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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의 타인의 시선] 박지성과 달라 더 기대, 손흥민 욕심 부려라

조회수 2015. 8. 29. 12: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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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곳에서 성공한 사람은 하나의 전범(典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이 된다. 같은 무대에 도전하는 후배들은 그 길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된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 가장 먼저 진출해 성공시대를 열었던 박지성은 선수들의 롤모델이다. 박지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은 이렇다. 성실한 생활, 언성히어로(Unsung hero), 두 개의 심장, 이타적인 선수. 박지성은 자기중심적인 플레이를 하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스타들 가운데서 다른 방식으로 빛났다.

그 뒤에 EPL에 도전한 선수들은 박지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선수들은 근면성실하고, 이타적이다. 박지성처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설기현이 레딩 시절 살짝 보여준 과감함이 가장 두드러졌다. 기대를 모았던 공격수, 이동국과 박주영이 자신들의 진가를 못 보인 탓도 있다.

손흥민은 다르다

손흥민은 이런 흐름에 맞는 선수가 아니다. 그리고 이를 따르려고 해서도 안 된다. 손흥민은 10대 후반, 함부르크SV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남달랐다. 해설위원들이 '아 저기서는 동료에게 패스를 넣어줘야죠~'라고 말할 상황에서 패스보다는 슈팅을 택했다. 측면에서 수비수 한 명을 동작으로 속인 뒤 강력한 슈팅을 날리는 게 손흥민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일각에서는 우려도 있었지만, 손흥민은 자신의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2010/2011을 앞둔 프리시즌에 벌어진 첼시와의 경기에서 존 테리를 넘어뜨리며 득점에 성공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 뛴 마지막 시즌(2012/2013시즌)에 차범근 이후 처음으로 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골을 터뜨렸다.

더 좋은 팀인 바이엘04레버쿠젠에서도 손흥민의 방식은 동일했다. 슈테판 키슬링이라는 골잡이와 함께 뛰면서도 자신의 골을 챙길 줄 알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손흥민의 경기 중 행동이다. 한국 선수들은 동료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드문데, 손흥민은 적극적으로 불만을 개진할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은 드리블을 즐기고 슈팅을 많이 하는 선수에게 '탐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데, 공격수들은 이것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공격수가 욕심 없이 유럽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경기 내내 세계적인 수준의 동료들에게 공을 달라고 욕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고, 확실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좋은 동료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공격수가 되는 게 중요하다. 손흥민은 그런 부분에서 다른 한국선수들과 분명히 다르다.

토트넘은 골을 원한다

토트넘이 괜히 400억 원이나 주고 손흥민을 영입한 게 아니다. 토트넘은 손흥민과 같은 유형의 선수를 필요로 했다. 올 시즌 개막 후 토트넘이 리그 3경기에서 넣은 골은 3골에 불과하다. 지난 시즌 21골을 넣었던 해리 케인은 집중 견제를 이기지 못하고 있고, 2선 공격수들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토트넘 2선 공격수 구성은 비슷하다. 크리스티안 에릭센 정도를 제외하면 소위 '공을 예쁘게 차는' 유형의 선수들이 많다. 나세르 샤들리, 무사 뎀벨레, 에릭 라멜라와 같은 선수들은 득점 보다는 도움에 집중한다. 케인이 막히면 이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 토트넘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손흥민을 바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흥민은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기술수준의 고저를 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토트넘이 필요한 것은 골이다. 그 부분에서는 손흥민이 다른 선수들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골대 안으로 슈팅을 날릴 수 있는 게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이다. 토트넘에는 지금 그런 선수가 없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클링통 엔지와는 경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엔지는 지는 시즌 올랭피크리옹에서 공격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리그 30경기에서 7골을 터뜨렸다. 토트넘 선수들 가운데 손흥민과 가장 비슷한 유형이다.

박지성과 다른 길로 성공하길

손흥민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것도 박지성과 다른 길로. 손흥민의 성공은 상징적인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아시아권 선수들의 성공공식이었던 조력자 방식이 아닌, 해결사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현재 레스터시티에서 뛰는 오카자키 신지와 함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토트넘은 맨유, 첼시 그리고 맨체스터시티와 같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은 아니지만 확실히 경쟁력이 있는 팀이다. 게다가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다.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줬던 시원한 슈팅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동료, 후배들이 EPL로 가는 길은 더 넓어질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축구를 보는 눈도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영웅이나 스타는 같은 통과의례를 거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험을 이겨낸다. 손흥민이 박지성과 다른 방식으로 EPL에서 성공하길 바란다. 손흥민이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대한축구협회, 토트넘홋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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