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어라운지]김정미-전가을, "남자친구요? 아직 축구가 더 좋아요"

조회수 2015. 6. 29. 13: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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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과 함께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낸 태극낭자들과의 수다는 내내 유쾌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부상 투혼으로 윤덕여호의 골문을 사수한 김정미(31)와 좌측면 날개로 맹활약한 전가을(27, 이상 현대제철)을 직접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한국 여자 축구가 2003년 미국 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두 번째로 출전한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었다. 브라질과의 첫 경기는 0-2 패배, 슬픔으로 끝났다.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은 노여움으로 가득했다. 종료 직전 실점하며 통한의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스페인전서 극적인 2-1 역전승과 함께 16강 진출의 기적은 기쁨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또 프랑스와의 16강전 0-3 완패는 많은 교훈을 안겨줬다. 환희와 아쉬움의 진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6일 월드컵 스타 김정미와 전가을을 현대제철 숙소에서 만났다.

-금의환향이다. 팬들의 환대에 놀라지 않았나.

김정미(이하 김) :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해외에 많이 나갔다 들어오곤 했는데 이번에 팬들이 제일 많았다. 조금 창피했다.(웃음)

전가을(이하 전) :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출정식서 '한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산다는 게 정말 외로웠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전 : 지나고 보니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후회를 많이 했다. 한국에서 여자 축구 선수로 산다는 게 외로운 게 아닌데...감정을 추스르니 여자 축구 말고 핸드볼 하키 등 관심을 덜 받는 다른 종목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다. 올 시즌 왼쪽 무릎 인대 염증 때문에 리그에서 경기를 못 뛰고 4개월 동안 재활 센터에만 있었다. 월드컵에서 넣은 게 올해 첫 골이었다. 명단 발표와 출정식 때까지만 하더라도 통증이 있었는데 미국 전지훈련서 사라졌다. 실전감각은 아예 없었다. 힘들어도 쉴 수 없었던 이유였다.

-김정미의 두 번째 월드컵은 어땠나.

김 : 한 번 경험했지만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12년 전의 나는 대학교 2학년이라 너무 어렸다. 언니들도 많았고 따라가기도 버거운 나이였다. 그래서 이번에 긴장을 많이 했다.

-최고참이자 월드컵을 경험한 유이한 선수였다. 후배들에게 어떤 걸 조언했나. 부담은 없었나.

김 : 나도 긴장이 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후배들에게 '괜찮다. 너희들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잘하자'고 얘기를 많이 해줬다. 최고참으로서 부담감도 당연히 있었다. 선배가 잘 못하면 후배들에게 잘하자고 얘기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고 잘하려고 했다.

-전가을에겐 첫 꿈의 무대였다.

전 : 미국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실감이 안났다. 주위에서 엄청 떨릴 거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떨려봤자 얼마나 떨리겠어'라고 생각했다. 브라질과 경기에 앞서 어깨동무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데 손이 덜덜덜 떨렸다. 원래 잘 떨지 않고 즐기려는 마인드가 강한데 관중도 많았고 돔경기장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동료들 손이 떨리는 것도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경기와 인상적인 선수는 누구였나.

김 :스페인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 선수들은 다 잘했다.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스피드와 저돌성, 피지컬과 몸싸움 등을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페인과의 경기 전후 기분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김 : 정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전반에만 실점하지 말자고 입을 모았다. 체력적인 부분은 자신 있었다. 그럼에도 먼저 골을 내줬다. 우리가 또 얘기했던 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였다. 전반전이 끝난 뒤 감독님이 '지금껏 해온 게 아깝지 않냐. 이렇게 하고 나올 거냐'고 질책했다. 모두가 '후반에 정말로 끝까지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마음 먹었을 때 될 때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할 때도 있는데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응원해줘서 기적을 일굴 수 있었다.

-전가을에게 브라질전은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전 : 많이 아쉬웠다. 의도치 않게 몸이 굳어 많이 뛰려고 했는데 너무 급하게 했다. 경기 후 어렸을 적 언니들과 뛴 기분이었다. 경험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브라질전에 골찬스가 올 것이라곤 생각도 안했다. 내가 못했다. 더 높은 수준의 선수였다면 넣었을 것이다. 그런 찬스서 넣어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혼자 속상했다.

-코스타리카전 골이 더 기뻤을 것 같은데.

전 : 브라질전이 끝난 뒤 다음엔 실수를 안한다고 말했는데 왠지 모르게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이 있었다. 막상 경기를 뛰어보니 별 게 아니었다. 1차전엔 많이 떨렸는데 다음 경기부터는 관중들의 함성도 그냥 즐겼다. 브라질전이 끝난 뒤 에너지가 확 올라왔다. 찬스가 한 번이라도 오면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헤딩 골은 점프할 때 계산한 게 아니다. 전날 훈련 때 (강)유미가 올려줘서 비슷하게 넣었다. 그래서 느낌이 좋았다. '유미야 이번엔 길게 올리지 말고 짧게 올려줘. 잘라 들어갈게'라고 약속을 했는데 비슷한 장면으로 골이 들어가니 소름이 돋았다. 유미가 정말 좋은 크로스를 올려줬다.

-스페인전은 어땠나.

전 : 코스타리카전 무승부는 진 기분이었다. 분위기도 최악이었다. 그래도 '다시 해보자'라고 입을 모았다. 코스타리카전은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다. 어차피 우리는 스페인과의 싸움이었다. 희망도 있었기 때문에 불씨가 됐다. 경기 막판 프리킥을 내줬을 때도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은 없었다. 그날은 어떤 팀하고 해도 우리가 이길 것 같았다. 그만큼 간절했다. (김)수연이 결승골도 솔직히 운이 좋은 골이었다. 행운의 여신이 손으로 쳐준 것 같다(웃음). 난 (조)소현이가 동점골을 넣었을 때부터 울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눈시울이 붉었다. 모두 눈물을 참으면서 뛰었다.

-솔직히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았나.

김 : 매 경기 잘하려고 했다. 독일이나 우승후보들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조별리그부터 매 경기가 결승이었다. 자신감이 정말 중요한데 미국과의 평가전 무승부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전 :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짊어진다는 게 중독이 되는 것 같다. 책임감을 갖고 성과를 이뤘을 땐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다. 그래서 욕심이 많이 생겼다. 16강서 '프랑스 선수들도 그래봤자 여자인데'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브라질 스페인 프랑스는 개인 능력이 정말 좋았다. 그런 선수들이 11명이 모이니 진짜 무서웠다. 조직력보다 개개인 11명이 무서웠다. 한국도 세계 수준이 되려면 개인 기량의 발전이 가장 필요하다. 이러면 안되는데 경기 도중에 탄성이 나왔다. 피부로 느껴보니 정말 잘하더라. 몸싸움을 시도한 내가 오히려 아플 정도였다.

-김정미의 프랑스전 부상 투혼이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김 : (박)은선이와 부딪혀서 많이 미안해 했는데 진짜 괜찮았다.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경기를 너무 무기력하게 진 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전가을은 발에 생긴 물집이 화제가 됐는데.

전 : 나도 그랬지만 다른 선수들도 다 찢어지고 그랬다. 미국서 인조 잔디에 적응하면서 잡힌 물집이다. 물집이 터진 뒤 아물어서 캐나다서는 아프지도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10년 넘게 한국의 골문을 지켜왔다.

김 : 후배가 선배를 이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수문장 자리를 물려주는 게 아니라 같이 경쟁하면서 후배가 월등함을 느끼면 내가 쫓아가고, 또 후배가 나를 쫓아오기도 하다가 후배가 올라가는 그림이 돼야 발전할 수 있다. 후배가 빨리 나를 치고 올라왔으면 좋겠다.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의 민유경이 내 후계자다. 대표팀서 한 번 같이 훈련을 해봤는데 키도 크고, 힘도 좋더라.

-한국 여자 축구의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힌다. 어떤 노력을 해왔나.

전 : 어렸을 때부터 기술이나 묘기 부리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가 마라도나를 정말 좋아하셨다. 초중학교 때부터 마라도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그 때부터 내 우상은 마라도나였다. 중학교 때 감독님도 항상 드리블과 묘기를 하셨다. 선생님을 보고 계속 따라하면서 많은 기술을 터득했다. 친구들이 체력 훈련할 때도 난 (이)은미와 함께 항상 개인기 연습을 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항상 공과 친해지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도 어렸을 때 공을 더 갖고 놀걸 아쉽기도 하다. 그 때 장난치고 연습하던 게 지금 경기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해외 진출 생각은 없나. 러브콜은 있었나.

전 : 해외 진출은 모든 운동 선수의 꿈이다. 어렸을 때 기회가 왔는데 여러 문제로 무산됐다. 그것 또한 내 운명이다. 세계 무대에 부딪혀 보니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코스타리카전서 1골을 넣었고, 잘했다고 해주셨지만 행운과 같은 골이었다. 경기 감각이나 골 결정력을 더 키웠으면 더 잘했을 텐데 부상으로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전가을에게 지소연과 박은선이란

전 : 소연이가 걸어온 길을 지켜봤다. 일본에 혼자 넘어가서 적응하고 성공한 뒤 첼시서 또 꿈을 이뤘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부담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도 선수로서 소연이에게 더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부상으로 프랑스전을 못 뛰었지만 마음 같아선 뛰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지만 꼭 필요한 선수라 아쉬움이 더 컸다. 그만큼 소연이는 후배지만 의지가 되는 선수다. 함께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부담도 있다고 하니 안쓰러웠다. 그 부담감을 혼자 짊어지지 말고 언니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 골 장면을 보면 소연이가 정말 도움을 많이 준다. 없어서는 안되는 선수다.

은선 언니는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많이 안타까웠다. 12년 만에 두 번째 월드컵 출전이었는데 얼마나 뛰고 싶고, 부담감이 많았겠나. 후배들이라 '힘들다. 아프다'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열심히 뛰어줬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있고 든든했다.

-박은선 지소연 전가을이 정상 컨디션에 부상 낙마한 여민지까지 있었다면 어땠을까.

전 : 내가 다음 월드컵에도 출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참가해 보니 타팀 주축 선수들도 30대가 많은 걸 보고 '나도 다시 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이제 월드컵 경험도 있다. 4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걸 준비한다면 8강, 4강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조추첨의 운도 좀 따라야 한다(웃음).

-1988년생 동갑내기들이 많다.

전 : 은미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다. 유영아 조소현 김도연 등 매일 함께 있는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2010년 안익수 감독님과 함께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을 땄고, 최진철 감독님과 함께 피스퀸컵 우승도 이뤘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후배들은 국제축구연맹에서 주관한 17세 이하 월드컵과 20세 이하 월드컵서 우승과 3위를 차지하며 우리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묵묵히 잘해왔다. 포지션도 겹치지 않고 골고루 있다. 동료들이 많아 경기 중에도 의지가 많이 된다.

-여자 축구 사랑이 반짝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김 : 이번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여자축구 활성화 전략 수립 TF팀'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발전의 시초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보고 어린 유망주들이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팬들도 WK리그 경기를 한 번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 정말 재미있다. 여자 축구만의 재미가 있다.

전 : 여자 축구가 붐을 일으켰을 때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러주시거나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님들도 축구를 많이 시켰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여자 축구는 비전이 있다. 지금 시작하면 미래가 밝다. 여자 축구 선수로 산다는 게 이젠 외로운 게 아니다. 우리가 더 노력해서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

-자라나는 미래의 김정미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김 : 한국 여자 축구의 미래는 밝다. 힘들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하면 기회가 올 것이다. 너희들이 미래다.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남자친구를 만들거나 결혼할 생각은 없나.

김 : 아직 결혼 생각은 없다. 선배들만 봐도 한국에선 아줌마 축구 선수 케이스가 드물다. 나도 안정적으로 축구를 더 하고 싶다. 소연이 얘기를 들어 보면 첼시에서는 결혼하고 아기도 있는 선수가 대회와 훈련에 참가하면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준다고 하더라. 그럴 때마다 후배들은 '언니가 빨리 결혼해야 된다'고 농을 던진다(웃음). 외국은 결혼을 해도 계속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아직 한국은 힘들다.

전 :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다. 축구를 하는 게 더 행복하다. 남자친구한테 빠지면 또 모른다(웃음). 아직까지는 축구하는 게 제일 즐겁다. 내 삶은 축구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간다. 먹고, 자고, 노는 모든 게 축구 중심이다. 축구 게임도 한다. 난 뭔가에 미쳐야 성공한다는 마인드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축구인가.

김 : 축구가 제일 중요하다. 정말 어리고 철없을 땐 마냥 힘들고 쉬고 싶고 즐기고 싶었다. 축구에만 매달려 있는 게 정말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축구가 빠져서도 안되고, 빠지면 너무 슬플 것 같다라는 걸.

-롤모델은 누구인가.

김 : 잔루이지 부폰이다. 나에겐 부폰느님이다. 정말 멋있고,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어릴 때부터 나에겐 최고의 선수였다. 그라운드 안에서 움직임이 좋다. 크로스, 슈팅 등 공에 따라 달라지는 움직임은 하나도 놓칠 게 없다.

전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외적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것 같다. 문신을 안하는 이유도 헌혈 때문이고, 자기 관리도 보기와는 다르게 뛰어나다.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할 수 있고, 저 위치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여자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지,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OSEN 이균재 기자 dolyng@osen.co.kr

< 사진 > 김정미(좌)-전가을 /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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