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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들숨날숨] 맑은 아랫물이 윗물을 맑게 하는 포항의 신비

조회수 2014. 7. 30. 08: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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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세상이 가르쳐준 이치다. 그런데 포항 스틸러스 축구단에서는 맑은 아랫물이 윗물을 맑게 하는 신비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신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것이 순리다.

29일 오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구단 보도자료를 하나 받았다. 발신은 포항 스틸러스였다. 내용인즉슨, 산하 유스팀인 U-12 팀이 어떤 대회 정상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내려갔다. 아직 어린 U-12 선수들의 일이라 쉽게 훑어내려 갔음도 고백한다. 그러다 2가지 문구를 보고는 다시 살펴보았다.

하나는 '5년 연속 우승'이다. 포항 U-12 팀은 '2014년 전국 초등 주말리그' 경북 권역 정상에 올랐다. 2010년부터 내리 5연패다. 아직 일정을 다 마치지도 않았다. 조기 확정이다. 19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승점 57점을 획득, 2위인 경북 입실초(승점 42점)를 크게 앞서 남은 3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을 결정지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록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19라운드까지 19승을 거뒀다고 했다. 전승이란 이야기다. 보다 기막힌 것은, 19경기에서 무려 102골을 뽑아냈다는 점이다.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실점은 단 1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12세 이하 유소년들의 대회라지만 믿기 어려웠다. 때문에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틀림없었다.

팀을 이끄는 백기태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속에 '포항의 유스팀'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다. 그런 자부심이 좋은 경기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백 감독의 말처럼, 포항 유스 시스템의 남다른 'DNA'가 다시 한 번 입증된 결과다.

포항 스틸러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유소년 육성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예전부터 많은 축구인들이 미래를 위해 유소년에게 투자해야한다고 외쳤으나 대부분 눈앞의 것에 급급해 씨 뿌리고 물주는 것에는 게을렀다. 그래도 포항이 빨랐다. 포항은 2003년부터 구단이 직접 관리하는 유소년 시스템을 가동했다.

지난 10년의 시간 속에서 현재의 U-12(포철동초), U-15(포철중), U-18(포철고교)로 이어지는 단단한 계단이 만들어졌다. 매사 시작이 있어야 10년이 쌓이고 100년을 향해가는 것이다. 포항의 투자는 벌써 다른 팀들이 부러워하는 결실을 맺고 있다.

모두가 '동급 최강'이다. 포항 U-18팀은 지난해 아디다스 올인 챌린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연패였다.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최근 5년간 7개 대회에서 6번의 우승과 11번의 준우승, 명실상부한 최강으로 자리매김했다.

U-15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2013 추계한국중등연맹전 우승을 차지했던 포항 U-15 팀은 지난 5월에 끝난 43회 전국소년체전에서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U-12팀은 오는 8월 경주에서 열리는 '2014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대회'에서도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결국 이 맑은 아랫물이 맑은 윗물을 만들었다. 현재 포항 스틸러스 선수단 35명 가운데 포항의 유스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 선수는 15명이나 된다. 자체 육성률이 크게 높아졌다. 2010년 16%에 그치던 것이 지난해 41%를 거쳐 올해 43%까지 상승했다. 알 아인으로 이적한 이명주까지 포함했을 때는 주전급만 경기당 6~7명 수준이다.

그야말로 자체 생산이고 '화수분'이라는 표현도 무리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괜찮은 루키들이 나오지 않는 K리그의 현실에서 포항은 '히트상품' 이명주를 만들어 냈고 김승대를 키워냈으며 손준호를 준비시키고 있다. 이들은 모두 포항 유스 시스템을 통해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같은 축구 철학을 공유하면서 같은 환경에서 함께 공을 차왔던 이들이 그 10년의 세월 속에서 함께 녹아들어 현재 포항의 '스틸타카'를 만들었고 사상 첫 더블을 이뤄냈다는 생각이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지난 25일 K리그 올스타전이 끝난 뒤 "점점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팬들에게 좋은 축구를 보여드려야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겠다. 그리고,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좋은 선수들을 키워내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는 뜻을 전했다. 농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밭에서 좋은 양분을 먹고 자라야 좋은 열매가 나오는 법이다.

포항 스틸러스 구단의 모든 운영 방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구단으로서 아쉬운 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칭찬받을 점도 분명하다. K리그 클래식 모 구단의 단장은 "포항의 유스 시스템을 쫓아가려면 우리도 부지런히 투자해야한다"는 솔직한 고백을 전했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대목이다.

맑은 아랫물이 윗물을 맑게 하고 있다. 불과 10년 투자에 포항은 자타공인 리그 최강 팀으로 거듭났다. 다른 K리그 팀들도, 나아가 국가대표팀 운영도 주목해야할 '평범한 신비'다.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체육팀장/lastuncle@daum.net]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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