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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정찬헌과 LG의 아쉬웠던 13분

조회수 2015. 4. 19. 03: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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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즌 KBO 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27분이었다. 짧은 시간은 결코 아니다. 때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야구 팬들이 야구장을 찾고 때론 집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스포츠이고 프로야구 또한 예외는 아니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만났다. 경기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10분이었다.

이날 두 팀의 승부는 6회 말에서 결정되었다.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이었지만, 승패가 갈리는 데 결린 시간은 고작 13분이었다.

< 정찬헌에겐 너무 길고 길었던 13분. 사진/ OSEN >

그렇다면 6회 말 아니 그 13분 동안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6회 말 선두 타자였던 앤드루 브라운은 안타를 치고 나간다. 솔직히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다. 코스가 좋았던 땅볼 타구였다. 정찬헌의 입장에선 크게 위축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타자가 문제였다. SK의 박정권은 초구를 상당히 좋아하는 타자이다. 2014년 시즌 박정권은 초구에 스윙했을 때 타율 3할1푼7리를 기록했고 본인이 기록한 안타 중 초구에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한 타자이다.

정찬헌이 분명히 조심해야 하는 카운트였다. 타자가 초구를 좋아한다고 꼭 스트라이크존에 빠져나가는 유인구를 던질 필요는 없다. 투수가 자신 있다면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조건은 있다. 아주 좋은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 초구를 좋아하는 타자를 상대로 초구에 실투가 나온다면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박정권의 초구 사랑을 LG의 배터리가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큰 문제다)

포수 최경철은 몸쪽 빠른 공을 원했다. 하지만 정찬헌의 빠른 공은 몸쪽이 아닌 한복판에 몰리고 말았고 박정권은 당겨쳐서 2루타를 만들어낸다. 동점 주자까지 득점권에 출루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경기의 흐름이 SK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경기 스코어는 4-2로 LG가 앞서고 있었지만, 3루엔 브라운이 그리고 2루엔 박정권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해결사' 이재원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이재원은 득점권에서 타율 6할1푼1리를 기록중이었고 1루는 비어있었다. 이재원을 피한다면 올 시즌 타율 1할5푼6리를 기록 중인 박계현을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찬헌과 LG는 정면승부를 선택한다. 노아웃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상문 감독이 고의사구 사인을 쉽게 낼 수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정찬헌은 이재원을 상대로 초구에 빠른 공을 선택한다. 스피드건에 145KM가 찍혔고 결과는 파울 볼이었다. 올 시즌 초구 타율 4할1푼7리를 기록하고 있던 이재원을 상대로 정찬헌은 아주 좋은 공을 던졌다.

볼 카운트 0-1 상황에서 정찬헌은 포크볼을 선택한다. 완벽하게 제구된 포크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고 이재원 간신히 콘택트 한다. 다시 한 번 파울볼로 스트라이크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이재원은 0-2 카운트로 몰리게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정찬헌은 SK의 '해결사' 이재원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았다. 노볼 투스트라이크 상황이 투수에게 유리하다는 점은 기본적인 야구 상식이다.

그렇다면 LG 배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정찬헌과 포수 최경철의 선택은 다시 한 번 포크볼이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배터리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고있었다. 두 번 속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재원은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릴 것 같아 보였던 정찬헌의 두 번째 포크볼을 기다렸다는 듯이 걷어 올리며 타점을 올린다. 너무나도 유리했던 볼 카운트에서 내준 안타였기 때문에 LG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포크볼 선택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구종의 선택이 아닌 코스의 선택이 문제였다. 상당히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존을 스쳐 갈만한 공을 꼭 던져야 했을까? 물론 정찬헌의 의도는 바운드가 나는 포크볼이었을 수 있지만, 결과는 스트라이크존에 걸칠듯한 포크볼이었다.

정찬헌의 아쉬웠던 6회 말은 결국 정상호의 3점 홈런으로 끝이 난다. 아웃카운트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선발투수 임정우의 호투를 앞세워 2시간 이상 경기 주도권을 잡았지만, 13분 만에 경기를 SK에게 내주고 말았다.

< SK의 미스터 클러치 이재원. 불리했던 볼카운트에서 그의 스윙은 더 돋보였다. 사진/ OSEN >

상황을 '리와인드'한다면 정찬헌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물론 정상호의 홈런이 기억나지만, 경기의 흐름이 뒤바뀐 순간은 바로 이재원의 안타였다. 볼카운트 0-2에서 투수는 끝을 내야 한다. 만약 그 순간 이재원을 잡아냈다면 LG는 2점 차로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날 경기의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었다.

경기 결과를 확인한 이후에 '정답'을 찾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그리고 무조건 정찬헌과 LG의 선택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정찬헌의 문제는 구종 선택(pitch selection)이 아니라 정찬헌의 수행능력(pitch execution)이었다. 다음 경기에서 SK 타자들을 (특히 이재원) 만나 정찬헌이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어떤 구종과 로케이션을 선택할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danielkimw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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