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임성일의 들숨날숨] 무늬만 '슈퍼', 예전의 서울과 수원이 그립다

조회수 2015. 5. 28. 14:32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투자 없이 결실은 바라는 것은 놀부 심보다. 매사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들로 장사를 해야 하는 프로스포츠에서는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거의 절대적 참으로 인식된다. 밑천이 없으면 바닥은 금방 보인다. 2015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가 잘 설명해줬다.

참가한 4팀이 모두 ACL 16강에 진출했다고 흥에 겨웠던 K리그가 금세 풀이 죽었다. 8강 진출 클럽이 가려진 결과 전북현대 한 팀만 살았다. FC서울과 수원삼성 그리고 성남FC는 쓴잔을 마셨다. 그래도 성남은 선전했다. 하지만 서울과 수원은 아쉬움이 크다.

떨어진 팀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나 예견된 일이다. 바람직한 일이고 어쩌면 잘됐다. 만약 서울과 수원이 계속해서 8강, 4강까지 진출한다면 "그것 봐, 돈 쓰지 않아도 닦달하면 성적 나오잖아?"라며 흐뭇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어라? 이상하네"라고 느껴야한다. 전북이 깨닫게 해줬다. 성남도 도와줬다.

전북은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로 ACL을 잡았다. K리그 클래식 미디어데이 때도 최강희 전북 감독은 "K리그 2연패냐 ACL이냐 물으면 ACL"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최 감독은 "이제 전북이라는 팀은 한 단계 더 올라서야한다"는 말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시즌 초반 형식적으로 내뱉는 '목표는 크게'가 아니었다. ACL을 품고 싶어서 에닝요를 다시 불렀고 에두라는 대형 공격수를 영입했다. 포항에서 ACL 우승(2009)을 경험한 김형일을 데려왔고 전북이 준우승에 그쳤던 2011년 당시 캡틴이던 야누스 조성환도 컴백시켰다. 김남일과 신형민이 빠진 중원의 허전함을 달래려 울산의 이호를 마지막 퍼즐로 삼았다. 요소요소 필요한 부분을 알차게 채운 전북은 ACL 8강에 올랐고 K리그 클래식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비록 8강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시민구단 성남FC가 '골리앗' 광저우 에버그란데 앞에서 보여준 돌팔매질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당한 까치 성남이 범의 코를 쪼아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친정으로 돌아온 김두현에게서 나왔다. 사실 김두현은, 성남이 영입하기에는 비싼 선수다. 전성기 때에 비하면 몸값이 많이 낮아졌으나 10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이가 100만원 쓰는 것과 500만원이 전 재산인 이의 100만원은 차이가 있다.

시민구단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투자로 영입한 김두현은 필드에 힘을 불어넣었고, 선수들은 "우리 팀도 김두현급 선수를 뽑는구나"라며 힘을 얻었다. 그 작고도 큰 투자와 함께 성남은 매년 1000억원을 쓰는 '아시아의 맨시티' 광저우 헝다를 탄천 홈에서 2-1로 잡았다. 비록 2차전에서 0-2로 지면서 최종 탈락했으나 충분히 잘 싸웠다. 김학범 감독이 "우리는 광저우가 아닌 굴라트에 졌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이 딱 들어맞는다.

결국 투자한 전북과 성남만 박수를 받았다. 반면 과거 부자 시절만 떠올리며 3년 넘게 버티기를 시도하고 있는 서울과 수원은 실패했다. 수원의 마지막 우승은 2010년 FA컵이었다. 리그 우승은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지금까지 왜 무관에 그치고 있는지, 왜 수원 팬들이 20주년을 맞아 향수에 젖고 있는지 구단은 알아야한다. 수원은 강하고도 화려한 팀이었다. 수원의 스쿼드는 출전명단에 적힌 이름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빛을 잃었고 성적 역시 떨어졌다. 라이벌이라 그런지 서울이 그 길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FC서울은 2010년과 2012년 K리그 정상에 올랐고 2013년에는 ACL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북과 함께 근래 가장 또렷한 성적을 내고 있는 클럽이다. 하지만 2013년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데얀이라는 최고의 골잡이, 하대성이라는 최고의 조타수를 모두 내보내고도 서울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지난해 근근이 버텼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한 탓인지 올해도 충원이 없었다. 외려 센터백 김주영도 중국으로 보냈다. 이게 화근이었다. 'ACL DNA'와 '서울극장'으로 어렵사리 16강까지는 올랐으나 세포만 가지고 축구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수원과 서울은 자타공인, K리그를 선도하는 클럽이다. 다른 팀 감독들조차 "리그 발전을 위해서는 서울이나 수원 같은 팀들이 성적을 내야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판 전체의 흥행과 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팀임을 아는 까닭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를 안방으로 쓰고 있는 유일한 1부리그 클럽이고 수원은 축구 수도로 통하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부심 넘치는 클럽이다. 이들의 만남은 '슈퍼매치'라 불리며 K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이자 자랑이었다. 하지만 점점 과거의 예기가 되고 있다. 최근의 서울과 수원의 모습을 보면 무늬만 슈퍼클럽에 가깝다. 진짜 사정이 여의치 않는 팀들이 무작정 쥐어짜내기를 강요해도 지적해야 하는데 알만한 클럽들까지 번번이 정신력과 근성만 외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한 축구인은 "현재의 전북 1강 구도는, 냉정하게 볼 때 전북이 돈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다른 팀이 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K리그 구성원들이 도와놓고 '한 팀이 독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흘리는 것은 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그림의 책임은, 특히 서울과 수원에게 많다.

예전의 수원과 서울은 '동경의 팀' 이미지였다. 선수들에게는 이적하고 싶은 팀 1순위였고 다른 팀 서포터들조차 서울과 수원 팬들을 부러워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로는 보장하기 힘들다. '슈퍼매치'에 어울리던 과거의 FC서울과 수원삼성, 수원삼성과 FC서울이 그립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