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우리는 지금 '마무리 부재'의 시대를 산다

조회수 2015. 5. 16. 12:2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연일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전체 일정의 4분의 1 정도(720경기 중 184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진다.

특히 전체 일정의 11%가 넘는 21경기에서 끝내기 승부가 나왔다. 이 경기들 중 야구의 백미로 불리는 끝내기 홈런은 10개가 폭죽처럼 터졌다. 지난해 8개를 벌써 훌쩍 넘어섰고, 역대 최다였던 2001년 15개를 경신할 태세다.

7~8점 차 리드도 안심할 수 없을 만큼 중후반 혼전이 펼쳐진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요즘 KBO 리그다. 이러다 보니 팬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관중석을 뜨거나 중계 화면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 '마무리 수난시대?'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 프로야구도 마무리를 비롯한 불펜이 힘겨운 행보를 잇고 있다. 올 시즌 마무리로 낙점됐던 SK 윤길현-두산 윤명준-롯데 김승회-KIA 윤석민-한화 윤규진-케이티 김사율(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그러나 이들 중 절반이 임무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자료사진=각 구단) >

비록 끝내기 승부는 아니었지만 버금가는 경기가 15일도 펼쳐졌다. NC는 삼성과 접전 끝에 9회 김종호의 결승 2점 홈런으로 7-5 승리를 거뒀고, 롯데는 올 시즌 최장인 5시간 7분 연장 12회 혈투 끝에 케이티를 11-10으로 눌렀다.

이러다 보니 블론세이브가 속출하고 있다. 불펜 투수들이 리드를 지키지 못해 홀드나 세이브 기회를 날리는 경우다. 1982년 KBO 리그 출범 뒤 가장 두드러진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보인 지난해에 필적할 만한 페이스다.

블론세이브는 KBO가 2006년부터 공식 기록으로 수치화했다. 최근 9시즌을 보면 보통 한 시즌 구단 평균 10개 남짓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불펜 투수 '수난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2006년 리그 평균 13.5개였던 블론세이브는 이듬해 10.38개가 최소였다. 혼자 13개를 기록한 당시 LG 마무리 우규민이 아니었다면 한 자릿수가 될 수도 있었다. 2007년 우규민은 13개의 블론세이브로 역대 개인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규민은 당시 정상급 마무리였다. 62경기 등판 5승6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ERA) 2.65를 찍었다. 당시 삼성의 '끝판왕' 오승환(한신)의 40세이브에 이어 구원 2위였다.

우규민은 2006년에도 62경기 3승4패 17세이브 7홀드 ERA 1.55을 찍은 LG 필승 카드였다. 블론세이브도 3개뿐이었다. 그러나 2007년 불운이 겹쳤다. LG는 그해 삼성에 3경기 차 5위로 가을야구 진출이 아쉽게 무산됐다.

2010년은 사상 처음으로 구단 평균 14블론세이브를 넘겼다. KIA가 역대 최다 팀 블론세이브(26개) 불명예를 안은 게 컸다. 2009년 통합 우승팀 KIA는 이상하게 2010년이 잘 풀리지 않았다. 유동훈(6개), 곽정철, 손영민(이상 5개) 등 불펜이 흔들렸다.

이후 2년 동안 평균 12.5개였던 블론세이브는 2013년 들어 이상 조짐을 보였다. 신생팀 NC의 가세로 9구단 체제가 벌어진 시즌이었다. 역대 최다 126개 블론세이브가 나왔고 구단 평균 14개였다. 홀수 팀 체제로 한 팀이 휴식일을 가져 투수들이 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그러더니 지난해는 각 팀 불펜진에 연일 불이 났다. 2013년보다 20개 가까이 많아진 145개 블론세이브가 쏟아졌다. 팀당 무려 16개가 넘었다. 출범 뒤 최악의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지난해 리그 전체 타율은 무려 2할8푼9리에 이르렀고, ERA는 5.31을 찍었다. 외국인 타자 가세와 좁아진 스트라이크에 투수들이 배겨내지 못했다.

올해도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일단 타율과 ERA는 지난해보다 덜하다. 올해 리그 평균 타율은 2할6푼7리, ERA는 4.68이다.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블론세이브 수치는 지난해와 비슷하다. 15일까지 41개, 구단 평균 4.1개인 블론세이브는 올해 전체로 계산하면 160개, 구단 평균 16개까지 나온다. 지난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시즌 초반, 투수들이 지치는 한여름을 지나면 더 올라갈 수 있다. 올해는 케이티의 가세로 사상 첫 10구단 체제가 펼쳐지고 있다. 경기수가 늘어난 만큼 투수들의 부담도 커 블론세이브가 양산될 가능성도 높다.

< '이들의 투혼은 언제까지' 한화 박정진(왼쪽)-권혁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불펜에 잦은 등판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자료사진=한화) >

특히 마무리들의 불안한 모습이 심상치 않다. 두산 윤명준은 벌써 블론세이브가 5개나 된다. 4분의 1 정도 일정을 감안하면 20개 가까이 나올 수 있다. 2007년의 우규민을 뛰어넘을 기세다. 한화 수호신 권혁도 눈물겨운 투혼에도 3개의 블론세이브가 있다. 지난해 임창용(삼성)이 세운 역대 2위 9개를 넘어설 수 있다.

어쩌면 올해는 '마무리 부재'의 시즌이 될 수도 있다. 간판 클로저가 부진해 집단 마무리 체제를 꾸려가는 팀들이 적잖다. 롯데는 마무리 김승회를 선발로 돌리고 대신 심수창이 뒷문을 맡지만 블론세이브가 2개다. 두산은 윤명준이 미덥지 못해 다른 선수가 마무리가 등판할 때 나오기도 한다.

권혁은 윤규진의 부상으로 임시 마무리를 맡고 있다. 윤규진 역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블론세이브가 2개였다. 케이티도 장시환(3세이브, 2블론세이브) 외에는 믿을 카드가 없다. LG는 봉중근이 ERA 9.00으로 부진한 가운데 '로켓맨' 이동현마저 부상을 당할 뻔했다. NC는 마무리 김진성이 부상으로 빠져 있다.

삼성과 SK, 넥센 정도가 그래도 마무리가 든든한 축에 속할 것이다. 세이브 공동 1위(10개) 임창용(삼성)과 윤길현(SK)도 그러나 ERA가 4점대다. 임창용은 2블론세이브로 2패를 안았다. 손승락(넥센)이 8세이브 ERA 2.60이다. 1승3패 7세이브의 KIA 윤석민은 2블론세이브에 ERA 5점대다.

< 'KBO 리그의 전설들' 초창기 프로야구는 선발-마무리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선동열-고(故) 최동원-김시진(왼쪽부터) 등 전설들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자료사진=MBC) >

KBO 리그 역대 최고 투수를 꼽으라면 역시 선동열 전 KIA 감독(52)이다. 11시즌 통산 37경기 등판 146승40패 132세이브 ERA 1.20을 찍었다. 선발과 마무리 투수로서 모두 KBO 리그에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그런 선 감독은 "선발보다 마무리는 100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선발은 일정을 예상할 수 있어 관리를 할 수 있지만 마무리는 모든 경기에 준비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공 하나에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부담감이 엄청난 마무리 투수의 1이닝은 선발 투수의 5이닝과 맞먹는다"고 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타자들의 힘과 기술에 맞서 연일 살얼음 승부와 힘겨운 시즌을 치르고 있는 KBO 리그의 마무리와 불펜 투수들. 위기에서 벗어나고 경기를 끝내는 짜릿함에 비례해 그들이 갖는 부담감 또한 엄청날 것이다. 쉴틈없이 경기 중후반을 책임지는 불펜의 어깨들을 토닥이고 쓰다듬어줘야 할 것이다. '마무리 부재'의 시대가 오지 않도록 말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