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촌스러운 승엽 삼촌의 달리기

조회수 2015. 8. 31. 15:21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류중일 감독은 경기 후 이렇게 얘기했다.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게임이었다. 투수진이 일찍 무너져 어려웠는데 타자들이 포기하지 않았다. 용케 집중력을 발휘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나 3회 이승엽이 2점차로 추격하는 3점 홈런을 친 게 굉장히 중요했다."

한 매체가 기막힌 제목을 달았다. '왜 삼성~ 삼성~ 하나 했더니'. 그래 맞다. 그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1-9가 15-9로 변했다. 말도 안된다. 8점차 열세를 뒤집는데, 단 2이닝이면 충분했다. 엄청나게 점수가 났으니 잘한 타자도 수두룩이다. 그중에서도 감독은 36번의 홈런을 꼽았다. 왜 아니겠나. 7-9를 만들며 순식간에 턱 밑까지 쫓아갔으니 말이다.

그 얘기, 틀린 것 없다. 하지만 부족하다. 주소지가 '전설로 36번지'인 그 타자가 어제(30일) 그 경기에서 무슨 일을 했는 지. 그 활약상은 좀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서 본래 전공인 멀리치기 말고, 또 하나를 언급해야 한다. 바로 달리기다. 그래서 <…구라다>가 하나 더 보탠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떼기 위해

홈 팀의 두번째 빅이닝은 4회였다. 2사 후 연속 안타가 봇물처럼 터졌다. 만루. 여기서 박한이가 중전 적시타를 쳤다. 투아웃인데다, 타구가 꽤 굴렀다. 2타점이 충분했다. 하지만 2루 주자가 박석민이었다. 부상을 안고 뛰는 그에게 홈까지 질주는 무리였다. 10-9가 되고 다시 만루. 점수는 얻었지만 뭔가 막힌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다음 타자는 이지영이다. 또 안타가 터졌다. 이번에는 우익수 쪽이었다. 2사후였지만 2루 주자의 홈 승부는 어려워 보였다.

이유는 이렇다.

①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낮고, 강했다. ② 우익수는 2점째를 막기 위해 앞쪽으로 나와 있었다. ③ 수비수가 나름 한 어깨 하는 이진영이었다.

'또 한 번 막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찰라였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2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별로 빠르지도 않은 36번인데 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성실함이다. 무슨 얘기냐. 2루에서 그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좋은 스타트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다. ① 가급적 최대한 리드폭을 잡았다. ② 투수가 던질 때마다 껑충껑충 뛰는 스킵 동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③ 한 발짝이라도 먼저 떼기 위해 타구에 대한 집중력을 최고조로 유지했다.

그런 거 다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기본이다. 야구 처음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 다 배운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 모두 그러지는 않는다. 날도 덥고, 힘도 들고, 그 정도 연차에. 그러는 선수 별로 없다. 어차피 한두점 승부도 아닌 것 같은데 뭘….

3점 홈런보다 큰 울림 '전력질주'

그는 어제 촌스러운 패션으로 출근했다. 가뜩이나 옛날 유니폼을 입는 날인데, 스타킹까지 올려신었다. 나이 먹을수록 외모에 신경 써야 하는데 걱정이다. "팀이 연패하니까 기분도 그렇고 해서…." 스스로 밝힌 이유다.사실 요즘 개인적으로는 아쉬울 이유가 전혀 없다. 벌써 18경기째 연속안타 중이다(개인 최다 2012년 20게임). 타율은 이제 수위타자를 다퉈도 될만큼 치솟았다. 홈런도 심심치 않게 뽑아낸다. 이렇게 잘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팀은 조금 급하게 됐다. 한때는 여유 있는 선두였지만, 지금은 2위 팀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남은 게임수를 감안하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그래서 2연패 밖에 안되는 데 제법 신경 쓰이는 눈치다.물론 그는 전설이다. 타석에서야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요즘은 늦바람(?)이 났다. 베이스 위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비단 어제 경기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승부처의 주자만 되면 호시탐탐이다. 투구 하나하나에 죄다 스타트를 끊는다. 뛰는 척하다 돌아가고, 뛰는 척하다 또 돌아가고. 여간 피곤한 게 아닐텐데, 그러고 있다.본래 그런 건 박해민이나, 구자욱 같은 애들이나(?) 하는 일이다. 상대 배터리 괴롭히려고 말이다. 그걸 발도 느린 40대 아저씨가 그러고 있다. 올해 겨우 도루 2개 밖에 없는 주제에. 폼도 안나고, 모양도 빠지게시리.류 감독의 말이 맞다. 어제 3점 홈런은 컸다. 하지만 <…구라다>는 2루에서 홈까지 온 힘을 쥐어짜며 내달린 그 전력질주에 더 큰 울림을 얻었다.겨우 한 점이었다. 11-9가 12-9로 변했을 뿐이다. 하지만 촌스러운 패션에, 오만상을 찌푸린 '승엽 삼촌'(관중석의 플래카드에 적혔던)의 그 달리기 하나는 그의 팀원들과 팬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바로 얼마전 허벅지 부상으로 열흘이나 쉬어야 했던 주자였기에 더 그렇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