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김] 브렛필의 '필'굿 스토리

조회수 2015. 4. 16. 02: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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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프로야구 선수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극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불안정한 미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곧장 실업자가 된다. 선수 본인에게도 힘들지만 그들의 곁을 지키는 가족들 또한 항상 초조함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와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운 켈리 필씨는 그 누구보다 프로야구 선수의 삶을 잘 알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의 아내로 20대를 보낸 켈리는 이제 두 프로야구 선수의 엄마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삶의 대부분을 야구하는 남자들 속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첫 번째 아들 브렛은 현재 KIA 타이거즈에서 뛰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잠시 뛰었던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브렛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장남을 먼 한국으로 떠나 보낸 켈리씨의 이야기와 브렛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

대니얼 김: 시차가 있다 보니 경기를 챙겨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켈리 필: 새벽 경기는 힘들지만, 최대한으로 많은 경기를 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주말엔 남편과 함께 경기를 보곤 한다. 컴퓨터를 TV와 연결해선 보곤 했는데 올해는 컴퓨터로 보고 있다.

대니얼 김: 브렛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그리고 어떻게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켈리 필: 남편이 프로 야구선수 출신이다 보니 상당히 어린 나이에 야구를 접했다. 만으로 5살 때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야구가 전부가 아니었다. 농구도 했고 축구도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브렛이 많은 스포츠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키가 크고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남편이 브렛을 직접 지도했지만, 그냥 재미로 시작한 야구였다. 처음엔 1루수로 뛰었는데 7살이 되면서부터는 투수와 유격수를 오가면서 활약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재능이 보였다. 비슷한 또래 친구들보다 빠르게 야구를 배웠다. 한 가지를 가르치면 습득력이 좋았다. 남편이 브렛에게 기본기를 전수했다. 볼 카운트 상황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부분부터 팀을 위해서 때론 어떻게 스윙을 해야 하는지까지… 남편은 브렛에게 기본기를 전수했다.

< 리틀리거 브렛 필. 사진제공/ 켈리 필 >

브렛은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홈런을 많이 치지는 못했다. 홈런 대신 2루타가 상당히 많았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항상 생각하는 야구를 했다. 경기 상황과 흐름을 먼저 생각하고 준비하는 선수였다. 야구를 무척 좋아해서 남편과 브렛은 함께 있으면 야구 이야기만 했다. (웃음) 그러다 둘째 아들까지 야구를 시작하면서 세 남자는 모이기만 하면 야구 이야기만 했다.

그러던 중 브렛이 고등학교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약했다. 마운드에 오르지 않을 때는 유격수로 뛰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Cal State Fullerton)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시받았는데 당시 그는 투수였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포지션을 1루수로 변경했다. 물론 당시 감독이 내린 결정이었다.

< 사진제공/ 켈리 필 >

대니얼 김: 브렛의 아버지는 어떤 선수였는지 궁금하다.

브렛의 아버지는 1977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라운드에 지명되었다. 팀은 피츠버그 파이레이츠였다.

대니얼 김: 상당히 높은 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켈리 필: 포지션은 투수였는데 타격도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등판 수가 많았다. 곧장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하려고 하던 중 갑자기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남편은 야구를 포기하고 시아버님의 사업을 이어가야 했다.

대니얼 김: 언제부터 브렛이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켈리 필: 잘 모르겠다. 남편이 직접 브렛을 중학교 때까지 지도했다. 주위에서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지도하는 다른 부모들의 모습을 종종 보고는 했다.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브렛은 야구를 사랑했고 그게 전부였다. 고등학교 다니고 있을 때도 우리는 응원만 열심히 했다. 대학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브렛의 꿈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야구선수로 뛰는 것이었다. 그런던 중 그가 바라던 데로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장학금을 제시받았고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대학 진학하면서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1학년 때는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고 2학년 때는 대타로만 활약했다.

그가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라지도 않았다. 모든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의 꿈은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 아닌가? 브렛도 분명히 그런 꿈을 갖고 있었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열심히 그를 응원했고 모든 것은 브렛의 선택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브렛이 7차 라운드에 지명되었다.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그리고 얼마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렸다. 남편과 나는 브렛의 목표를 존중해주었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그를 열심히 응원해준 것이 전부였다.

드래프트가 되기 전까지 브렛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니얼 김: 프로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는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켈리 필: 메이저리그로 콜업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과 나는 곧장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경기에 뛰지는 못했다. 그리고 팀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원정을 떠났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이다. 센디에이고 원정 첫 경기가 끝나자마자 브루스 보치 감독이 브렛을 찾았다고 한다. 보치 감독은 브렛에게 다음날 경기 선발 투입할 테니 일찍 푹 자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첫 선발 출장 통보였다. 남편은 브렛에게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경기 티켓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브렛이 가족들 티켓 준비하느라 신경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직접 구장에서 구매했다. 다행히 좋은 티켓을 찾을 수 있었고 그의 첫 선발 출장을 지켜봤다.

막상 경기장에 도착하니 너무 떨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브렛이 첫 타석에 들어서더니 홈런을 기록했다. 너무나 기쁜 순간이었다. 그러더니 그 다음 날 경기에서도 홈런을 기록했다. 미칠 정도로 행복했던 48시간이었다.

< KIA의 중심 타선은 나한테 맡겨! 사진/ OSEN >

대니얼 김: 브렛이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실망하지는 않았나?

켈리 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트리플A 팀은 프레즈노에 있다. 우리 집에서 3시간 거리이다. 항상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주 좋았다. 브렛은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를 오가는 생활을 2년 동안 했다. 결코 쉬운 패턴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확실히 잡지 못하면서 본인도 상당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는 매일 뛰어야 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트리플A에서 선발 1루수로 활약했지만,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백업 선수였고 출장 기회도 많지 않았다. 브렛은 KIA와의 계약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고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브렛의 결정을 존중했다.

대니얼 김: 엄마가 보는 브렛의 성격은 어떤가?

켈리 필: 침착한 편이다. 섣부르게 결정을 내리거나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개막전 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고 헬멧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워낙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너무 좋아하는 브렛의 그런 모습 처음이었다. 브렛은 본인의 홈런보다는 팀이 이겨서 좋아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한다. 지금까지 브렛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부분은 내가 장담한다. 내가 그의 엄마이기 때문에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지만, 브렛은 매너있고 착하다. 나는 야구 성적보다 브렛의 그런 부분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정말 어렸을 때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성격이 차분한 편이었다. 대학 시절 칼리지 월드시리즈 우승했을 때 정말 기뻐했던 모습이 기억나지만 대부분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다. 타석에서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화려한 면도 없고 조용하다. (웃음) 그냥 그 상황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전부이다. 솔직히 개막전 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 기록하고 헬멋을 벗어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와 남편은 깜짝 놀랐었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행복했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보다 부모가 더 바랄게 뭐가 있는가?

대니얼 김: 2014년 시즌을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브렛이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켈리 필: 한국에서의 삶을 정말 좋아했고 만족해했다. 나도 3주 동안 방문했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브렛이 한국을 좋아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아내도 한국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며느리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예쁜 딸을 출산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언어가 장벽이지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한국이 안전하고 편하다고 한다. 작년 시즌 광주에서 사용했던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새롭게 부임한 김기태 감독과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한다. 김 감독님이 영어를 잘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브렛이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2014년 시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부상이었다고 했다.

우리의 첫 손녀가 아주 먼 한국에서 태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아들 둘 만 키워서 그런지 손녀딸이라 아주 기뻤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한국에서 용감하게 건강한 손녀딸을 출산한 며느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마이너리그 시절 때 부터 브렛의 옆을 지켜준 며느리가 매우 고맙다. 나는 아들만큼 며느리를 사랑한다.

대니얼 김: 올 시즌도 한국에 방문할 예정인가?

켈리 필: 물론이다. 이번엔 남편과 함께 방문할 예정이다. 남편이 한국에서 뛰는 브렛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한다.

대니얼 김: KIA 타이거즈 팬들이 브렛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켈리 필: 브렛 또한 기아 팬들을 사랑하고 있다.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고 있고 팬들의 열정과 성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엄마로서 감사하는 말 꼭 전하고 싶다. 브렛을 성원해주시고 우리 전 가족을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기아 팬들이 있어서 나는 더 이상 그의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냥 함께 응원만 한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고 있는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danielkimw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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