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전인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

김세영 기자 2015. 7. 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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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최고조 4대 투어 메이저 우승 도전..강행군 부상 위험

US여자오픈 우승 당시 전인지. AP=뉴시스

요즘 골프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단연 전인지(21)다. 지난 5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살롱파스컵에서 정상에 올랐고, 이달에는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세계 최초로 한 시즌에 한국과 미국, 일본 여자프로골프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인지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직후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LPGA 투어이면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에도 속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전 세계 4대 투어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타이거 우즈가 4대 메이저 대회를 연달아 제패하며 '타이거 슬램'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듯 '전인지 슬램'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수도 있다.

팬들의 기대도 크다. 하지만 전인지는 출국 직전 "아직 한미일 메이저 우승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4대 투어 메이저 우승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를 지도하는 박원 프로 역시 "타이틀이라는 건 좋은 성적을 내다보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거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그에게 기대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인지는 어려운 코스에서 강점을 보인다. 샷도 훌륭하지만 코스 매니지먼트 능력이 뛰어나다고 동료들은 말한다. 실제로 그는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에서 투어 첫 우승을 거뒀고, 지난해 같은 코스에서 열린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에서도 정상을 밟았다.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은 올해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인터내셔널팀이 경합을 벌이는 프레지던츠컵의 무대다. 난도가 높은 코스다. 지난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이 열린 블루헤런도 어려운 코스다. 전인지는 아마추어 시절에도 초청 선수로 출전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인지가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직후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박태성 기자

전인지를 지도하고 있는 박원 프로는 "선수마다 궁합이 맞는 코스가 있다. (전)인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변별력이 있는, 어려운 코스에서 잘한다. 시합에 나서기 전 코스를 꼼꼼히 분석하고 실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영리한 플레이를 펼쳐서다"고 했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곳은 스코틀랜드의 턴베리 골프장이다. 황량한 페어웨이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링크스 코스다. 전인지는 실전에서 링크스 코스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런데 대비는 충분히 했다. 전인지는 지난 4년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곳에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본 따 만든 '레플리카'(모방) 코스가 있다.

전인지는 전지훈련 기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그 코스를 돌아봤다. 박원 프로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는 무조건 그곳에 가서 라운드를 했다. 덕분에 링크스 코스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면서 "다만 이번에는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고 가다 보니 턴베리 코스를 한 번밖에 돌아보지 못한 채 출전하게 돼 아쉽다"고 했다.

현지시간으로 28일 프로암 대회가 열리지만 전인지는 참가하지 못한다. 이미 US여자오픈 전에 프로암 명단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대신 화요일에 푹 쉰 다음 수요일 공식 라운드 때 코스를 돌아볼 예정이다. 그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전인지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퍼팅과 스윙 교정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전인지는 올 초 미국 원정 3연전에서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눈물을 툭툭 흘릴 정도로 코치로부터 혼이 나고, 스스로 교정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지난 5년간 고치지 못하던 퍼팅의 나쁜 습관을 독한 마음을 먹고 고쳤다. 그리고 일본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6월부터는 스윙 교정도 했다. 전인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악성 훅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박원 프로는 "백스윙 톱에서 내려올 때 과하게 인사이드로 들어오면서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며 "스윙 교정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현재는 스트레이트 또는 페이드 구질로 바뀌었다"고 했다. 최정상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려는 이런 자세가 이번 대회뿐 아니라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서의 롱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 당시 갤러리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전인지. AP=뉴시스

반대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몸 상태다. 전인지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 어깨 통증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다. 2년 전 당한 부상을 말하는 거다. 당시 쇄골이 골절됐다. 박원 프로는 "통증이라기보다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릴 때 부상 부위가 뻐근한 상태"라며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쯤 있는 고질병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열리는 기간 현지 날씨가 안 좋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최고 기온 15도, 최저 5도 정도인 데다 바람이 심하게 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 체감 기온은 더 낮을 전망이다. 따라서 어깨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스윙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체력도 관건이다. 전인지는 3주 전 US여자오픈 우승 직후 돌아와 하루도 쉬지 못한 채 BMW챔피언십에 출전했다 결국 4라운드를 앞두고 탈진했다. 그 다음 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도 전인지는 병원으로 달려가 링거를 맞았다. 폭우로 인해 2라운드가 최소된 덕에 체력을 충전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이번 대회까지 합치면 4주간 미국-한국-유럽을 오가는 강행군이다. 잠시 충전된 배터리가 또 다시 방전될 수도 있다.

체력 관리는 당장 이번 대회가 아니라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관리해야 할 평생 숙제다. 체력이 떨어지면 부상을 당할 위험도 그 만큼 커진다. 전인지에 앞서 '지존'으로 통했던 신지애도 과거 무리한 출전을 이어가다 잔부상을 달고 살았고, 결국 탈이 나 슬럼프로 이어졌다. 한두 번 날아오는 잽을 무시하다 다운된 격이다.

전인지가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으로 한미일 3개국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자 동료들이 맥주를 뿌리며 축하해 주고 있다. 사진=박태성 기자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박원 프로도 "선수들을 보면 체력이 떨어지는 하반기에 부상을 많이 당한다"면서 "하반기에는 4~5개 대회를 뛴 후 일주일은 푹 쉬는 일정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내년에 미국에 진출한 후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게 국내 골프계의 현실이다.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스폰서 대회에는 참가해야 하고, 국내 대회 타이틀 방어에 대한 의무는 면제되지만 무작정 외면하기도 힘들다. 스타일수록 그 짐은 더욱 커진다. 올해 김효주가 그런 덫에 빠진 듯하다.

대학시절 '교양 필수'(현재는 교양 선택) 과목에 속하던 당구를 쳐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게 있다. 리듬을 타는 거다. 평소 실력보다 훨씬 당구가 잘 될 때가 있다. 큐를 잡으면 공이 갈 길이 한 눈에 쏙 들어오고, 공은 정확히 그 길로 간다. 그런 리듬을 탔을 땐 적수가 없다. 그러다 몇 차례 방심을 하다 보면 리듬은 어느새 깨지고, 당구비를 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리듬을 탈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매번 '굿샷'을 날릴 수는 없다. 실수를 줄이는 게임이 골프다. 여기에 심리적, 기술적 감각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가 됐을 때 그걸 얼마나 오래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전인지는 지금 최고조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하다. 그 리듬을 오래 유지하다 보면 전인지와 그의 코치 박원 프로의 말대로 타이틀을 자연히 따라온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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