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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의 타인의 시선] 난민선에서 태어난 선수, 리오 마부바

조회수 2015. 4. 23. 09: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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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 되기 전까지 그의 국적란은 비어 있었다. 출생지만 기재돼 있었는데, "바다에서 태어남(Né en mer)"이라고 써 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이 아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릴의 미드필더 리오 마부바(31)다. 마부바는 OSC릴의 주장으로 활약했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도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섰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다. 지롱댕드보르도에서 데뷔해 비야레알을 거쳐 릴에서 뛰고 있다.

마부바가 바다에서 태어난 사연은 이렇다. 1984년 앙골라에서는 내전이 발발했고, 많은 앙골라 국민들이 해외로 피난을 나섰다. 마부바의 아버지인 릭키 마부바(자이르 대표팀 출신으로 '1974 서독월드컵'에 출전했었다)와 어머니 테레스 마부바(앙골라 출신)는 당시 앙골라에 살고 있었는데 내전을 피해 자녀들을 데리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선에 올랐다. 마부바는 난민선이 공해상에 도달했을 때 세상으로 나왔다. 마부바의 가족은 프랑스에 있는 대피처에 자리를 잡았다.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마부바는 2003년 보르도에서 프로로 데뷔했고, 2005년에야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야말로 인간극장에 나올 정도의 인생역정이다.

이런 경력을 가진 마부바는 지난 20일 프랑스의 스포츠전문채널인 '카날+'의 프로그램 '그랑주르날 초대석'에 출연했다. 최근 개인과 팀 성적 모두 좋지 않은 마부바(릴은 2014/2015시즌 리그앙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이다가 최근 조금씩 살아나며 33라운드 현재 8위. 마부바는 26경기 출전 1골)가 초대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축구 때문은 아니다. '카날+'는 최근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다 침몰해 최악의 인명사고(28명 생존, 800명 사망(UN추산))를 낸 난민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부바를 초대했다. 초대석 제목은 '이주자(난민): 축구 스타의 증언(Migrants: le témoignage d'une star du foot)'이었다.

마부바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난민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부모님이 난민선에 탄 이유 등에 대해 말했다. 그는 "1984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앙골라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지만(마부바는 2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14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형제들에게 당시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난민의 아이로 성장했던 마부바는 진행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경기장에서는 다혈질적인 면모를 보이는 마부바지만 31년 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이들이 끔찍한 일을 당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사실 최근 유럽의 상황을 보면 마부바와 같은 성장배경을 가진 선수가 더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번 침몰사고를 포함해 4월에만 최소한 1300명 정도의 이주 시도자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게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발표다. 2015년 4월 현재까지 희생자는 최소한 1776명. 2014년에는 20만 명이 넘는 이주 시도자들이 어떠한 서류도 없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땅을 밟았다고 하니, 상황을 대충 짐작할만하다. 북아프리카의 정치적인 상황이 복잡해지고 내전과 테러가 계속해서 발발하면서 마부바의 가족처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선태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찾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람페두사 섬은 이탈리아 최남단에 있는 섬(튀니지로부터 불과 120km가 떨어져 있다)으로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밀항지다. 이 섬은 필연적으로 이주자들의 접근, 사고와 관련돼 있었고, 교황이 섬을 방문한 날도 166명의 이주자들이 섬으로 밀항했다. 교황은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서 강론했다. 교황은 "줄곧 심장이 가시로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며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내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양심에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현대인들은 이웃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축구는 단독자가 아니다. 축구는 그 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스포츠 스타를 초대하는 '그랑주르날 초대석'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는 마부바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부바와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들이 왜 위험한 난민선에 탈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해 기억하자는 이야기다.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잊지 않는 것은 매우 능동적인 일이고, 힘도 세다.

"(희생자는) 나였을 수도 있고, 우리 가족이었을 수도 있다"

마부바의 말은 큰 울림을 지닌다. 2015년, 마부바는 더 이상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경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다. 제2의 마부바들이 세계 각지에서 혼자 힘으로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공을 차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동남아를 떠난 난민선이 한국으로 접근하다 사고가 났다는 보도는 가끔씩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마부바와 같은 성장배경을 가진 선수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마부바를 기억한다면, 그 선수가 K리그에 데뷔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축구를 드라마 혹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축구를 통한 연대와 성장 그리고 극복. 축구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 마부바가 될 수도 있다. 비약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출생지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현 그대로 '거기서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기억하고, 그런 일이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게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로마는 전쟁에서 이긴 뒤 개선행사에서 포로들에게 이렇게 소리 치도록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 -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지금은 성대하게 개선하지만, 언젠가 포로가 되거나, 패배자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는 이야기다. 세상 일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인 셈이다. 우리가 마부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카날+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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