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현의 스포츠 On Air] 더블헤더는 두렵다

조회수 2015. 7. 29. 11:02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지난 주말 12호 태풍 할룰라는 다행히 우리나라를 피해갔다. 수도권은 장맛비로 이틀 동안 야구가 열리지 못했지만 태풍이 비껴간 마산의 하늘은 3일 내내 매우 쾌청했다. 그리고 몹시 무더웠다. 두산의 오재원은 폭염 속에 치러진 경기 중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상이 없다니 정말 다행이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긴장했던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체력이 변수다. 더운 날씨도 문제지만, 다음 주부터는 3연전이 아닌 2연전이다. 거의 모든 팀들의 주전급 선수 중 최소 한 두 명씩은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천 순연된 경기들이 부메랑이 돼서 기다리고 있다. 11월에 예정된 프리미어 12로 인해 일정을 늦추기는 어렵다. 결국 8월부터는 더 꽉 짜인 스케줄이 불가피하다.

<나라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는데 우천 취소된 경기가 유난히 많은 아이러니한 시즌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모든 팀에게 동등한 경기수가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우천 순연된 경기를 팀별로 어떻게 치르느냐가 후반기 순위 싸움의 아주 큰 변수가 될 전망인데, 현재까지는 월요일 경기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물론 부담스럽기는 하다. 선수들도 입장도 그렇겠지만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선수들과 비슷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계 스태프도 매우 힘든 일정이다. 일주일에 허락된 단 하루의 휴식일이 날아가는 셈이다. 그래도 차라리 월요일 경기가 낫다는 게 중론이다.

최후의 보루로 언급되는 더블헤더에 비하면 그렇다. 현장의 선수, 코칭스태프도 더블헤더는 반대의견이 많아 실현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8월에도 우천취소경기가 속출하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만해도 더블헤더 경기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경기 일정이 빡빡한 메이저리그는 더블헤더를 종종 볼 수 있다. 30개 팀이나 되다보니 같은 지구가 아니면 만날 기회가 많지 않고, 이동거리도 멀어 순연을 시키면 차후 스케줄 조정이 매우 어렵다. 그러다보니 이런 경우도 있다. 2013시즌 샌프란시스코와 신시내티(신시내티 홈) 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비로 순연됐는데, 두 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맞붙는 일정만 남아 있었고 신시내티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더블헤더를 갖기로 결정했는데, 1차전은 원래대로 홈팀이 샌프란시스코였지만 2차전은 신시내티가 홈팀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AT&T파크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원정팀이 돼 '말'공격이 아닌 '초' 공격을 했던 이색적인 경우다.

사실 선수층이 두꺼운 메이저리그는 더블헤더가 종종 있더라도 시즌을 운영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KBO리그는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 한 낮부터 경기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다. 선수들도, 관중들도 더위와 피곤함에 지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다행히 예보에 따르면 경기 시간에는 비가 그친다고 한다>

중계방송 스태프도 피곤한건 마찬가지다. 잠시 배구의 예를 들면, V리그는 종종 한 지역에서 여자부, 남자부 경기가 차례로 열린다. 캐스터와 해설진은 남자부, 여자부에 따라 바뀌지만 나머지 스태프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두 경기 모두 5세트 접전으로 치열하게 진행될 경우 최대 10세트를 중계할 수도 있는데, 소요시간은 약 5시간 가까이 된다. 그렇게 두 경기 중계를 모두 마치면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리고 야외 스포츠다. 그래서 더 더블헤더가 두렵다. 매년 이맘때, 더블헤더의 가능성이 제기 될 때마다 2012년 9월 14일이 떠오른다. 광주-KIA 챔피언스필드가 한창 공사 중이던 그때, 바로 옆 무등 야구장에서 롯데와 KIA가 더블헤더로 맞붙었다. 당시 중계를 맡은 MBC스포츠플러스에서는 논의 끝에 먼 광주 출장을 감안, 같은 스태프가 두 경기를 모두 커버하기로 결정했다. 캐스터와 해설도 한명재, 허구연 콤비가 두 경기 모두를 맡았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PD, 아나운서, 해설자, 엔지니어, 카메라 감독 모두 더블헤더를 갖게 된 것이다.

경기 시작시간은 오후 3시로 기억한다. 1차전은 비교적 빠른 진행을 보였다. 선발이었던 KIA의 김진우가 호투하며 10대1 KIA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이대로라면 2차전도 할만 했다. 그러나 2차전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접전 끝에 두 팀은 심지어 연장에 돌입했다. 11회까지 7대7. 12회 초 롯데가 한 점을 뽑아내 8대7을 만들었다. 그리고 12회 말 투아웃. 21이닝 경기에 이미 모두가 지쳐있었고 그렇게 한 경기씩 승리를 나눠 갖는 걸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롯데의 투수는 베테랑 강영식이었고 타자는 이날 데뷔무대를 갖게 된 황정립이었다. 황정립은 1차전에서 대주자로 1군에 데뷔했다. 그리고 2차전 12회말 투아웃에 대타로 데뷔 첫 타석을 갖게 됐다. 모두가 지쳐있었지만 데뷔 타석에 나선 황정립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강영식의 3구를 그대로 받아쳐 장외로 공을 넘겼다. 극적인 동점 홈런. 그렇게 무승부로,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경기가 끝났다. 중계차에서 나온 시간은 아마 밤 12시가 다 되었을 것이다. 9시간, 21이닝의 역사적인 하루였다.

<더위와 싸우는 허구연 위원님. 최근의 사진인데, 아마 더블헤더 당시도 이렇게 지쳐있었을 것이다>

벌써 3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도 더블헤더는 여전히 두렵다.

아직도 그 황정립의 타구가 날아갈 당시 허구연 위원의 멘트가 귓가에 맴돈다.

"으아아아악! 이게 뭐에요! 이게 뭡니까!!!!"

글=박차현(MBC스포츠플러스 PD)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