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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의 타인의 시선] 女대표들이 비장한 것을 이해하시라

조회수 2015. 4. 30. 22: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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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웃다가도 멈춘다. 꺄르르 대화를 나누다가도 정색한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인터뷰 직전과 직후 모습이다. 극과 극이다. 한국시간으로 27일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 시상식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지소연도 국내에서 특히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한 인터뷰는 조금 딱딱하게 임한다. "다음(시상식)에는 한복을 입을래요"와 같은 발랄한 인터뷰는 기대하기 어렵다.

팬들 사이에서 '귀요미'로 통하는 전가을도 마찬가지다. 전가을의 국가대표팀 인터뷰는 "책임감", "국민들의 기대" 등의 무거운 단어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서연, 임선주와 같은 미녀스타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여민지도 마찬가지다. 여자대표선수들의 인터뷰는 비장미가 있다.

남자대표선수들도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조국과 민족을 언급하지만, 여자대표선수만은 못하다. 여자대표선수들이 쓰는 단어가 훨씬 더 묵직하다. 오는 6월 벌어지는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밝힌 지소연의 출사표는 "어린 친구들이 우리 모습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이는 축구를 하고 싶다"다.

경기가 끝난 후의 인터뷰도 같은 양상이다. 여자대표선수들은 경기에서 패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세상이 끝난 듯이 슬퍼한다. 아니 마음 아파한다는 게 더 가까운 표현일 수도 있다. '2015 호주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패한 뒤 손흥민이 눈물을 흘린 것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여자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북한에 패한 뒤 거의 더 많은 선수가 손흥민과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라서, 더 감성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자대표선수들은 항상 여자축구 전체를 안고 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지라도. 자신들의 경기 결과가 여자축구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축구의 구조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각급 청소년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저변을 확대하지 못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여자축구 활성화 지원 종합 계획'도 실효를 보지 못했다. 마음만 앞선 정책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여자축구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A대표팀이 잘해야 한다." 선수들이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축구전문가들은 여자대표팀이 오는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지만, 그 뒤에는 뛸 선수조차 없을 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여자대표선수들은 자신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좋은 성적을 거둬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 자신들이 여자축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이 성적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자대표선수들이 경기장을 찾을 관중숫자나 TV중계 시청률을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대표선수들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쓴다. 17년 만에 국내에서 벌어진 친선전을 앞두고도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시청률이었다. 대표팀 공격수 정설빈은 "남자축구는 몇 프로 정도 나오나? 남자 A매치는 몰라도 남자프로축구보다는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우리는 국가대표팀이지 않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자축구의 현실은 다른 나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자축구는 어디나 남자축구보다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자축구의 현실을 이렇게 온몸으로 바꾸려는 대표선수들은 없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학원중심이 아닌 클럽 중심의 새로운 여자축구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팬들이 관심을 보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여자대표팀의 경기 내용과 성적을 넘어 경기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줄 수도 있다.

여자대표팀은 30일 월드컵에 나설 26명의 대표선수명단을 발표했다. 여자대표팀은 5월 8일부터 15일까지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한다.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훈련결과를 토대로 최종 23인을 추린다. 여자대표팀은 20일 미국으로 출국해 전지훈련을 한 뒤 6월 9일 브라질과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13일에는 코스타리카와 17일에는 스페인과 경기한다. 여자대표팀의 목표는 8강 진출이다. 지소연과 박은선 그리고 황금세대가 함께라 기대가 크다.

당장 여자축구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규모의 차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쉬운 것부터 바꿔가면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 여자대표팀이 12년 만에 월드컵 도전에 나선다. 그 사실만 기억하시라. 그리고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비장한 인터뷰를 하더라도 이해하시라. 그리고 "걱정 말고 월드컵을 즐기라"고 말해주면 된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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