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권향의 여우사이] 애증의 정의윤-임훈을 떠나보내던 날

조회수 2015. 7. 25. 13: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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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유망주' 이젠 안녕.. 안녕!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4일. 야구팬들에게는 '혼란의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날 LG와 SK는 깜짝 3:3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LG는 외야수 정의윤을 포함해 투수 신재웅과 신동훈을, SK는 외야수 임훈과 함께 투수 진해수와 여건욱 카드를 꺼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정의윤과 임훈은 양 팀 팬들에게 있어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한 대 콕 쥐어박고 싶다가도 감싸 안아야 하는 선수였습니다. 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기 때문입니다.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리를 지켜왔습니다.

SK의 모 선수는 임훈에 대해 "외야수로서 최고예요. 1루 수비까지 가능해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죠. 하지만 SK에서 (임)훈이의 자리는 위태로워요. 다른 팀에 간다면 바로 주전일텐데..."라며 아쉬운 마음을 털어놨었습니다,

LG 역시 답답한 심정을 공유했습니다. LG의 모선수는 "(정)의윤이는 팀에서 4번 타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예요. 가끔 위축돼 축 쳐진 어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잘 할 수 있는 선수인데 말이죠"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SK와 LG가 24일 깜짝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양 팀 모두 선택한 카드는 외야수 한 명과 투수 두 명이었습니다. 이번 트레이드에 포함된 임훈과 정의윤(왼쪽부터)은 팬들에게 있어 '애증'의 이름이었습니다. 팬들의 이들의 깜작스런 이적에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사진=표권향 기자>

지키지 못한 약속, 그저 미안한 마음

지난 6월 25일 이천에서 퓨처스리그 두산전을 마치고 원정버스에 올라타던 정의윤을 만났습니다. 인사조차 눈치를 보던 그는 죄인과도 같았기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정의윤은 지난해 "이제 유망주라는 말은 들으면 안 될 나이에요.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팬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 해요"라며 "팬들의 지속적인 응원에 힘이 나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정의윤은 올 시즌 89경기 가운데 32차례 출전에 그쳤습니다. 타율 0.258였으며 홈런포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2군에서 전전하는 동안 점점 더 고개를 숙였습니다.

1군에 있는 시간보다 땡볕 아래의 2군 그라운드에 서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최악의 선택까지 고민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임훈은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구단에서 저를 선택했어요. 저는 팀을 위해 싸워야 해요. 물론 잘 해야 기회도 주어지겠죠"라면서 "기다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스스로 잘 준비해서 그라운드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임훈은 올 시즌 두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 번째는 규정타석을 채우는 것, 두 번째는 도루 20개 이상 성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3경기에 나가 81타석에서 타율 0.217을 기록했고 도루 한 개에 그쳤습니다.

<24일 LG를 떠나 SK로 둥지를 튼 정의윤과 신동훈, 신재웅(왼쪽부터)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LG팬들은 탈LG 효과를 기대하며 이들의 미래를 응원했습니다. 사진=MK스포츠 김영구 기자 제공>

과거는 과거일 뿐

두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었습니다. 보통 선수들은 트레이드 소식을 들으면 1톤짜리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 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팀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상대팀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듯 트레이드는 선수들에게 실망과 기대가 공존하는 단어입니다.

트레이드 직후 정의윤과 임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트레이드가 발표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임훈이었습니다. 그의 소식을 접한 기자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이었습니다.

임훈의 수화기 속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워낙 밝은 성격의 임훈이었기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날씨 탓이었는지 다소 잠겨있었습니다.

임훈의 첫 마디는 "나 원래 서울 사람이에요"였습니다. 임훈이 인천 출신이라고 잠시 착각한 기자의 기억을 고쳐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임훈은 서울 수유초-신일중-신일고를 거쳐 2004년 SK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한 마디씩 풀어냈습니다. 임훈은 "오늘 경기는 우천취소되서 내일 서울에 가요", "괜찮아요. 어차피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등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어갔습니다.

임훈과의 대화 중에 "딱 작년처럼만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임훈은 2014시즌 90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4 27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달성했습니다. 깎였던 연봉도 다시 1억원대(1억500만원)로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가서 잘 할 거예요. 많이 응원해주세요"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각오의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정의윤은 "고마워요"라고 짧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바뀐 것을 알아봤습니다.

기자가 메시지를 보낼 때는 '이 또한 지나가리오'란 글귀가 적힌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답장이 왔을 땐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말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루가 축복이구나. 외롭지 않구나. 행복하구나. 든든하구나. 소중하구나. 의미 있구나.'

정의윤의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동료들과 지인들이 끊임없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팬들이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떠나는 그의 여정에 행운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기쁜 날보다 슬픈 날 함께 해준 의리가 정의윤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의윤과 임훈(왼쪽부터)에게 10년 동안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팬들이 이번 이별에서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사진=OSEN 제공>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 혹은 다시 만남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드. 당장은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당신의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핀 봄을 맞으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활기찬 미래를 향해 달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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