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jury Time-한국 축구가 삼켜야 할 여덟 가지, '쓴 이야기'

조회수 2014. 7. 29. 0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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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한국 축구가 4년 만에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출발선보다 더 뒤로 밀렸을지도 모른다.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은 후퇴한 한국 축구의 한 자화상일 뿐이다. 이제서야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들리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에 한국 축구 이곳저곳에서 땀 흘리고 있는 여덟 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준비했다. 귀 귀울여 들으면 공감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쓴, 그러나 삼켜야 할 여덟 가지 이야기다.

※ 쓴 이야기를 한 터라 실명 공개를 꺼리는 축구인이 많았다. 그래서 해당 발언자가 몸담고 있는 그룹에 대해서만 알리고 이름은 비공개로 진행함을 미리 밝히는 바다.

▲ K리그 클래식 감독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인프라 얘기냐'고 혀를 차선 안 된다. 인프라도 못 갖췄는데 더 무엇을 논하려 하는가? 겉만 말짱한 인프라를 보지 말고, 속이 썩은 인프라를 봐야 한다."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보면 문제가 도드라진다. 국내 리그 활성화, 대한축구협회(KFA) 개혁, 능력 있는 감독과 선수 육성 등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다른 이들이 좀 더 깊이 있게 말할 것이라 믿고 다른 부분을 얘기하고자 한다. 축구 인프라에 대해서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 국내 축구 인프라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들 한다. 일면 맞는 얘기다. 잔디 구장이 셀 수 없을 만큼 늘었고, 유럽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경기장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초·중·고 선수들은 물론이고 대학 선수들마저 인조 잔디에서 뛰고 있다는 걸 아는가? 인조 잔디는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좀벌레다. 혹자는 '그래도 맨땅보다 낫지 않느냐'고 하는데, 축구를 해 본 사람 입에서는 그런 말이 안 나온다. 인조 잔디가 맨땅보다 좋은 건 비 올 때도 쓸 수 있어서다. 그걸 빼면 장점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조 잔디에서 오래 운동하면 근육과 관절이 모두 망가트려진다. 부상 위험도 높다. '아직도 인프라 얘기냐'고 혀를 차선 안 된다. 인프라도 못 갖췄는데 더 무엇을 논하려 하는가?"

▲ 전 국가대표 선수"넘어지지 않고 잘 가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가는 길이 험해도 이겨 낼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왜 가는 것인가? 이 물음에 답부터 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목표가 없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지 싶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월드컵에서 우리는 우승만 빼고 다 해 봤다. 승리해 봤고, 16강에도 가 봤다. 그리고 8강전도 치렀고, 4강전도 겪었다. 3-4위전도 마찬가지다. 우승만 빼고 다 해 본 것이다. 팬들의 기대와 눈높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불어 유럽 클럽 축구가 넓게 개방되면서 팬들의 기대치는 더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월드컵에 나선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직전 대회에서 16강에 올랐으니, 이번엔 8강이라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어정쩡한 목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 희미한 목표는 한국 축구가 가야 할 방향을 집어삼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방황하는 게 당연했다. 단순히 1승도 하지 못했기에, 16강에 오르지 못했기에 하는 비판이 아니다. 누구도 한국 축구가 가야 할, 가는 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모름지기 목표가 분명해야 가는 길이 험해도 이겨 낼 수 있는 법이다.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 물음에 답부터 해야 한다."

▲ K리그 챌린지 프런트

"개혁은 큰 무언가를 바꾸면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작은 것부터, 사소한 것부터 퍼져 나가야 힘을 얻는다. 그래야 오래 가고 공감대를 얻어 널리 퍼진다. 진짜 개혁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잘못된 토대 위에 세워진 건물이니 당연히 부실하지 않겠는가? 잘못된 토대란 프로축구의 출범이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부실하게 지어져 늘 위태롭게 흔들렸는데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만 그 위험성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곤 이내 잊어버린다. 그랬으니 지난 4년, 아니 프로축구 출범 이후 30년 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것 아닌가. 지금 이 부실함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더 미루다간 무너져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프로축구부터 그래야 한다. 단순히 프로축구를 중시해야 한다고 외쳐서 될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토대를 허물고 새로운 토대를 쌓아야 한다. 정치적·기업적 사고에서 시작한 축구를 순수한 축구 그대로의 축구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팬들과 지역민에게 다가가는 K리그가 되어야 한다. 개혁은 큰 무언가가 아니라 작은 팬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 K리그 챌린지 감독"KFA 회장 선거 방식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것 중 하나다. 가장 높은 곳에서 이뤄지는 이 행정부터 바로 잡아야 아래도 곧추세울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하지 않았나."

"최근 언론을 통해 나온 이장관 용인대학교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많이 공감했다. 이 감독은 바뀌어야 할 한국 축구의 문제점 중 하나로 KFA 회장 선거 제도를 꼽았다. 현행 KFA 회장 선거는 대의원 24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KFA 및 7개 산하 연맹 회장과 16개 시·도 축구협회 회장들이다. 그런데 축구 현장에서 일하는 지도자나 행정가들에게는 단 하나의 투표권도 없다. 선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회장 선거를 할 때마다 24명 대의원들만 상대로 선거 운동을 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각 연맹과 협회 간 이해관계에 따른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 한 나라 축구 수장을 뽑는 KFA 회장 선거 제도가 이런데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민심을 듣지 못하면 민초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니 정작 달라져야 할 것들이 늘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KFA 선거 제도 개혁은 전부터 말만 무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바꿔야 한다. 현재 KFA 회장 임기는 2017년 1월까지다. 다음엔 이 선거 제도부터 바꿔 정말 제대로 개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30년 차 축구 팬

"가장 한국다운 축구는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축구다. 요즘 이 정신력을 다소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정신력은 체력·기술과 함께 엄연히 축구의 3대 요소 중 하나다."

"월드컵이나 유럽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현장을 많이 찾았다. 물론 우리나라 K리그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축구 현장을 다니며 많은 사람과 만났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 들은 한국다운 축구는 똑같았다. '강한 정신력'의 축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력을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연히 축구의 3대 요소 중 하나다. 체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신력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늘 서구의 그것만 좆았다. 선진 축구라는 게 이유였다. 압박이 유행하면 그걸 구사하려 했고, 패스 축구가 주류면 거기에 편승하고자 했다. 우리의 축구는 잃어버린 채 말이다. 박지성이 있어 한국 축구는 황금기를 누렸다. 그런데 우리 축구에 아름다운 시절을 선사한 박지성은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다. 왕성한 체력이 뒷받침됐지만, 그보다 박지성을 더 빛나게 한 건 굴하지 않는 정신력이었다. 정신력은 한국다운 축구의 시작이자 끝이다. 더는 나라 밖의 무언가를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장려했으면 한다. 정신력 축구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 대한축구협회 직원"반에서 꼴찌 하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가 혼자 학습해서 성적이 오를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안타깝지만 높지 않다. 잘하려면 1등 하는 아이가 다니는 독서실이라도 따라 다녀야 한다."

"한국 축구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100년 구상, 너무 길다면 30년 혹은 10년이라도 구상 아래 나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는 더 발전하길 원하면서 그 무엇도 배우려 하지 않고 있다. 그랬으니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 발전하려면 배워야 한다. 지금 같은 여건에서는 그 배움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KFA가 나서야 한다. 만약 내가 KFA 회장이라면 회장의 직속 기구를 하나 만들겠다. 이 기구는 그 어떤 라인의 간섭도 받지 않는 독립 기구다. 이 독립 기구가 할 일은 오로지 축구 선진국의 발전 과정을 학습하는 일이다. 100년이 훨씬 넘는 유구한 축구 역사를 가진 그들의 철학과, 방식과, 발전 과정을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다. 좋은 리그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 좋은 감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배워 적용해야 한다. 반에서 꼴찌 하는 아이가 혼자서 성적이 오를 가능성은 적다. 1등이 다니는 독서실이라도 따라 다녀야 바뀔 수 있다."

▲ K리그 클래식 선수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직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축구에 대한 정확한 현주소 파악이다. 아직 부족한 우리에 대한 현실 직시가 있어야만 발전 동력을 찾을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한국 축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KFA가 바뀌어야 하고, 산하 연맹들이 바뀌어야 하며, 구단들도 바뀌어야 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언론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 늘 같은 잘못의 반복이었던 지난 수십 년에서 벗어나려면 잠깐씩 있었던 기적 같은 행운도 이제 잊어야 한다. 한국 축구를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부분이 달라지지 않으면, 브라질 월드컵에서 맛본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현실에 대한 직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에 대해 성토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게 하나 있었다. 우리 수준에 대한 인정이다. 현재 한국 축구의 현실은 손흥민과 기성용 정도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제대로 뛰는 선수들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망각하고 최강 축구국들이 겨루는 월드컵에서 16강을 기대한다는 건 욕심이다. 우리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 K리그 클래식 프런트"10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한다. 1층엔 기초 리그가 있고, 10층엔 K리그 클래식과 A대표팀이 있는 건물이다. 지금이라도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다시 지어야만 같은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부분이 아닌 전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해야 할 진짜 고민은 한 나라 축구 근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뿌리부터 바꾸는 일이기에 늦었다고 포기할 순 없다. 근간을 바꾸는 것의 시작은 제대로 된 기초 리그부터 세우는 일이다. 조기 축구로 대변할 수 있는 가장 기초 단위의 리그를 탄생시켜 뿌리가 되게 하고, 그 위에 광역 리그를 세워 지역별 조기 축구 챔피언들이 뛰도록 한다. 광역 리그 위에는 현재 4부리그 격인 챌린저스리그를 세우고, 가장 꼭대기에 최상위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을 얹히는 것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는 일부터 다시 해야 한다. 단순히 리그를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축구가 생활 체육으로 보다 견고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는 축구 팬'이 아닌 '뛰는 축구 팬'을 만들어야 하고, 가장 직접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리그 창설과 활성화다. 축구를 잘하려면 그에 맞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환경이 없다. 뿌리 없는 리그로는 축구를 잘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그 뿌리를 심어야 달라질 수 있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사진=ⓒgettyImages멀티비츠(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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