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슈퍼매치, 균형이 무너져 더 기대된다

조회수 2015. 4. 20. 1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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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상태보다는 불완전 상태가 더 재미있다. 모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팽팽한 0-0 경기도 재미있지만, 한 팀이 균형을 깨는 득점을 성공시킨 후에 경기가 더 재미있다. 골을 넣은 팀은 승리를 지키려 할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지지 않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뒤지고 있는 팀은 수비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앞선 팀의 역습 성공확률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치고 박는 접전이 이어질 것이다.

라이벌간의 관계도 그렇다. 라이벌 간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균형이 존재한다. 라이벌이라는 단어 자체에 균형이라는 단어가 생략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한 쪽이 이기는 경기라면, 맞수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번 어느 팀이 이기면, 다음 번에는 또 다른 팀이 이기는 식이다. 양 측 모두 균형을 맞추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이유다.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슈퍼매치'도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윤성효 감독(현 부산아이파크 감독)이 수원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에 6승 1무의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서정원 감독이 수원에 부임한 이후에는 서울이 5승 2패로 앞섰다. 지난 18일 경기 전까지 두 팀의 상대전적은 33승 21무 25패, 수원의 우세였다.

18일 경기는 사건이었다. 수원이 서울을 5-1로 이겼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1-1로 팽팽했던 경기는 후반전에 급격하게 달라졌다. 수원이 4골을 퍼부으면서 서울을 넉다운시켰다. 최용수 서울 감독이 경기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오늘 같은 슈퍼매치는 하고 싶지 않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울 구단과 서울 팬은 이날 경기 결과를 지워버리고 싶겠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날 경기는 모두에게 호재다. 서울은 잃어버린 균형을 찾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은 수원전 대패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20일 벌어지는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광저우헝다전 대비 기자회견에서도 "주말 경기 패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할 것이다.

수원은 수원대로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수원은 슈퍼매치에서 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이상호와 정대세를 전면에 내세워 매력적인 일화들을 만들 수 있다. 골을 터뜨리지 못했던 공격수가 라이벌을 상대로 골과 도움을 몰아치며 부활하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정대세가 리턴매치 승리까지 예고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이다.

라이벌전에서 큰 점수 차이가 나온다고 해서 다음 경기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전인 엘클라시코에서도 종종 다득점 경기가 나온다. 스페셜원 주제 무리뉴 감독도 레알마드리드를 이끌 때 FC바르셀로나에 0-5로 패한 적이 있다. 이날 경기는 무리뉴에 굴욕이었지만, 무리뉴는 패배를 딛고 바르사에 몇 차례 복수를 했다.

이런 구도로 라이벌전이 지속되면 지켜보는 재미는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은 이제 수원의 공격을 차분하게 기다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공을 바닥에 세게 내려칠수록 반발력은 커진다. 슈퍼매치라는 공도 마찬가지다. 수원이 공을 세게 내리쳤으니, 다음 번에는 더 높은 곳에서 경기가 시작된다. 높이 올라온 공을 세게 치면 저번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 않겠나.

슈퍼매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리그 자체의 긴장감을 키울 확률도 높다. 서울을 만나는 팀들은 서울을 연패로 몰아 넣으려 할 것이고, 서울은 무너진 자존심을 어디서든 세우려 할 것이다. 수원을 만나는 팀들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이들을 꺾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할 게 분명하다. 수원의 머릿속에는 연승이 있다. 이렇게 리그 내에서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 생기게 된다. 도미노가 이쪽으로 쓰러지든 저쪽으로 쓰러지든 팬들은 즐겁다.

18일 경기는 다행히도(한쪽에서는 불행히도) KBS1을 통해 생중계됐다. 경기 결과가 재생산되는 속도와 양이 다른 때보다 빠르고 많다. 경기를 지켜본 이들 혹은 결과를 전해들은 이들의 반응은 대개 긍정적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한 사람이 크게 넘어지거나, 세게 맞을수록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한 경기에서는 점수 차이가 벌어지면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연속적인 관계에서는 그 반대다. 당사자들은 평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제3자들은 다음 대결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당사자와 제3자 사이에 있는 양 측 팬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 대립한다. 다음 번에는 누가 싸움을 붙이지 않아도 큰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6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질 두 팀의 재대결이 기다려진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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