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썰]니들이 개명의 심정을 알아?

김세영 기자 입력 2015. 7. 7. 11:21 수정 2015. 7. 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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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난 친구 춘오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춘오가 아니었다. 몇 년 전 개명을 해 이제는 정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처음엔 춘오와 정현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이젠 정현이 자연스럽다.

개명을 한 건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름과 관련해 가장 유명세를 치른 인물을 따지자면 단연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이 아닐까 싶다. 1999년 옷 로비 사건과 관련해 특검의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평소처럼 '앙드레 김'이라고 이름을 말했다가 국회의원의 '준엄하신' 지적에 본명인 '김봉남'을 밝히게 된다. 당시 특검이 밝힌 건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기도 했다.

뜬금없이 이름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얼마 전 프로 골프 대회장에서 겪은 일화가 생각나서다. 2주 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군산CC오픈 1라운드 때 선두권에 있던 3명의 선수를 인터뷰를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중 2명이 개명을 했단다. 더구나 스코어보드를 훑어보니 이름이 '정상급'인 선수도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명은 쉽지 않았다. 개인에 대한 혼동으로 인해 법률관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치국, 김하녀, 조지나, 하쌍연, 김샌다, 노숙자 등 이름 자체가 존재를 비하하더라도 그냥 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일러스트/유광준

2005년 대법원이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개명을 폭넓게 허용한 후 개명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06년 개명 신청자가 10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08년부터는 연평균 16만 명 안팎이 개명을 위해 법원을 찾고 있다고 한다.

KPGA에 남자 프로 골퍼들의 개명 현황을 문의했더니 2005년 개명을 한 선수는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꾸준히 늘어 2010년 15명, 2011년 28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에도 17명이 이름을 바꿨다. 최근 5년 사이에는 총 101명이 개명했다.

여자 프로 선수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2011년에는 17명, 2012년 14명이던 게 20013년 3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20명의 여자 프로 선수들이 개명을 했다. 2011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90명이 개명했다.

개명의 이유도 다양하다. 개성 있는 이름을 원해서, 순한글 이름을 한자 병기로 가능한 이름으로 바꾸려고, 출생 신고서에 한자를 잘못 기재해서, 성명학적으로 좋지 않아서, 이름으로 남성과 여성의 오해가 생겨서, 그것도 아니면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가 있다. 기자도 이름 탓에 여자라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프로 골퍼들의 경우에는 이름과 운명을 결부시키는 성명학에 따라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에 비해 개명 비율도 월등히 높다. 남자 프로의 경우 총 회원이 약 5000명인 걸 감안하면 최근 5년 사이 50명 중 1명이 개명한 셈이다.

이런 경향은 승자만 알아주는 치열한 프로 무대의 속성 탓이다. 특히 골프는 야구나 축구처럼 단체가 아닌 개인 스포츠인 까닭에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하위권 선수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남자 프로 골퍼의 개명자 중 3분의 2 이상이 세미프로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투어 프로 중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개명 케이스는 김태훈(30)이다. 그의 이름은 원래 '범식'이었으나 2004년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 탓에 수년 간 고생을 하다 2008년 군에 입하면서 개명을 했다.

군산CC오픈에서 만난 2명의 개명자 중 한 명인 김준성(24)도 원래는 김휘수였으나 올해 3월 이름을 바꿨다. 2011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지난해 매일유업 오픈 공동 8위가 최고 성적이었던 그는 비록 간절히 원하는 첫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군산CC오픈에서 공동 7위로 자신의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김준성은 "개명을 하면 하는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바꾸게 됐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탱크' 최경주도 개명을 했다. 물론 골프 때문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은 최말주였으나 조부의 친구 권유로 나중에 바꾼 것이다.

외국 투어에 진출하면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법적인 개명은 아니고 등록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올 시즌부터 미국에서 활약 중인 백규정은 '큐 백'(Q BAEK)으로 LPGA 투어에 등록했다. 백규정의 규(KYU)를 영자 발음 그대로 Q로 쓰기로 한 거다. 그 전에는 이정연이 이지영, 이지연 등 영문 'J Y LEE'를 쓰는 선수가 늘면서 '사라 리'로 이름을 바꿨고, 김주연은 스윙 코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퍼팅을 잘 한다고 '버디 김'이라고 부르자 아예 본명처럼 썼다.

외국 선수 중에서도 개명을 한 선수가 있다. '왼손 장타자' 버바 왓슨은 본명이 '게리 레스터 왓슨 주니어'였으나 아버지가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 버바 스미스를 본 따 버바로 개명했다. 타이거 우즈도 원래는 '엘드릭 톤트 우즈'였으나 아버지 얼이 베트남전 당시 용맹을 떨친 그의 전우 응우옌 퐁의 별명을 따라 아들에게 타이거란 미들네임을 붙이면서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름을 바꾼다고 인생이 바뀌는 걸까. 기자 생각엔 아니다. 우즈가 '골프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이름 덕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철저한 자기관리(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엔 물음표가 든다)와 백인 골퍼들에 맞서 이기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 등이 있어서였다. 김태훈도 개명을 한 뒤 5년이 지난 2013년이 돼서야 프로 무대 첫 우승을 거뒀다. 그 사이 그는 입스를 떨치기 위해 수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성공은 인내와 노력의 결실이다. 그럼에도 개명을 하는 그들의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그들의 정상급 샷을 기대한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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