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들숨날숨] '지피지기' 순서만 바꿔 기적을 빚는 김학범

조회수 2015. 5. 25. 13:0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 유명한 < 손자병법 > 을 보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나만 알고 적을 모르면 승과 패의 확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적을 모르는데 나조차도 모른다면 싸움은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짜 전쟁은 물론이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 적용되니 시공을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말이다. 특히 전쟁에 비유되는 스포츠인 축구판에서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만큼 적절한 지침이 없다. 아마 모든 지도자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을 격언이다. 물론 실천의 정도까지 같을 수는 없다. 지피지기가 가능한 팀은 분명 성적을 낸다. 성남FC와 김학범 감독이 입증하고 있다.

시민구단 성남FC가 써내려가고 있는 AFC 챔피언스리그 도전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성남은 지난 20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회 16강 1차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1 승리를 거뒀다. 성남이라는 작은 팀이 광저우 에버그란데라는 골리앗 클럽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힘은 분명 지피지기에서 나왔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믿고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짚은 뒤 허를 찔렀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모두가 안방에서는 수비적으로 운영하다 카운트어택을 노릴 것이라 짐작했으나 < 학범병법 > 은 다르게 지시를 내렸다. 성남이 보유한 방패로 광저우의 창을 90분 내내 막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김학범 감독은 라인을 끌어올렸다. 거침없이 맞불을 놓아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동시에 '공격이 곧 수비'가 되게끔 만들었다. 김학범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고 까치떼처럼 뭉친 성남FC는 거만한 공룡의 눈을 찔러버렸다.

김학범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김 감독의 '지략가 이미지'는 철저한 상대 분석에서 출발한다. 지난 2월 초 성남FC의 일본 구마모토 전지훈련 캠프에서 있던 일을 예로 든다. 부리람 유나이티드와의 ACL 조별예선 1차전이 보름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다.

어떤 상황을 가정해 선수가 공을 보낼 곳을 체크해주던 김학범 감독의 입에서는 "저 공간에 공을 찔러 넣으면 누가 다가와? 부리람의 몇 번하고 몇 번 또는 몇 번이 나오게 된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상대 라인업 분석은 물론 어떤 선수의 특징이나 동선까지 대략적인 윤곽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FA컵 우승을 차지할 때의 과정이 그랬다. 성남은 준결승에서 전북현대를 만났고 결승에서 FC서울을 상대했다. 근래 몇 년 동안 K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두 팀을 거푸 만나는 가시밭길이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꺾고 정상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두 팀을 잡아내는 방법이 달랐다.

전북전에서는 철저한 수비 축구를 펼쳤다. 공격할 의지가 없어 보일 정도로 한껏 가드를 올렸다. 소위 말하는 '텐백'을 가동해 골문 앞에 진을 쳤다. 그리고 '닥공' 전북은, 제풀에 지쳐 쓰러졌다. 하지만 서울전은 달랐다. 수비에 방점을 찍은 것은 사실이나 마냥 내려서지 않았다. 결승전 후 김학범 감독은 "오늘은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렸다. 서울이 (라인을)올렸을 때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준비한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준비된 기적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확실히 '지피'에 능한 지도자다. 하지만 그 이전 '지기'를 완벽하게 끝내 놓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학범 감독은 '주제 파악'의 달인이다. 팀과 선수들에 대한 이해 없이 상대만 공부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다. 이해를 돕기 좋은 예가 김두현을 살리고 김두현을 통해 팀의 살린 선택이다.

모두가 '한물갔다'고 수군거리던 김두현을 품으면서 김학범 감독은 "허허, 나는 '김두현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있다니까"라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많은 이들이 김두현의 나이(33)만 주목하며 이제는 위치가 뒤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김학범 감독은 그의 장점을 먼저 보았다. 계산기 두드리니 답은 나왔고 김두현을 다시 전진 배치했다. 그리고 김두현은 살아났다. 효과는 팀으로 번졌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패배의식이 짙었던 성남이다. 그들에게 김두현의 영입과 김두현의 부활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어라? 김두현급 선수가 우리 팀에 왔네?'라는 생각이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고 '어라 두현이 형도 살아나네'라는 눈으로 확인되는 변화가 힘든 줄 모르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시너지까지 김학범 감독은 예상하고 있었다.

김두현은 "예전에도 느꼈지만 김학범 감독님은 정말로 판을 잘 짜신다. 선수들은 믿고 따르기만 해도 된다"는 강한 신뢰를 전했다. 그 믿음은 '김학범식 지기지피'에서 출발한다. 지피지기의 순서만 바꿔서 기적을 빚고 있다.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3-4-1-2나 4-4-2나 4-2-3-1이 아니다. 우리의 상황을 직시(지기)하고 상대와 상황에 맞게(지피)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물며 전쟁도 지피지기면 위태롭지 않다는데, '둥근 공'을 가지고 하는 축구는 절대 기죽을 것 없음을 학범슨이 설명하고 있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