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병역 혜택과 FA 대박, 그 거대한 부담과 책임감

조회수 2015. 6. 14. 04: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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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계에는 금지약물 못지 않은 강력한 효과를 지닌 요인이 있다. 단, 남자 선수에게 한정되는데, 또 좁히자면 군 미필 선수에게는 어쩌면 금지약물 이상의 경기력 향상을 불러일으킨다. 다름아닌 '군대로이드'로 불리는 병역 혜택이다.

20대 중후반 전성기 시절의 금쪽같은 2년 세월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휴지기 없이, 저하된 기량과 감각 회복의 과정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병역 혜택은 그야말로 한 선수의 성공을 좌우할 만한 요소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메달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이에 못지 않은 효과를 내는 게 이른바 'FA로이드'다. 이는 프로 선수들,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있는 종목에 해당될 텐데 수십 억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뿐일 수 있는 기회다. FA 자격 취득을 앞둔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몸값을 높이는 효과를 뜻하는 게 FA로이드다.

< '얼마나 좋을까'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이 확정된 뒤 기뻐하는 KIA 나지완(왼쪽)과 올 시즌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는 롯데 강민호.(자료사진=노컷뉴스, 롯데 자이언츠) >

양대 로이드의 효과는 엄청나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또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표팀 발표나 FA 계약을 코앞에 둔 시기 선수들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최고조다. 저렇게 잘 하는 선수였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금지약물과는 다르나 부작용이 있는 점은 일견 비슷하기도 하다. 단기간에, 혹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경기력을 보이는 까닭에 원하는 결과를 얻고 난 뒤 후유증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온 힘과 정신을 기울였던 목표를 이룬 다음에 오는 허탈감과 상실감, 또 무리한 몸의 이상 징후 등 다양한 이유로 거짓말처럼 실력과 경기력이 떨어진다.

병역 혜택과 FA 대박 전후 성적이 두드러지게 다른 선수들이 종종 보이는 이유다. 그 혜택이 정말 크기에 주위에서는 눈을 흘기는 사람들도 많다. 심하면 '먹튀'라는 말까지 튀어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국제대회에서 빼어난 성적으로 군 면제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이후 대표팀 차출에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는 의혹어린 시선들도 있다. 때문에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시쳇말로 피해의식을 풀어내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해당 선수들은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하다.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혹은 자기 분야에서 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팀의 성적을 높이고 얻은 정당한 혜택인데 질시와 비난을 견뎌내야 한다. 부진하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닌데 양심과 도덕적인 공격을 감내해야 한다.

< '나지왕 납시오' KIA 나지완이 13일 삼성과 홈 경기에서 1회말 좌중월 3점 홈런을 치고 호돌이의 큰절을 받으며 베이스를 돌고 있다.(광주=KIA 타이거즈) >

병역로이드와 관련해 비난을 받은 대표적 선수가 프로야구 KIA 나지완(30)일 것이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에 일조한 나지완은 그러나 축하보다 냉소를 더 많이 받았다.

지난 시즌 나지완은 118경기 타율 3할1푼2리 19홈런 79타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대표팀에도 승선했지만 부상 여파로 크게 기여는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금메달을 따낸 이후 오른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고통 속에서도 시즌과 아시안게임을 치렀다는 나지완의 고백은 감동과 함께 공분도 많이 샀다. 진통 투혼보다 부상을 숨기고 대표팀에 승선했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병역 혜택에 대한 부담감은 FA로이드를 짓누를 만큼 컸다. 올 시즌 뒤 FA 자격을 얻는 나지완은 기존 예비FA들의 행보를 보면 올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어야 한다. 하지만 나지완은 올해 타율 1할대의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팀 4번 타자가 2군에 내려가 1군 경기의 3분의 1이나 빠져 있었다.

그랬던 나지완은 13일 삼성과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홈 경기에서 모처럼 이름값을 해냈다. 1회 선제 결승 3점 홈런 포함, 멀티히트로 7-4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두 달여 만의 홈런과 약 2개월 만의 멀티히트였다. 경기 후 나지완은 "팀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며 그동안의 속앓이를 털어놨다.

< '올해는 달라요' FA 대박 계약 이후 첫해인 지난 시즌보다 올해 더 나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민호(왼쪽부터)와 한화 이용규, 정근우.(자료사진=롯데, 한화 이글스) >

FA 대박을 친 선수들의 부담도 적지 않았다. 역대급 몸값이 수두룩하게 터져나왔던 2013시즌과 지난 시즌 뒤 FA들의 이듬해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부담감과 부상 등의 이유가 컸다.

대표적인 선수가 롯데 포수 강민호(30)다. 2013시즌 뒤 당시 역대 최고액(4년 75억 원)을 찍었던 강민호는 지난해 98경기만 출전, 타율 2할2푼9리 40타점에 머물렀다. 홈런은 16개로 적지 않았는데 삼진도 92개였다.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윙이 커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3시즌 뒤 4년 67억 원에 계약한 한화 이용규(30)도 지난해는 104경기 타율 2할8푼8리 12도루 62득점 20타점으로 썩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어깨 부상이 완전치 않은 탓이 컸다. 4년 70억 원의 같은 팀 정근우(33)도 지난해 타율 2할9푼5리 91득점 32도루로 활약했지만 워낙 타고투저가 심해 주목을 덜 받았다.

하지만 강민호는 올해 몸값을 입증하고 있다. 13일까지 홈런 1위(23개)에 타율 4위(3할4푼9리), 타점 3위(58개)를 달리고 있다. 강민호는 "지난해 워낙 부진해서 올해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승세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용규도 타율(.346)과 득점(52개) 5위에 도루 4위(18개)를 기록 중이다. 정근우는 스프링캠프 턱 골절상 여파가 있었으나 최근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한화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 'FA 6인방' 지난 시즌 뒤 역대급 FA 계약을 맺은 KIA 윤석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SK 최정, 두산 장원준, 삼성 윤성환, 안지만, SK 김강민.(자료사진) >

지난 시즌 뒤 FA 대박 선수들의 희비도 엇갈린다. 타자 최고액(4년 86억 원)의 SK 주포 최정(28)은 올해 부상 속에 34경기 타율 2할5푼9리 5홈런 21점에 머물러 있다. 같은 팀 외야수 김강민(33)도 부상에서 최근에야 복귀해 서서히 컨디션을 올리고 있다.

부상이 없는 선수들은 물론 나름 제몫을 해주고 있다. 역대 최고액(4년 90억 원)의 KIA 윤석민(29)은 구원 2위(13세이브)를 달리고, 역대 3위 몸값(4년 84억 원)의 두산 장원준(30)도 5승3패 평균자책점(ERA) 3.77을 기록 중이다. 삼성 윤성환(4년 80억 원)도 6승3패 ERA 3.53, 같은 팀 안지만(4년 65억 원) 역시 홀드 1위(16개)로 순항 중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KBO 리그 통합 4연패를 이룬 류중일 삼성 감독은 최근 뼈있는 말을 했다. 먼저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은 이후에도 국제대회에 참가해 국가의 위상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 이런 가운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9일 이사회에서 병역 혜택 선수들은 향후 5년 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달았다. (당연한 일을 명문화까지 해야 하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류 감독은 또 "FA들을 포함해 몇 억씩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몸값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수천만 원대 연봉자들과 월급을 바꿔서 받아야 한다는 특유의 농담도 섞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혜택을 받았으면 그만큼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간절한 마음 그대로'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야구 대표팀의 시상식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

군 면제와 FA 계약이 주는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그러고 보니 둘은 또 상호 작용한다. 병역 혜택을 받으면 FA 계약 규모가 더 커진다. 그러나 혜택이 큰 만큼 책임과 의무, 그에 따른 부담감도 비례한다. 그래프로 그리자면 혜택보다 부감감이 어쩌면 다 가파르게 상승할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고,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마찬가지일 것이다.

류 감독은 지난 3일 포항 경기를 앞두고 홈런포를 연일 뿜어내던 강민호에게 "너 왜 우리와 할 때만 홈런을 많이 치노, 이 먹튀야"라고 농담을 했다. 워낙 친한 사이였다. 그런 류 감독은 다음 날 강민호를 찾아가 위로했다. 혹시나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강민호는 그날도, 다음 날도 홈런을 뽑아냈다. 이후에도 7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류 감독의 농담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달에만 10경기에서 홈런 8개, 14타점. 이제 강민호는 '먹튀'의 굴레와 FA의 부담감을 떨쳐낸 것이다. 1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제 모습을 찾았다.

나지완과 최정, 김강민 등 다른 선수들도 곧 부상과 부담감을 극복하고 자신들이 왜 그런 혜택을 받았는지를 입증할 것이다. 병역 혜택과 FA 대박을 경험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택을 받았고, 큰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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