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팬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MLS 교훈

조회수 2014. 12. 19. 17: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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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한양대학교에서는 경향신문·스포츠경향 주최로 한미축구산업포럼이 열렸다. 발제자 5명 중 기자의 머리와 마음을 흔든 것은 미국 미시간대학교 곽대희 교수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주제는 'Building "My" Team Through Fan Engagement'다.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팬들을 관여·참여시킴으로써 '내 팀' 의식을 수립하자는 정도일 것 같다. 내용이 워낙 신선하고 파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동시에 팬들에 대해 MLS가 얼마나 연구하고 있는지도 다시 한 번 느꼈다.

K리그 구단들은 그동안 팬들에 대한 정보를 거의 취합하지 못했다. 있다고 해도 인구통계학적인 내용과 경기장 내 소비형태 및 비중을 묻는 정도가 전부였다. MLS처럼 소비자 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해 결과를 도출한 것은 전무했다.

"K리그가 팬들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팬들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냐"는 곽 교수의 말은 가공할 만한 경종과 같았다. 곽 교수가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전한다. 조금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1인칭으로 정리한다.

[곽대희 교수]

K리그와 MLS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가장 좋은 상품은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 있다는 것이다. 로컬 선수들은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다. 국내 다른 종목들의 힘이 강해 국내 경쟁이 어렵다. 프로보다는 국가대표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이 점은 K리그와 MLS가 거의 비슷하다. 즉 MLS가 해냈다면 K리그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50년이 되면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는 3명 중 한 명 꼴이 된다. 그래서 MLS가 세운 SUM(SOCCER UNITED MARKETING)이라는 회사는 MLS 경기에다 미국대표팀 경기와 멕시코대표팀 경기를 포함해서 중계권을 팔았다. 미국 내에서 멕시코대표팀 경기 시청률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미국 내 스포츠 시청률을 보면 프리미어리그 최고 인기매치보다 멕시코대표팀 A매치가 두 배 이상 높다. 멕시코 A매치 시청률은 미국대표팀 A매치의 3분의 2 수준에 이른다. 물론 MLS의 시청률은 이런 것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결국 MLS는 미국대표팀, 그리고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 MLS를 함께 팔고 있는 것이다.(참고로 내년부터 MLS는 8년 동안 연간 9000만달러를 중계권으로 받는다)

MLS는 팬들에 대한 분석이 잘 됐고 정보가 많다. 축구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구통계학적 측면을 넘어서 아주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알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WE ARE YOURS"다. 우리 구단은 팬 여러분의 것이라는 의미다. 축구단 매출을 늘리고 싶나? 경기장 채우고 싶나?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팬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MLS NEWS LOGOS]

팬들의 성향은 어떠한가. '팀의 팬이냐 vs 종목의 팬이냐' 부터 알아보자. NFL 경우다. 팬들은 그 팀이 내 팀이어야지 돈을 낸다. 리그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 돈을 두 배 이상 쓴다. 리그 로고를 팀에 알맞게 바꿀 수 있도록 한 게 내년 시즌 MLS가 처음이다. 그건 팀에 대한 중요성을 MLS가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K리그는 '토크 어바웃 K리그'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 세계 모든 종목에서 연맹, 협회는 팬들의 비판 대상이다. '토크 어바웃 K리그'가 아니라 '토크 어바웃 YOUR TEAM'으로 하는 게 어땠을까.

[Immortal Fans]

팀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는 '프라이드'와 '감정이입'이 핵심이다. 두개를 효과적으로 이뤄내면 팀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기에서 패한 팀 지역이 이긴 팀 지역보다 포르노 사이트에 더 많이 접속했다. 특히 승부가 사실상 갈린 직후부터 더욱 더 뚜렷했다. 그리고 경기에 패한 팀 지역 사람들이 몸에 좋지 않은 지방질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한 브라질 축구단에서는 장기기증 캠페인을 벌였다. 'Immortal Fans'라는 이름이었다.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이 축구에 대한 열정을 약속하는 식이었다. 즉 "당신의 심장을 받았으니 당신의 심장이 뛸 때는 내가 그 팀을 응원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브라질은 일반적으로 장기기증이 활발하지 않는데 이 구단에서는 아주 활발하게 장기기증서역이 이뤄졌다. 팬들의 프라이드는 우리 팀이 라이벌 원정에서 이겼을 때가 가장 높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 팀의 라이벌이 패했을 때도 우리 팀의 프라이드가 높아진다. 그래서 미국 어떤 지역에서는 그 지역팀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팀이 패할 때 샌드위치를 공짜로 하나 더 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이름도 'SET THE FIRE'였고 가게 이름도 'FIREHOUSE'였다. 즉 이를 정리하면 '인그룹'에서는 즐거움이 증가할수록, 아웃그룹'에서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커질수록 정체성이 강해진다는 의미다.

또 하나 예를 들겠다. 이겼지만 지루한 경기, 졌지만 재미난 경기를 봤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에 여러분들은 그 팀의 다음 경기 티켓을 사겠나. 지루해도 이긴 경기 표를 사는 사람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무척 높은 사람들이다. 반면 졌지만 재미난 경기 표를 다시 구매하는 사람들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도 경기에 만족하면 재구매한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팬들의 충성도에 따라서 기호, 취향이 다르며 그렇게 서로 다른 팬들의 정체성을 구단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예다. 유명한 골동품 탁자와 내가 직접 만든 탁자가 있다고 치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내가 직접 만든 탁자다. 그건 그 탁자에 자기 노력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팬들도 똑같다. 팬들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제품에 대해 훨씬 높은 가치를 느낀다. 그게 바로 구단들이 팬들의 관여와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하는 이유다. 팬들이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된다면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또 포트폴리오를 여러 개로 나눠주면 각자 정체성에 따라서 다양한 팬들이 모인다. 한 두 명의 스타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여러 명의 스타를 만들면 된다. 그러면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팬들이 각자 다른 스타를 좋아하게 된다.

포틀랜드 팀버스는 시즌권을 구입한 1975명(1975년은 구단 설립연도)에게 구단 행정을 결정할 수 있는 투표권을 준 적 이 있다. 콜럼부스 크루는 서포터스가 하나가 아니라 독특한 게 여러 개다. 또 콜럼부스는 지자체로부터 10만 달러를 받고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아래와 같은 설문을 한 적 있다. 내용은 "콜럼부스를 콜럼부스답게 만드는 음식과 음료는 무엇이냐", "콜럼부스를 콜럼부스답게 만드는 옷은 무엇이냐"는 식이다. 이것은 그 지역에 대한 프라이드를 축구 경기장 안으로 갖고 들어온 것이다. 스포르팅 KC라는 팀이 있다. 그 팀은 우승도 했지만 팬들이 별로 없었고 마케팅 성과도 약했다. 프로모션은 열심히 했는데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프로모션은 구단이 전략 없이 하는 홍보활동인 반면 마케팅은 팬들의 니즈를 파악한 뒤 거기에 맞춰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팀은 노력해도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지금 거기 경기장은 미국에서 IT가 가장 발전한 경기장이다. 2만5000명 관중이 경기장에서 앱을 깔고 경기장에서만 쓸 수 있는 와이파이로 접속하면 경기장 곳곳에 (방송중계 카메라와 다른) 설치된 7개 카메라가 찍은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경기장에 들어온 사람만이 그걸 볼 수 있고 그들이 본 장면은 경기장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닉한 장면이다. 그 팀은 그렇게 미래 팬들이 될 18~35세의 젊은 팬들을 집중 공략했다.

MLS구단 페이스북 메인화면과 K리그 구단의 메인화면을 비교해보자. MLS 구단의 메인 사진은 선수가 팬들과 셀카를 찍거나 선수들이 수많은 팬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응원가를 부르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K리그 구단들의 메인화면은 대부분 선수 사진이다. 수원 삼성에서 올해 고종수가 와서 이벤트를 한 것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페이스북에서 '쉐어' 또는 '라이크'된 게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선수들이 승리한 뒤 팬들과 함께 응원가를 부르는 사진이다. 이게 바로 팬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K리그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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