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우리는 박태환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할까

조회수 2015. 3. 26. 02:06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한국 수영은 물론 체육계가 발벗고 나선 '작전명 마린보이 구하기'가 일단 성공했다. 박태환(26)에 대한 '형량'을 최대한 줄여 가장 큰 목적이었던 올림픽 출전의 가능성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대한체육회의 규정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결국 여론이다.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수영 및 스포츠 팬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이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박태환의 거취는 현 정권과도 어쨌든 연결되는 문제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다면 부담을 느낀 정부는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박태환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올림픽의 길은 열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박태환의 내년 브라질행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박태환을 품에 안고 그에게 다시 명예회복의 기회를 줘야 할까.

< '일단 급한 불은 껐는데...' 24일(한국 시각) 국제수영연맹(FINA)로부터 18개월 징계를 받은 수영 스타 박태환.(자료사진=박종민 기자) >

박태환은 24일(한국 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청문회에서 18개월 선수 자격 정지가 확정됐다. 지난해 9월 금지약물 검사에서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된 데 따른 징계다.

이에 따라 박태환은 도핑테스트를 받은 지난해 9월3일부터 내년 3월2일까지 대회 출전과 훈련 등 선수로서 활동이 금지된다. 아울러 인천아시안게임 등 이 기간 출전했던 대회의 메달은 박탈된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애초 박태환과 한국 체육계가 이번 청문회에서 바랐던 것은 원천적인 징계 무효가 아니라 기간 단축에 있었다. 내년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만 가능하다면 징계는 받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사례들을 검토했을 때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최상위 금지약물이 검출된 박태환은 최소한 2년 이상 징계가 예상됐다. 그러나 소속사와 대한수영연맹, 대한체육회 등 '박태환 청문회팀'의 2박3일 동안 기민한 대처와 노력으로 6개월이 감경되는 결실을 맺었다.

박태환은 그러나 체육회의 국가대표 도핑 관련 규정에 직면한다. 지난해 7월 강화된 개정안 국가대표 선발 규정 중 제 5조 6항은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를 결격으로 정해놨다. 여기에 따르면 박태환은 내년 3월 FINA의 징계가 풀리더라도 3년 뒤인 2019년 3월에야 대표 선발 자격이 생긴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박태환의 청문회 대책을 위해 모인 대한체육회와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

여기에서 논란이 생긴다. 한 마디로 박태환에게 예외를 적용할 것이냐는 문제다. 체육회가 다시 개정을 한다 해도 박태환 1명 때문에 규정을 고친다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지난해 정한 규정을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바꾼다면 체육회의 권위도 흔들릴 것이 분명하다.

이는 비단 체육회가 아니라 정권 차원의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이 규정은 지난해 '체육계 정상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서슬푸른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규정이 바뀐다면 정부의 개혁 의지에도 적잖은 타격이 갈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편파 판정에 울분을 토한 고교 태권도 선수 아버지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비정상적인 체육계 관행을 뿌리뽑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이 바뀌는 진통 속에 체육회는 조직 사유화, 입시 비리, 승부 조작 · 편파 판정, 폭력 · 성폭력 등 '스포츠 4대악' 폐지를 위해 규정을 개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약물 관련 조항도 강화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규정에 박태환이 걸린 것이다. 만약 지난해 정부 지시가 없었다면, 그래서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을 터였다.

<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태권도 편파 판정 비리를 계기로 체육계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자료사진) >

더군다나 약물 관련 조항은 '이중처벌' 논란도 있다. 일부 법조인들의 주장처럼 FINA의 징계가 있는데도 다시 해당 국가 체육회가 벌을 내리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 세계 스포츠계의 헌법재판소 격인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1년 WADA 외 추가 징계를 명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에 대해 폐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IOC도 CAS의 결정에 따라 회원국의 올림픽위원회와 국제경기연맹에 추가 징계를 내리지 말라고 통보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7월 체육회의 규정 개정은 청와대의 불호령에 화들짝 놀라 논란이 있는 규정을 보탠 꼴이다. 이른바 윗분들의 눈에 보기 좋게 규정을 만들다 보니 과잉 처벌이 포함된 모양새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박태환을 예외로 두거나 규정을 고친다면 체육회, 문체부, 나아가 청와대의 의지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셈이다. 박태환을 구해주자니 정부의 권위가 흔들리고 올림픽 출전의 길을 막자니 그동안 박태환의 공로가 무색해지고 처지가 딱해진다.

< '금지약물도 함께...' 지난해 박태환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라이벌 중국의 쑨양과 경기 후 손을 맞잡은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 바로 민심이다. 박태환에 우호적으로 형성되는 여론을 등에 업는다면 청와대-문체부-체육회를 통해 단박에 개정에 대한 OK 사인이 떨어질 것이다.

이미 정부가 박태환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한국 수영과 스포츠계를 위해 노력해온 박태환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와 이번 FINA 청문회 때의 지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검찰 입장에서는 박태환 사건이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무슨 중요한 범죄도 아닌 데다 첨예하게 맞서는 양측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검찰은 박태환의 무고함을 입증해줬다. 박태환 측에서 국가가 공인한 자료는 FINA에 결백을 증명할 최고의 무기였다.

이 정부에게 내년 올림픽은 민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인이다. 온전히 이 정권 기간에 열리는 대회다. 분산 개최 등 뜨뜻미지근한 지원 태도를 보였던 2018년 평창올림픽, 즉 정권이 바뀔 즈음 열리는 대회와는 다르다. 리우올림픽 성적이 좋으면 국내 분위기가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메달 가능성이 높은 박태환은 포기할 수 없는 카드라는 것이다.

< '내년에는 다른 대통령이?'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박태환이(왼쪽)이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격려를 받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민심이 박태환에게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쪽으로 흐른다면 체육회, 문체부, 나아가 정권도 부담이 커진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체육계 정상화'였기에 더 그렇다.

이제 박태환의 올림픽과 관련한 '생사 여탈권'은 독자 여러분을 비롯해 '우리'들이 쥐고 있다.(현 정권의 지속과 야당의 탈환 여부도 우리가 결정하듯 말이다.)

박태환의 소속사 팀 지엠피는 24일 FINA 청문회 결정을 현지에서 보도자료로 보내면서 "FINA의 기밀유지조항을 지키기 위해 국민 여러분들과 기자님들께 마음과 달리 어떤 답변도 드릴 수 없었던 점에 대해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맹 측과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여 안내하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적잖았던 의혹에 대해서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또 혹시라도 잘못한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현 정권의 어느 전 장관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한다면(그래서 경질되긴 했으나),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그랬듯 엄혹한 여론의 철퇴는 자명한 일일 터이다.

박태환과 애증이 섞인 옛 스승 노민상 감독은 25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태환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박태환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줘야 할까.

< '태환아, 다시 일어나라' 박태환을 발굴해 세계적 선수로 키워낸 노민상 감독.(자료사진) >

※개인적으로 평소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는 것을 극혐하는 일인입니다. 런던올림픽 당시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에 대한 국정 감사 때 스포츠와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무식함에 절망한 까닭입니다. "IOC가 뭔데 메달을 주지 않느냐" "세리머니라는 뜻을 알고 쓰느냐, 뒤풀이로 고쳐라"는 등의 기상천외한 발언에 학을 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사안이 사인이다 보니 칼럼에 어쩔 수 없이 정치 얘기를 섞었던 점 양해를 바랍니다. 순수하게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요? 박태환과 관련해서도 스포츠 스타가 줄 수 있는 감동과 정정당당한 승부, 그런 차원에서 판단이 내려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스포츠의 대중성에 기대어 조금이라도 자신을 나타내려는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나중에 따로 칼럼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글=CBS 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