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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S담쓰談] 박태환의 눈물과 약물, 그리고 감사패

조회수 2015. 3. 5. 11: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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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영의 간판스타 박태환(26)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2000년대 중반 이후 근10년 대한민국 수영의 국제 경쟁력을 거의 한 몸으로 지탱해왔다시피 했던 박태환. 그러나 최근 불거진 금지약물 파문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최대 위기에 놓여 있다.

박태환은 지난해7월 모 병원에서 맞은 주사제에 금지약물이 검출돼9월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적발됐다. 2차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와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WADA가 정한 최상위 금지약물 테스토스테론이라 이전 사례들을 감안할 때 최소2년 징계가 예상된다.박태환이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한 해당 병원장을 검찰이 불구속 입건하면서 '고의 투약' 의혹에서 표면적으로는 벗어났다고는 하나 국제수영연맹(FINA)이 정상 참작을 해줄지는 미지수다.

<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박태환은 지난해 국제수영연맹(FINA)의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돼 징계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때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

박태환의 징계 여부와 수위 결정을 위해 지난달 27일 예정된 FINA청문회는 일단 연기됐다. 박태환 측이 '소명 자료가 부족하다'며 요청한 일이다. 언제 청문회가 열릴지도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일주일 가까이 아까운 시간이 유수처럼 지났다. 일정이 연기되는 상황은 어쨌든 박태환에게는 유리하게 흐르지 않을 수 있다. 2년 징계면 박태환은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이 무산된다.

이런 가운데 박태환이 최근 훈련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영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태환은 한국체대 수영장에서 대학 측의 협조 속에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답답했을 터. 그러나 일단 박태환은 공기보다 친숙한 물에 몸을 담갔다. 어쩌면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이 물살을 가르면서 잠시나마 상쾌했을지도 모른다.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세계무대의 변방이던 한국 수영을 단숨에 중심에 올려놓은 자랑스러운 이름. 그 박태환이 금지약물에 연루되다니...소식을 접한 국민 모두가 갑갑하고 불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운동선수와는 관계가 적은 미용병원, 갱년기 남성에게나 투여된다는 호르몬제, 또 가장 널리 알려진 금지약물을 몰랐다고 발뺌하는 남성호르몬 전문의 등 풀리지 않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더 무거웠을 민심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포츠기자라는 직업을 떠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무대에서 펼쳐진 박태환의 활약에 전율을 느꼈고, 박수갈채를 보냈던 국민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아니, 오히려 스포츠기자라서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인보다 박태환을 더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그럴 것이다.

< '한국 수영 역사의 시작' 박태환이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귀국해 인터뷰하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

박태환을 처음 본 것은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당시 17살 고교생이던 박태환은 놀라운 기량을 뽐내며 열사의 땅 카타르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남자 자유형200m와 400m, 1500m를 석권, 3관왕에 오른 박태환은 은 1개, 동 3개 등 7개의 메달을 거머쥐며 대회 MVP까지 올랐다. 수영장에서 성인을 능가하던 근육질의 몸매와 역영을 선보인 박태환은 인터뷰 때는 앳된 얼굴로 다소 수줍게 인터뷰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후 박태환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수영 스타로 거듭났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금메달(자유형 400m)을 수확했다. 이후 잠시 주춤했던 박태환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등7개 메달로 부활했고, 이듬해 세계선수권 2연패까지 달성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사실 이런 영광의 순간보다 더 깊게 박힌 박태환의 기억은 따로 있다.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의 눈물'이다. 오심 파문 끝에 올림픽 2연패의 꿈이 좌절된 뒤 터뜨린 안타까운 울음이었다.

당시 박태환은 자유형 400m 예선을 조1위로 통과했지만 부정 출발을 했다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 처리됐다. 이후 대한수영연맹의 2차에 걸친 이의 제기 끝에 FINA가 판정을 번복하긴 했다. 그러나 판정이 바뀌는 수 시간 동안 박태환은 이미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뒤였고, 결국 결승에서 라이벌 쑨양(중국)에 금메달을 내줘야 했다.

< '정말 실격이라고?' 박태환이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을 마친 뒤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

결승전 직후 인터뷰에 나섰던 처음 박태환은 의연했다. 웃으면서 했던 첫 마디가 "서양 선수가 아닌 같은 아시아인이 금메달을 따서 축하해줄 일이고 기쁘다"였다. 예선 판정 번복의 우여곡절에 대해서는 "올림픽에서 은메달도 따기 힘든데 값진 결과"라면서 "예선에 대한 피해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성숙한 답을 내놨다.

하지만 아쉬움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오전 예선이 끝난 뒤 대기 상황에 대해 "오후에 경기(결승)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숙소에서 답답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던 박태환은 "워낙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여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인터뷰 중간중간 "아~!미치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결국 박태환은 북받친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원래 오늘 결승 레이스 전술과 계획은 어떤 것이었느냐"는 모 기자의 질문으로 기억한다. 평범한 수준이었는데 잘 인터뷰하던 박태환은 이 말에 눈물이 터졌다. "흑" 하며 갑자기 돌아선 박태환은 가까스로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요?죄송해요"라며 눈시울을 붉힌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국제대회에서 적잖은 선수들의 눈물을 봤지만 런던올림픽 때의 박태환만큼 안타까운 사연은 많지 않다. 4년 간 땀의 결실을 오롯이 맺어 흘린 감격이나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나온 실망과 아쉬움의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부적 요인, 그것도 어이없는 오심이 경기력과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억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눈물에 담긴 한(恨)의 점도와 짠맛은 아마 같은 런던올림픽 펜싱장을 흥건히 적신 여자 에페의 신아람(계룡시청)의 눈물과 같은 수준일 것이다. (판정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의 김연아는 또 다른 성격의 눈물이었다.)

< '어느 눈물이라서 짜지 않으랴' 2012년 런던올림픽 때의 박태환과 펜싱 신아람, 2014년 소치올림픽 때의 피겨 김연아. (왼쪽부터, 자료사진=뉴시스, 중계화면, NBC 캡처) >

사실 한국 최고의 수영 스타 박태환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 다소 부정적인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런던올림픽 이후 대기업의 후원이 끊겨야 했던 상황과 이후 수학 스타 강사가 후원자로 나서기까지 과정 등이다. 수억 원대의 차량을 모는 등 씀씀이가 적지 않았던 박태환이 수십억 원대 후원을 받다가 1년 5억 원으로 줄어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뒤 찾아온 슬럼프의 원인도 대체로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은 2회 연속 3관왕의 명성과 영광을 잇지는 못했다. 단 한 종목도 왕좌를 수성하지 못한 채 '노 골드'로 대회를 마감했다. 20대 중반, 전성기를 지난 점을 감안하면 세월의 무게를 인정해야 했다. 은메달 1개와 동 5개 등 총 6개의 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로 전 종목을 통틀어 아시안게임 최다 메달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데 만족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터진 약물 스캔들은 그마저도 앗아갈 가능성이 적잖다. 인천아시안게임 직전 받은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된 까닭에 메달이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의 메달에는 계영 종목도 있어 박태환 개인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몫까지 뺏길 수 있다.

< 박태환, 박선관, 최규웅, 장규철 등 혼계영 400m 대표팀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

일각에서는 박태환이 정말 모르고 금지약물을 투여했겠느냐는 의혹어린 시선도 적잖다. 워낙 어릴 때부터 국제대회에 출전해 도핑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 잡힌 박태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태환이 '네비도'라는 주사제를 한번 이상 맞았고 약물의 효과가 유효한 기간에 기록이 좋았다는 정황을 담은 기사도 여럿 나왔다.

박태환이 FINA로부터 도핑 적발을 통보받고도 대회에 출전했다는 점, 또 시간이 적잖게 흐른 시점에서 검찰에 해당 병원을 고소했다는 점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다. 박태환이 직접 해명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때문에 깨끗하게 박태환이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다소 강한 의견도 나온다.

런던올림픽 출장에서 복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묵직한 우편물이 왔다. 열어 보니 감사패였다. 현지에서 취재했던 기자들에게 박태환의 매니지먼트 회사 팀GMP에서 보낸 것이었다. 감사패에 적힌 보낸 사람의 이름은 박태환이었지만 아마도 팀GMP를 운영하는 아버지 박인호 씨가 준비한 것이었을 테다.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 더군다나 나는 수영 담당 기자도 아니었다. 그저2008년 영광의 순간, 2012년 억울했던 현장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낸 감사패였다.

거기에는 '한국 수영100년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도록 국민의 염원을 담아준 시사와 조언은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게 하는 응원군이었다'면서 '런던과 베이징에서 대한민국 수영 역사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도록 동반자가 돼 주셔서 감사한다'는 내용과 함께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의 이름과 사인이 담겼다.

이제 어쩌면 박태환이 한국 수영 역사에 혹시라도 불행하게 남을지도 모를 순간을 기사로 써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때 '대한민국의 심장'으로 뛰었던 그의 피에 허락되지 않은 성분이, 금지됐어야 할 약물이 섞여 흘렀던 시간을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수영 역사에 아름다운 꽃이었던 그가 씁쓸하게 져야 하는 상황을 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박태환이 한국 수영, 아니 대한민국 스포츠에, 국민에게 줬던 감동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내가 감사패를 줘도 모자랄 것이다. 여기에 런던의 시련 속에 흘린 눈물까지 더하면 선뜻 내 의견에 동참할 사람들도 여럿 될 것이다.

< '자랑스러운 박태환으로 남기를' 박태환이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 종합대회 금메달이 될지도 모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

하지만 그의 값진 눈물에 저주받을 약물이 섞여 버리게 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그동안 역사적 역영의 순간들이 자꾸 오염되는 것만 같은 느낌은 마치 내 핏속에 금지약물이 떠도는 것처럼 불안하고 불길하기만 하다.

물론 한때 박태환의 몸속에 있던 테스토스테론은 일반인들이라면 하등의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태환이 스포츠 선수인 게 문제다. 온전히 자신 몸 속의 피와 세포, 근육이 빚는 힘으로만 경쟁해야 하는, 외부의 요인이 개입될 수 없는 운동선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금지약물 사건은 박태환의 선수 인생에 있어 런던올림픽 예선 때의 오심처럼 끼어든 불의의 변수와도 같을 것이다. 그때처럼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도핑 적발이2012년처럼 오심으로 판명이 나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2번의 도핑 테스트에도 결과는 같았고, 이제 징계에 대비해야 한다. 어서 청문회 일정이 다시 잡혀 박태환이 후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고의든, 아니었든 뭐가 빨리 정해져 답답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기를 바란다. 가장 간절히 희망하는 것은 나중 박태환이 받을 감사패에는 약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눈물, 그 자체만이 떨궈져 흐를 미래의 어느 한 순간이다.

글=임종률 CBS노컷뉴스 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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