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column] '포르투갈産' 다이어는 무엇이 다른가

2015. 11. 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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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플러스> 독점 콘텐츠

[포포투+] 만능선수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가 떠오른다. 그런데 잉글랜드에서 뛰는 선수라면 하나 더 떠오른다. 어느 포지션에 세워도 2%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에릭 다이어는 토트넘에서 첫 시즌 풀백과 센터백 포지션을 오갔다. 그리고 지난주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프랑스와 치른 잉글랜드 A매치에선 미드필더로 뛰었다. 그는 공간을 쉽지 내주지 않고 점유율 유지에 힘썼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2-0 승리였다.

지난 주말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도 그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무사 뎀벨레가 빌드업을 시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동안, 다이어는 첼시의 공격 시도를 앞에서 차단(break)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몇 차례 위기도 있었지만, 토트넘은 첼시를 상대로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전(前) 라운드 웨스트햄전 4-1 대승에도 다이어가 있었다.

# 고개 들고 뛰기

일요일 저녁 'BBC 라디오 5 라이브'(편집자 주 - 전화 연결로 다양한 팬들의 의견을 공유하는 포맷)는 어김없이 다양한 스포츠 이야기를 소개했다. 한 선수의 인터뷰가 <포포투>의 귀를 사로잡았다. 1970년대 후반 코펜하겐에서 핀 라우드럽(미카엘의 부친)의 지도를 받은 선수였다. 그는 훈련 도중 라우드럽이 "사람 봐!"라고 연신 소리 지르며 다그쳤다고 했다. 이어 그는 "상대가 어디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면 영국 선수와 다르게 나는 항상 고개를 들고 뛰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이어가 포르투갈에서 보낸 시간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축구를 배웠다. 라우드럽이 그를 봤다면 '유럽에서 뛸 자격'을 갖췄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인정하기에 다이어는 너무 겸손하지만 말이다.

2014년 여름 다이어는 잉글랜드로 왔다. '포르투갈 선수의 고향 컴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많은 칼럼이 그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는 스퍼스가 다시 일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포르팅 리스본(포르투갈)의 육성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가 제대로 드러났다.

그는 여덟 살 때 스포르팅에 입단했다. 수줍은 성격 탓에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포르투갈어가 서툴러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겉도는 신세였다. 처음 6개월 동안 그는 외국인으로서 가장 어려운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 정신 승리

다이어는 기죽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알렸다. 포르투갈어를 습득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다이어는 동년배 중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됐다. 포르투갈어로 자신 있게 지시하며 동료들을 아우르는 힘을 키웠다.

다이어는 침착하게 공을 지켜낸다. 그의 성장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볼 소유 능력이 다이어의 최대 장점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어릴 적 그를 가르쳤던 스포르팅 지도자들의 영향이 크다.

과거 <포포투> 인터뷰 기사에서 다이어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포르투갈은) 주말 오전에 공원에 축구를 하러 가도 잉글랜드처럼 애들을 가르치는 코치가 없다. 선수들은 한 번 들은 내용을 스스로 활용해서 배워나가는 식이다. 스포르팅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고 돌아오면 첫 질문이 '이겼어?'가 아니라 '잘했어?'였다."

그들은 이런 환경에서 침착하게 기회를 엿보며 공을 간수하는 법을 배웠다. 잉글랜드 선수들에겐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선 자연스레 익히는 기술이다. 다이어의 포르투갈 시절을 잘 아는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포르투갈에서 볼을 찼던 환경도 다이어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거다. 스포르팅 유소년 경기는 맨땅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곳에서 태클을 하면 다리 절반이 다 벗겨진다. 용감하거나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들의 경기장은 정말 끔찍했다. 아마 프리미어리그 유소년 선수들이 온다면 욕부터 내뱉을지도 모른다. 다이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거기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 축구를 하려고

열네 살 때 다이어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잉글랜드와 달리 포르투갈에는 집에서 떠나온 학생을 수용하는 기숙 학교가 없었다. 다이어는 가족과 지내며 스포르팅 훈련장을 오갈 때 페리를 이용했다. 다이어는 점점 힘들어져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이어는 유소년 센터에서 살기로 했다. 클럽에선 그게 진짜 다이어의 가족이 원하는 바인지 의아해했다. 다이어는 경기가 끝날 때나 주말에 45분 정도 떨어진 집으로 가곤 했다. 학교도 다녔다. 리스본에 부모와 함께 살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그렇게 스포르팅에서 축구에 완전히 몰두했다. 그가 스포르팅을 '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010년 <포포투> 인터뷰에 소개된 후, 다이어는 웨인 루니, 조 하트, 잭 윌셔와 함께 스포츠브랜드 <엄브로>의 TV 광고에 출연했다. 잘 성장한 다이어는 지금 그때 처음 만났던 선배들과 함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다이어는 스포르팅의 일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그는 훌륭한 선수로 거듭났다. 경력도 많이 쌓았다. 그의 재능을 발견해준 팀 덕분이다.

"나는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학교에서 지낸다. 그리고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훈련을 한다. 프리시즌에는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들도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연습 경기의 수가 줄어드는 대신에 전술과 위치 선정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 포르투갈, 감사합니다

2012년 11월 다이어는 스포르팅에서 프리메이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브라가를 상대로 승리도 거뒀다. 이 시점에서 다이어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킨 사람이 등장했다. 제수알두 페헤이라다. 2013년 1월 페헤이라가 스포르팅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포르투갈에서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페헤이라는 다이어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지금 다이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포지션이다. 다이어는 페헤이라 아래서 다이어는 6개월밖에 뛰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발견해낸 잠재능력이 커진 덕분에 다이어는 지금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아래서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포르투갈축구협회가 다이어에게 귀화를 제안했다고 알려졌다. 사실무근이다. 포르투갈축구협회는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 만약 했더라도 다이어는 포르투갈 국가대표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있다. 토트넘은 물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도 포르투갈의 유소년 육성에 감사해야 한다.

에디트=홍재민, 글=Richard Edwards, 번역=정재은,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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