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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S담쓰談]퇴출 용병? 그들의 다른 이름은 아버지다

조회수 2015. 6. 17. 11: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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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가족' 두산과 LG가 최근 나란히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다. 먼저 두산이 지난 13일 우완 유네스키 마야(34)를 내보내고 역시 우완 앤서니 스와잭(30)을 영입했고, 이틀 뒤 LG가 내야수 루이스 히메네즈(28)와 계약을 발표하면서 잭 한나한(35)을 내보내기로 했다.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해야 하는 두 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마야는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13경기 등판, 2승5패 평균자책점(ERA) 8.17의 부진을 보였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마저 어깨 부상으로 빠진 두산은 선두 싸움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한나한은 올해 32경기 타율 3할2푼7리 4홈런 22타점으로 중심타자 역할은 그런대로 해줬다. 그러나 허리와 종아리 부상으로 합류가 늦었던 데다 아직도 완전치 않아 수비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때마침 히메네즈가 메이저리그에서 방출되면서 LG도 용단을 내렸다.

<'아들아, 보고 있니?' 최근 나란히 웨이버 공시된 LG 내야수 잭 한나한(왼쪽)과 두산 우완 투수 유네스키 마야.(자료사진=LG, 두산)>

새로운 선수의 합류는 반갑고 팀 사기를 높이지만 정든 선수와 이별은 서글프다. 마야와 한나한, 둘의 방출이 아쉬운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음에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로도 적지 않았다.

마야는 지난 4월 9일 생애 첫 대기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넥센과 잠실 홈 경기에서 9회까지 안타와 점수를 1개도 내주지 않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후유증 때문일까. 이후 10경기에서 4패만 안았고, ERA는 무려 10.88에 이르렀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몸이 좋지 않은 게 보였지만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참고 최선을 다해 더 안타깝다"고 했다.

한나한도 마찬가지다. 스프링캠프 때 입은 종아리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허리 통증이 있었음에도 한나한은 배트를 휘둘렀고 베이스를 향해 달렸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 생명을 걸고 뛰었다"고도 털어놨다. 양상문 LG 감독도 "잘 해줬지만 워낙 몸이 좋지 않았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한나한과 마야의 부상 투혼이 더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까닭이다. 아이와 아내, 가족을 위해 아파도 뛰어야 했던 책임감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아들이자 남편' 한나한의 어머니 애니와 아내 제니, 아버지 존(왼쪽부터)이 지난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가장을 응원하는 모습.(뉴스엔=표명중 기자)>

지난 11일 잠실 두산-LG의 잠실 라이벌 경기에 앞서 선수단 출입구 쪽에서 한나한의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존과 어머니 애니를 비롯해 아내 제니와 두 아들 레니와 조니 등이었다.아들과 남편, 아버지의 활약을 직접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는 아니더라도 한나한의 경기 때는 거의 매일 잠실 나들이에 나섰다.

이미 아이들은 우리 말을 할 줄 알았다. 특히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은 선수나 관계자들을 보고 "안냐세오~"(내가 듣기에 그렇게 들렸다) 인사말을 건넸다. 모국어조차 완전히 익히지 못했을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온 낯선 이방의 언어까지 습득한 것이다. 이 귀여운 모습에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것이 내가 본 마지막 한나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한나한은 추신수(33 · 텍사스)의 절친으로도 알려졌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에서 한솥밥을 먹었는데 특히 '한나한 전세기' 일화가 유명하다. 2012년 8월 보스턴 원정 때 임신 중이던 한나한의 아내가 출산 두 달을 앞두고 갑자기 양수가 터진 것. 야심한 시각에 비행기가 끊긴 가운데 추신수가 주도해 선수들끼리 돈을 모아 전세기를 얻었고, 한나한은 클리블랜드로 날아가 아이의 출산을 볼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첫째 조니일 것이다. 당시 1.4kg 미숙아로 걱정이 많았던 아이가 이제는 아버지의 경기를 직접 보고 응원을 펼칠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났다. "안냐세오" 라고 아기새처럼 지저귀던 그 아이 말이다. 그래서 한나한은 아파도 힘을 내서 뛰었을 것이다. 헬멧에 새겨진 자신의 아이, 아내,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한나한의 첫째 아들 조니(왼쪽)가 아빠를 응원하는 모습과 아내, 두 아들, 반려견 등 가족의 이름을 새긴 헬멧을 쓴 한나한.(사진=스카이스포츠 중계 화면 캡처, MK스포츠 김재현 기자)>

마야도 마찬가지다. 노히터 대기록을 세운 뒤 마야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기자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마야는 일단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버지의 눈물'도 섞였다. 마야는 "쿠바에 있는 가족을 못 봐서 매우 그립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내가 경기하는 것을 TV로 봤을 거라고 믿고 다시금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활약하는 마야는 기러기 아빠. 특히 4월 4일이 아들 케일러의 첫돌이었다. 갓난아기의 생일을, 또 아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눈물이 되어 흘렀을 터였다. (다만 이후 아기와 아내가 방한해 마야는 기러기 아빠 신세에게 벗어날 수는 있었다.)

어디 이들뿐인가. 한국에 오는 이른바 용병들 중 상당수는 아빠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를 뜨겁게 달궜던 전자랜드 주장 리카르도 포웰(32)과 프로배구를 집어삼킨 삼성화재 '괴물' 레오 마르티네즈(25)도 그 놀라운 힘과 기량의 원천은 아빠의 힘이라 할 것이다. 이외도 언급하지 못한 아빠 외국인 선수들은 더 있을 터다.

<'아빠, 울지 마요' 마야가 지난 4월 9일 잠실 넥센전에서 생애 첫 노히터 경기를 펼친 뒤 하늘에 기도하는 모습(오른쪽)과 아들 케일러, 아내가 지난달 20일 잠실 삼성전 때 가장을 응원하는 모습.(사진=두산, 뉴스엔 표명중 기자)>

일단 마야와 한나한은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됐다. 이 둘 모두 "구단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두 구단도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성적을 내야만 하는 구단에도 비록 이방인은 아니나 아빠들이 수두룩하다. 야구 팬들은 물론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서라도 순위를 올리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피할 수 없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나한과 마야. 이와 함께 이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또 실제로도 그렇게 했던 아버지의 책임감을 보여줬다. 시즌 중 방출의 안타까움 속에 떠나야 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더 짠한 이유다.

다만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성실함과 인내라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떳떳한 아빠가 되는 데는 하등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한나한과 마야, 그밖에 숱한 한국 무대의 외국인 아빠 선수들에게, 이 기사를 쓴 칼럼니스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러고 보니 추신수와 이대호(33 · 소프트뱅크), 왕년의 박찬호(42 · 은퇴) 등 한국 선수들도 해외 무대에서는 아빠 외국인 선수가 아닌가. 국적을 막론하고 힘겨운 외국 생활을 견뎌내며 빼어난 기량을 뽐내는 이유일 것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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