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유소연의 가을

김세영 기자 2015. 9. 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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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던 유소연은 지금도 종종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힐링한다. 사진=유소연 인스타그램

가을이다. 숲이 바로 옆에 있는 덕에 밤이면 창틀 사이로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들어온다. 낭만과 우수에 젖어들기 좋고, 술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이문세의 '해바라기'와 '옛 사랑'도 일부러 찾아 듣기도 한다. 이 맘 때의 통과의례다.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 중 가을을 유난히 사랑하는 이가 있다. 유소연이다. 그는 평소 "한국의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LPGA 투어 '선수 가이드북'에도 소개됐다. 그는 2013년 미국에 집을 마련하면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는 플로리다가 아닌 캘리포니아주 토랜스를 선택했다. 그 지역 날씨가 한국의 가을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금은 캘리포니아가 플로리다에 비해 훨씬 비싸다. 유소연은 "기꺼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가을을 사랑하는 유소연이 가을을 맞아 한국을 찾았고, 지난주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에서 3년 만에 국내 대회 우승을 거뒀다. 우승 다음날 그와 가을과 음악, 그리고 골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름에 태어난 유소연은 원래 여름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을이 서서히 좋아지게 됐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가을 하면 청명한 하늘, 또는 상쾌한 날씨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저의 가을 이미지는 오히려 따뜻하고 푸근해요." 낙엽이 지고, 단풍이 든 파스텔 톤의 세상이 그에게 따스함을 안겨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소연은 가을에 한국에 오면 한강변을 혼자 걷기도 한다. 사색의 시간이라고 했다. 책도 즐겨 찾는다. 요즘은 매니지먼트사 관계자가 선물해 준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있다고 했다.

유소연이 국내 투어를 뛸 때 그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였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매너 있는 선수라는 평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억척스럽다는 평이었다. 후자의 평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난 억척스럽지 않으면 안 됐다. 골프도 그랬고, 학업도 그랬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여유롭다. 아무래도 선수 경력이 쌓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투어 생활이 재미도 있다."

어린 시절 플루트를 배울 때의 유소연(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유소연 인스타그램

승부욕이 강했던 유소연은 프로 입문 초기 일부 실수도 있었다. 그 모습이 일부 사람에게는 곱지 않았을 것이다. 유소연도 잘 안다. 그래서 어린 선수로서 고뇌의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201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그는 조금씩 변했다. 골프에도 재미를 붙였다. 현재 LPGA 통산 3승을 거두고, 세계 랭킹 4위에 올라 있다. 랭킹에 비하면 다소 승수가 부족한 면도 있다. 반대로 그만큼 꾸준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우승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는다"면서 "지금은 투어 생활을 즐긴다. 그게 꾸준함의 비결인 것 같다. 1~2라운드에서 플레이가 잘 되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다 보니 그 다음날 잘 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코스 자체의 영향도 크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아웃오브바운스(OB) 구역이 많아 티샷 실수를 하면 다시 샷을 날려야 하지만 OB 구역이 적은 미국 코스에서는 숲에서도 샷을 날려야 한다. 잔디나 러프도 지역마다 다르다. 때문에 다양한 기술 샷을 연마해야 한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게 재미있다는 게 유소연의 설명이다.

유소연은 6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루트를 배웠다. 원래 꿈이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골프 스윙은 템포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 도움이 된다. 또 굳이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바이올린을 켜거나 피아노를 치면서 내 자신을 힐링하게 된다"며 "골프는 작은 변화에도 느낌이 상당히 달라지는 예민한 운동이다. 또한 코스 안팎에서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두뇌 싸움의 스포츠이기도 해 스트레스가 의외로 많다. 가끔 바이올린을 꺼내 켜다 보면 스스로 리프레시 된다"고 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이겨낸 유소연은 이젠 내적 성숙을 이룬 듯하다. 그래서 그와 가을은 잘 어울린다. 사진=박태성 기자

똑바로만 샷을 날리려 하고, 성공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유소연은 어느 순간부터 옆을 볼 여유를 갖게 됐다. 이젠 똑바로 날리는 샷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트러블 상황에서 자신만의 창조적인 샷을 날리는 것에 희열을 느낀단다.

필드를 떠나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고,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을 추스르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는 '스윙 로봇'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깔을 입혀 가는 중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이겨낸 그는 분명 최근 몇 년 사이 내적 성숙을 이룬 듯하다. 그래서 그와 가을은 어울린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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