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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지친 권혁의 직구 승부에 대하여

조회수 2015. 8. 25. 11: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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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고맙다. 날씨만큼이나 따끈따끈한 중위권 싸움 말이다. 당사자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덕분에 '야구 고픈줄' 모르고 지낸다. 특히나 지난 주말 광주 2연전이 그랬다. 올 매치업 중에 그렇게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또 있었던가. 포털 사이트의 클릭수와 TV 시청률은 아마 웬만한 포스트시즌을 훌쩍 웃돌았으리라. 독실한 무한재석교 신자인 < …구라다 > 조차 '영동 고속도로 가요제'를 뒷전으로 물렸으니.

물론 광주 시리즈는 실수도 꽤 있었다. 고성이 오가고, 험한 장면도 나왔다. 하지만 가장 돋보인 것은 승부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그라운드에 떨어진 그들의 굵은 땀방울은 웬만한 허물을 덮고도 남았다. 새콤, 달콤, 쌉싸름한 맛을 승부에 담아낸 두 팀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토요일(22일)은 압도적인 투수전이었다. 반면 일요일(23일)은 피 말리는 접전이었다. 도망가면 따라가고, 뒤집으면 뒤집히고. 엎치락뒤치락은 중반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7회말. 홈 팀이 4점을 뽑아 승부를 정리했다. 그 대목 - 과연 팽팽한 줄은 왜 끊어졌나. 불꽃 사나이는 왜 또 무너졌는가. 잘못 던진 것인가, 잘 친 것인가. 그 얘기를 하려 한다.

적시타, 볼배합의 실패인가

윤규진의 공백으로 배영수가 새로운 필승조로 캐스팅 됐다. 하지만 그는 7회 이범호에게 일격을 당했다. 4-4의 균형이 깨졌다. 문제는 계속됐다. 다음 타자 김다원에게도 밀렸다. 우전안타. 이글스는 '더 이상은 안된다'며 마지막 카드를 뽑았다. 권혁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는 이 위기를 막지 못했다.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1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거기서 19살짜리 대타 황대인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았다. 사실상 승부는 그걸로 끝이었다.

비판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 타이밍에, 그 볼배합이 적절했냐는 반론이다. 당시 볼카운트는 1-2였다. 투수가 유리했다. 여기서 146㎞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약간 낮은 쪽으로 들어갔다. 황대인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벤치의 주문이 있었어요. 몸쪽 빠른 볼만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노림수에 걸렸다는 말이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타이거즈 벤치는 왜 몸쪽 빠른 볼 하나만 대비하라고 했을까. 그 답은 너무나 뻔하다. 권혁은 올라와서 그 공만 던졌기 때문이다. 백용환-박준태-김호령과 상대해 13개를 던졌다. 그 중 12개가 몸쪽(또는 몸쪽을 노리고 던진) 빠른 볼이었다. 단 1개 예외는 좌타자 박준태에게 던진 슬라이더(134㎞ 바깥쪽)였다. 빗맞은 유격수 땅볼이 됐다. 그걸 제외하고는 우타자에게는 모두 같은 구질이었다.황대인에게도 그랬다.① 143㎞ 몸쪽 직구-볼 ② 144㎞ 몸쪽 직구-파울 ③ 144㎞ 몸쪽 직구-파울.그리고 4구째가 문제의 공이었다.

일반론을 적용하면 이건 볼배합의 완벽한 실패다. 못마땅한 팬들이 많다. 비판론자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가뜩이나 몰린 타자에게 계속 빠른 공이라니. 무슨 100마일짜리 투수도 아니고, 아집과 오기의 결과일 뿐이다. 지난 번에 포항(라이온즈전)에서도 비슷했다. 주구장창(폼나는 말은 주야장천) 직구만 던지다가 경기를 그르쳤다.

권혁의 변화구를 노리는 타자는 없다

그들의 말은 결과론일 뿐이라고? 아니다. 결과론도 필요하다. 실패를 재구성하면 문제점이 명확해진다. 거기서 해답이 생긴다. 그러니까 '결과론'이라는 허울로 비판론을 반박해서는 안된다.

확률적으로, 통계적으로, 일반적으로 그 주장은 맞다. 유인구 하나쯤 깔아놓으면 더 효과적인 승부가 됐을 거다. 생각해 보시라. 투수의 카운트다. 타자는 몰렸다. 다음 공은 빠를 지, 떨어질 지 헷갈린다. 변화구 하나를 보여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그럼 속구의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일반론이다. 그건 모두가 안다. 권혁도 알고, 조인성도 알고, 황대인도 알고, 양쪽 벤치도 안다. 그런데도 선택은 또다시 빠른 볼이었다. 이 지점을 공감하려면 일반론만으로는 어렵다. 특수한 요소 하나를 대입해야 한다. 그 요소 하나는 바로 그의 직책이다. 마무리 투수 말이다. 일본에서는 그걸 수호신(守護神)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클로저(Closer)라고 한다. 마지막을 감당해야 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극한 직업이다.

물론 효율도 필요하다. 요령도 있어야 한다. 마무리라고 모두 강속구만 던지지는 않는다. 떨어트리기도 하고, 휘어지게도 한다. 하지만 유인하고,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마지막에 다다르는 점은 원초적인 지점이다. 상대를 힘으로 이겨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걸 해야 하는 게 그의 자리다. 특히나 그의 스타일이 그렇다. 요즘만이 아니다. 늘 그랬다. 변화구로 현혹하는 건 애초부터 그의 타입이 아니다. 힘 대 힘으로 맞붙어야 '권혁'이다. 그런 불꽃 같은 방식은 팬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로 남았다.

도전의 과정이야말로 중요한 가치다

하긴 그렇다. 요즘 들어 부쩍 힘이 떨어졌다. 잦은 등판에 지친 탓이리라.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도 예전만 못하다. 파고드는 날카로움도 덜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방식이 변하는 건 달갑지 않다. 왜? 어쩌면 낭만적인 이유 때문이다.물론 승부의 세계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최선책을 찾는 게 프로의 자세다. 하지만 < …구라다 > 는 믿는다. 이기고 지는 것 말고 즐겨야 할 게 더 있다고.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프로야구도 '스포츠'이기 때문이다.그는 13년간 한번도 특급이었던 적이 없다. 그의 팀도 마찬가지다. 줄곧 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들은 올해 특별했다. 눌려 있던 한계를 벗어났다. 늘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신드롬의 아이콘 같은 존재가 그였다.

어쩌면 결말이 실패일 지 모른다. 여름 들어 더 휘청거린다. 그도 그렇고, 그의 팀도 그렇다. 이제는 지쳐서 힘이 빠진 직구가 치명타를 허용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해가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고비에서도 주저 없이 빠른 공으로 붙는다. 미련한 건가? 바보 같은가? 아니다. 적어도 그건 비판의 대상이 되면 안된다.말했다시피 그도 그렇고, 그의 팀도 그렇다. 바닥을 딛고, 어렵게 일어서는 중이다. 그 결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도달하는 과정 자체도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몸쪽에는 늘 위험이 도사린다. 그렇기에 가장 강한 볼을 던져야 한다. 이번에 맞으면 다음에도 또다시 붙여야 한다. 더 깊은 곳으로, 더 강한 공으로.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그게 그와 그의 팀이 올해 팬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그래서 공감한다. 그리고 지지한다. 그의 직구 승부를.

[참고영상]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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