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K리그가 만든 '1년 전 그 친구들'의 신나는 놀이

조회수 2015. 8. 3. 13: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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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다면 8명 정도가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그들이 1년 동안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지난 7월20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동아시안컵에 출전할 23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전한 말이다. 유럽과 중동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합류할 수 없던 조건 속에서 다수의 K리거들, 특히 20대 초반의 '젊은 피'를 수혈한 이유를 밝히던 슈틸리케 감독은 '1년 전 그 친구들'에게 특히 기대를 걸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이들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지난해 10월부터였다. 한국에 도착한 것은 9월이다. 그 무렵 한국에서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 U-23 대표팀은 7경기 연속 승리라는 완벽한 내용과 함께 28년 만에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뤘다.

무실점 우승을 일궈낸 단단한 수비력과 함께 2선 공격수들의 매끄럽던 호흡이 이광종호 금메달의 원동력이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김승대(포항), 이재성(전북), 이종호(전남)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이광종호의 핵심 삼총사는 동아시안컵이라는 새로운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 슈틸리케호로 배를 갈아탔다. 그리고 첫 출항부터 몫을 톡톡히 해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2일 오후 중국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중국과의 동아시안컵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예전의 중국 축구가 아니다'라는 경계심 속에서 시작된 이 경기는 다시금 '공한증'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낼 정도로 완벽한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최근 2번의 맞대결에서 1승1무를 거두면서 한국에게 자신감을 갖고 있던 중국은 또 좌절을 맛봤다. 다시 답답한 벽을 느낌을 전해준 주인공이 바로 '1년 전 그 친구들'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원톱으로 넣고 그 뒤에 이종호-김승대-이재성을 배치했다. 이종호와 김승대는 A매치 데뷔전이었고 이재성 역시 올해부터 태극마크를 단 풋내기다. 그런데 A매치에서 처음 손발을 맞추던 삼총사가 사고를 쳤다. 김승대와 이종호는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고, 이재성은 두 골에 모두 관여하는 날카로운 패싱력을 자랑했다.

물 만난 고기 같던, 그것도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움직임을 자랑했던 세 선수 플레이의 특징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 지칠 줄 모르는 압박▲ 영리한 공간 활용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환경이었다. 중국 선수들조차 발이 땅에 붙을 정도로 무덥고 습한 날씨였다. 하지만 피 끓는 세 선수는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했다. 마치 '전방 수비수' 같았다. 중국을 잘 아는 후방 삼각편대, 장현수-김영권-김주영 등 수비진도 안정적으로 뒤를 지켰으나 이재성-김승대-이종호의 희생적인 전방 압박의 공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의 패스는 좀처럼 단계를 밟아 앞을 향할 수가 없었다. 부지런히 뛰면서 길을 차단했으니 중국은 효율성 떨어지는 롱패스를 때려 넣을 수밖에 없었다.

보면서 우려스러웠던 것은, 과연 그들의 압박이 90분을 관통할 수 있을지의 여부였다. 20대 초반이라고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 그들은 본업인 공격도 해야 했다. 놀랍게도 시종일관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더 빛난 쪽은 공격력이었다. 그들이 빚어낸 2골은 모두 완벽한 작품에 가까웠다.

이재성의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정확한 위치선정으로 받아내 골로 연결했던 김승대의 선제골, 이재성의 발에서 출발해 김승대를 거쳐 이종호가 마무리했던 추가골 모두 소위 말하는 '쿵짝'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니 몸도 함께 움직였다.

세 선수의 패스는 사람이 아닌 공간을 향했다. 주는 사람이 적절한 공간에 공을 뿌리면 받을 사람은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타이밍을 잡아 쇄도했다. 공간을 활용한 한국의 패스워크에 중국 수비는 속절없이 당했다. 덕분에 힘의 소비도 엇갈렸다.

진행 방향으로 공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쇄도하던 선수가 멈춰서거나 후퇴해서 공을 받아야하는 불필요한 과정이 발생하게 된다. 아군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수준 낮은 축구다. 하지만 제대로 연결되면, 막아서는 상대가 곤혹이다. 아무리 빨라도 사람이 공을 따라잡을 수는 없으니 미리 예측하고 공간을 향하는 공과 사람의 움직임을 뒤쫓던 중국 수비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세 선수가 상대적으로 힘을 덜 쓰면서 효과적으로 상대 진영을 헤집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압박과 공간 활용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세 선수 모두 '타이밍'을 잡는 감각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전술적인 이해도와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센스를 갖춘 세 선수는 유기적으로 맞물렸다. 기본적인 육체의 스피드도 빨랐지만 두뇌 회전이 더 빨랐고 이는 적합한 타이밍을 맞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이런 경기력이면 우승도 가능하다"며 흡족한 평가를 내렸다. 전반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잘했으나 특히 전방 삼총사가 빛났다. '1년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가' 물어보던 슈틸리케 감독의 질문에 몸으로 대답했다. A매치 초짜들인데도 마치 경기를 놀이처럼 즐기던 그들은, 꼭 밖으로 나가야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선입견도 깼다.

세 선수 모두 그야말로 '메이드 인 K리그'다. 전북의 2년차 이재성, 포항의 3년차 김승대 그리고 전남에서 5번째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이종호 모두 K리그가 발굴하고 키워낸 젊은 피다. 각 팀의 에이스급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이제 대표팀에서도 통하는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K리그에 괜찮은 자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안팎의 우려 속에서 나온 삼총사의 신나는 놀이는 '공한증'을 이어간 것보다 훨씬 더 반가운 장면이었다.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부/lastuncle@daum.net]사진= 스포츠공감/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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