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축구 방랑자 안정환, 그가 말하는 방송 그리고 해설 ②

조회수 2015. 6. 29. 13: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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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안정환은 누구보다 다양한 리그를 경험했다. 인터뷰 ①편에서 그가 "최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었고, 내가 선택을 해서 간 것"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일단 실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높고 낮은 곳'에 대한 경계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다음의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세리에A 진출자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J리그로 터전을 옮겼고 프랑스 리그1과 독일 분데스리가를 누비다 K리그와 중국 슈퍼리그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무대에 대한 호기심과 안주를 거부하는 도전정신이 만든 축구 여행이었다.

'축구 방랑자'였던 안정환은 허락하는 데까지 다양한 곳에서 축구를 즐기고 싶었다고 했다. 각 리그마다 특징과 매력이 다르기에 밖으로 나갔고, 후배들에게도 '밖으로 나가라'고 충고하고 있다. 만족하는 순간 정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따라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가 해설위원이라는 또 다른 '밖'으로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이다.

타인의 선택으로 고통 받지 말라

1998년 프로에 뛰어든 안정환은 그해 베스트MF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당시까지 준우승 팀(부산)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안정환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탁월했다.

안정환은 "K리그에서 해볼 것을 다 해봤다. MVP도 수상했고 팀도 좋은 성적을 냈다.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 편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도 많아졌고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관계도 얽혔다. 알게 모르게 내가 최고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행인 것은 그 생각을 빨리 떨쳐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는 점이다. 그는 "빨리 해외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축구 비디오를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직접 나가서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마음가짐과 함께 안정환의 축구 여행은 2000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사실상 유럽진출의 선구자다. 박지성과 이영표, 송종국과 이천수, 이을용과 김남일 등이 2002년 월드컵 4강의 후광을 입고 유럽에 나간 것과는 달랐다. 아무 것도 없이, 그야말로 맨손으로 황무지를 일군 것과 다름없는데 너도나도 유럽진출을 말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당장 최근에도 여러 명의 K리거들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누군가는 "오로지 유럽만 생각하고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만큼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관련해 안정환은 진지한 조언을 던졌다. 그는 "개인적으로 나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가려고 하는 것보다는 '왜 가야하는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팀이 자신을 원하고 내가 원해서 나가는 것과 조건이 대충 맞아서 가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결국 '능동적인 선택'이어야한다는 충고였다.

안정환은 "정작 자신은 내키지 않는데 금전적인 이유나 주위의 추천 혹은 누가 기회를 만들어줘서 가게 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내린 선택일 때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서 "은퇴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과거의 여러 가지 선택에 대한 기억이 난다. 누구든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나 그 아쉬움이 타인에 의한 것일 때는 더 고통스럽다"는 뼈 있는 충고를 던졌다. 프로면 프로답게, 자신이 결정해야한다는 충고였다.

축구해설, 축구인들이 게을렀다

2012년 1월 은퇴를 선언한 안정환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대중 속으로 돌아왔다. 연예인이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으나 TV에 자주 나왔으니 방송인이었다. 안정환은 "한동안 축구 쪽은 전혀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푹 쉬던 중 아이들이 원해서 방송에 나갔다. 딸 때문에 정글에 다녀왔고 아들이 걸려서 '아빠 어디가'에 출현했다"며 웃었다.

혹자는 왜 축구 선수가 외도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안정환은 "축구 선수였다고 계속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운동장에서 뛰는 현역 선수라면 축구를 해야겠으나 난 이미 은퇴한 상황이었다. 내 인생인데 '왜 방송에 나가느냐' 말하는 사람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면서 "가족을 위해 방송에 나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어떻게 보면 (은퇴 이후)공허함을 방송으로 채웠던 것 같다"는 말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안정환은 다시 축구계로 돌아왔다. 방식은 해설위원이었으니 앞선 방송인 생활이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니었다. 안정환은 "꼭 해설자를 염두했던 것은 아니다. '하고 싶던 것'을 생각하던 차에 기회가 왔고 선택했다"면서 "축구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높은데서 보니 더 잘 보인다. '내가 선수 때 저렇게 했었어야 했는데'하는 생각도 든다"며 웃음을 지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사실상 안정환의 해설위원 데뷔무대였다. 안정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편안한 해설' 쯤으로 정리할 수 있는 색깔로 팬들에게 다가갔다. 호불호가 갈렸다. 누군가는 거침없는 발언이 쉽고 통쾌하다면서 박수를 보냈으나 다른 이는 가볍다고 지적했다.

안정환은 "해설을 왜 막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식하다' '멍청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면서 "평생 축구만 했는데 설마 전문용어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전문용어를 많이 쓰면 과연 일반 팬들이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쉬운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했다. 그렇게 다가간 것이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는 뜻을 전했다. 적중했다.

안정환의 해설위원 변신과 연착륙은 당사자에게도 중요한 도전이겠으나 축구계 전체적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다. 안정환을 비롯해 이영표, 송종국, 차두리 등 그들의 플레이를 기억하는 젊은 해설자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해설위원 판도'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는 평이다.

사실 축구 중계는, 소위 '선출(선수출신)' 해설자가 많은 야구와 달리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위기였다. 차범근, 허정무, 이용수 이후 '선출 해설가'는 명맥이 끊겼다. 안정환은 '축구인들의 탓'이라 했다. 그는 "사실 축구 해설가도 축구인들의 영역이다. 하지만 정말 해설이라는 게 어렵다. 알수록 힘들더라"면서 "준비과정도 길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어렵다보니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도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선출 해설가'가 많지 않은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전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했다. 그래서 안정환은 또 '도전정신'을 언급했다.

"오해 소지가 있으니 먼저 짚어야겠다. 비선수 출신 해설자들이 잘못됐다거나 없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축구인들이다. 축구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해설계에 많이 종사하는 것 같다. 그들을 욕할 수 없다. 분명 축구의 영역인데 우리가 도전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보다 많이 나와야한다."

- ③편에서 계속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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