분명히 시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3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벌어진 라오스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2차전에서 8-0 승리를 기록했다. 손흥민이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권창훈이 2골, 이청용, 석현준, 이재성이 각각 1골씩 기록했다. 한국은 2차 예선 2연승을 달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경기에서 경기력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라오스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4위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구성이다. 라오스 선수들은 대부분 축구와 생업을 병행하는 세미 프로다. 경기가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 스티븐 다비 라오스 감독이 웃으며 들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뒀다.

"라오스 선수들은 세미 프로다. 쿠웨이트와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이 선수들은 축구만 하는 선수들이 아니라 생업을 병행하는 세미 프로 선수들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이 경기가 라오스 선수들에게는 아주 큰 배움이 됐다."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다. 라오스는 90분 내내 밀집수비를 펼쳤다. 라오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골을 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점을 덜 하는 게 중요했다. 한국은 11명이 모두 수비를 펼치는 라오스를 상대로 8골이나 뽑아냈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밀집수비를 펼치면 골을 넣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포지션 변화가 인상적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에 4-1-4-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정우영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중앙에 기성용과 권창훈을 배치했다. 최전방에는 석현준이 섰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양쪽 풀백의 기용이었다. 왼쪽에는 공격성향이 강한 홍철을, 오른쪽에는 중앙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가 본업인 장현수를 놓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슈틸리케 감독의 구상이 눈에 들어왔다. 홍철은 마치 왼쪽 측면 공격수처럼 경기를 했고, 장현수는 뒤에서 김영권, 홍정호와 함께 상대 역습에 대비했다. 홍철이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손흥민은 좀 더 중앙으로 들어왔고, 반대편에 있는 이청용은 오히려 조금 아래로 내려와 경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적극적인 자리 변화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효과는 좋았다. 전반 9분 만에 왼쪽 측면을 파고든 홍철이 크로스를 올렸고, 이청용이 헤딩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11분에는 손흥민이 홍철이 내준 패스를 잡은 뒤 상대의 동작을 빼앗은 후 추가골을 터뜨렸다.

움직이는 홍철을 주목

두 골 모두 홍철이 만든 게 우연은 아니다. 전술적인 노림수가 들어 맞은 것이다. 대표팀은 전반 초반에 왼쪽 측면을 주로 공격했는데, 이는 수비숫자와 관련이 있다. 밀집수비는 움직이기보다는 자리를 지킨다. 수비가 자리를 지키면 이미 높은 위치에 있는 공격수들은 어쩔 수 없이 수비수와 멀리 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뒤에서 공격에 가담한 풀백은 다르다.

홍철이 도움을 주는 장면은 거의 비슷하다. 동료들과 공을 주고 받은 뒤 속도를 붙여 라오스 수비를 돌파했다. 서 있던 라오스 수비는 탄력이 붙은 홍철을 막기 어려웠다. 홍철에 시선을 빼앗긴 중앙수비들은 자신들이 막던 선수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홍철을 이용해 측면 공격이 효과적인 이유를 제대로 보여줬다.

전반 29분에 나온 권창훈의 골은 앞선 2골에 빚졌다. 권창훈은 측면 수비에 좀 더 집중하던 라오스를 중앙에서 괴롭혔다. 권창훈의 갑작스러운 슈팅에 골키퍼는 손을 쓰지 못했다. 이후 한국은 다시 한 번 측면에서 골을 터뜨렸다. 후반 12분, 홍철은 앞선 2번의 도움 장면과 비슷하게 석현준의 A매치 데뷔골을 도왔다.

전략의 변화, 방향전환

후반 16분 석현준이 나가고 황의조가 들어가면서 경기 양상이 변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활동반경이 넓고 발이 빠른 황의조를 투입하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그 전까지는 상대의 약한 측면을 줄기차게 공략했다면, 이 때부터는 적극적인 방향 전환으로 양쪽을 한 번에 흔들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만회골을 위해 라인을 조금 올린 상대를 노린 것이다.

전반전에 짧은 패스를 주로 하던 기성용은 공을 잡으면 긴 패스를 양측면으로 보냈다. 중앙에 밀집수비를 펼치던 라오스는 사이드라인에 붙어 있던 한국 측면 공격수들이 공을 잡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해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 공격수들은 어렵지 않게 수비를 돌파한 후 수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한국이 경기장을 좀 더 넓게 사용하면서 라오스 수비는 자리 지키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들이 조금씩 자리를 이탈하면서 한국 공격수들은 공을 드리블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고, 경기는 전반전에 비해 역동적인 모습이 됐다. 후반 28분, 손흥민이 해트트릭을 달성한 골도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손흥민은 돌파에 이은 슈팅으로 '손가락 3개'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집중력 잃지 않은 슈틸리케호

대표팀은 후반 추가시간에도 골을 터뜨렸다.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것이다. 결국 국내팬들 앞에서 8골 차이 대승을 일궜다. 한국은 라오스의 밀집수비를 뚫으면서 앞으로의 월드컵 예선전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얻었고, 레바논 원정을 앞두고 체력도 아낄 수 있었다.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경기였다.

물론 이 승리에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라오스는 앞으로 만날 팀 중에서 가장 약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팀이다. 체격적으로도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라오스전에서는 승점 3점과 좋은 감각만 얻어간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한국은 이 좋은 흐름을 레바논 원정으로 가져가는 데 골몰해야 한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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