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베이스볼토크]삼성 4연패의 숨은 조연 김헌곤, "홈 플레이트 빈틈이 '여기'라고 손짓"

조회수 2014. 11. 13. 14: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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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넥센을 11-1로 따돌리고 챔피언에 등극했다.2011년 이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 첫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 할 수 있었던 건 누구 한 사람으로 가능했던 건 절대 아니다. 톱타자 겸 2루수로 이번 시리즈에서 4개의 홈런을 몰아친 나바로. 토종 에이스의 진면목을 보여준 '황태자' 윤성환. 캡틴의 진정한 존재감을 발산한 최형우. 영원한 '파란 피' 박한이, 부상 투혼으로 선배들의 승부의지를 자극한 박해민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냈기에 가능했다.김헌곤(26.외야수)도 그 중 하나다. 비록 이번 시리즈에서 타격은 14타수 1안타 7푼7리로 저조했지만 중요한 고비에서 빛나는 수비와 주루플레이로 빛나는 조연 역할로 4연패의 신화에 힘을 보탰다.

김헌곤과 인터뷰 약속을 했던 건 경기 종료 직후. 그러나 12일 저녁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우승 기념 축승회의 후유증(?)으로 극도의 피곤함과 숙취에 시달리다 겨우 살아났다며 그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이하 인터뷰 전문)

-대구엔 언제 도착했나?

"서울에서 오후 2시에 출발했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셔 본 게 처음이었다. 해냈다는 기쁨에 취해 주는 술을 죄다 받아 마셨다. 자려 하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미치겠더라. 술이 이렇구나 싶더라.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속이 부대껴 혼났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대학 신입생 환영식 때 이후 처음으로 많이 마셨다. 그렇게 다양한 술을 한꺼번에 마셔 본 것도 처음이다(웃음). 우승을 했다는 감격에 처음엔 기분 좋게 마셨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더라. 조절을 했어야 했는데(웃음) 천국에서 한 순간 지옥을 경험했다(웃음). 집에 도착했더니 어머니께서 쌀을 갈아 주셨다. 이제 겨우 속이 풀리는 것 같다."

-선수와 음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심도 있게 하긴 처음이다(웃음). 우승이라는 특별함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기분이 어떤가?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래 우승은 처음이다. 지난 3년 간 TV로 우리 팀의 우승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나도 저 자리에 있으면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그 현장에 있었고 그 순간을 경험했다니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만 같다. 너무 기쁘고 뿌듯하다."

-게임 중간 중간 주변을 둘러보며 즐기는 것 같았다. 떨리진 않았나?

"그 순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은 마음 일뿐이고 엄청 떨렸다. 하지만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선배님들이나 형들이 잘 해줄 거라 믿었다. 내가 뭔가 잘해서 일을 내겠다 그런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우리 팀이 무조건 이기는 게 목표였다. 사실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출전자 명단 발표 이후 김한수 코치님께서 '넌 안정권이었다. 뭘 그리 걱정 했냐' 고 웃으시더라. 굳이 그런 말씀해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웃음). 내겐 큰 힘이 됐다. 잘 하지도 못하는데 코치님들이 예쁘게 봐주시고 잘 챙겨 주신다. 정말 감사드린다. 게임을 뛰진 않아도 그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게 큰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 선발 출장까지 하고 이래저래 운이 좋았다."(5월 중순부터 쭉 1군에 머물었던 김헌곤은 76경기 출전 123타수 32안타 3홈런 20타점 타율 2할 6푼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날 상무 테스트에 참가하는 등 남보다 더 분주했다. 테스트는 잘 치렀나?

"정말 그 날(4일) 피곤해 죽는 줄 알았다(웃음) 새벽에 일어나 문경 가서 오후 2시까지 테스트 보고 다시 대구로 왔다. 야구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팀 훈련이 끝난 뒤더라. 오면서 상대 선발 투수가 벤 헤켄이라 혹시 선발 출장 하지 않나 내심 기대했는데 아니었다(웃음). 작년에 이미 한 번 테스트에 참가했던 터라 패턴을 알고 있어서 그리 어렵진 않았다. 팀 훈련을 하면서 컨디션 조절도 잘 된 상태였고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잊을 수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했다." (1차전에서 김헌곤은 9회 채태인 대주자로 잠깐 출전했다.)

-잊지 못할 순간은 5차전이 아닌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홈으로 뛰어 들어와 경기가 뒤집어졌다.

"역시 캡틴은 캡틴이었다. 최형우 선배님의 타구가 1루 선상을 빠져나가는 순간 연장까지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3루에 들어서는 찰라 김재걸 코치님이 팔을 힘차게 휘두르시는 모습을 보았다. 가도 되나 하는 순간 멈칫하다가 내달렸는데 하얀 홈 플레이가 살짝 보이더라. 원래 포수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 그 날은 마치 '여기에요 여기! '라며 내 손이 닿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정말 최고였다. 사실 한 방으로 경기가 뒤집히는 것도 짜릿하지만 그런 아슬아슬한 과정으로 이긴다는 것이 흔치 않을 일 아닌가? 앞으로 야구를 하면서 이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있을까 싶다."

-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때 앞에 서 있던 이승엽 선수가 코스를 일러준 건 아니었나? 그런 것 같이 보였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박동원 옆의 살짝 보인 홈 플레이트만 눈에 들어왔을 뿐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터치를 하고 세이프가 선언 된 순간에야 팔을 벌리고 있던 이승엽 선배님이 보였다. 원래 그런 상황이 되면 '와~'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선배님은 나를 끌어안으며 '어 어' 하시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시더라. (최)형우 형이 있던 2루 쪽으로 뛰어가면서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 한순간에 긴장감이 풀려선지 팔이 떨리고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정도의 경련까지 나더라. 버스에 탔을 땐 마치 마라톤 완주를 한 것처럼 온 몸의 에너지가 완전 방전된 느낌이었다."

-류중일 감독이 과감히 채태인을 빼고 대주자로 기용을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했다. 만약 아웃이 됐다면 연장 승부까지 갈 수 도 있었는데

"9회말 투아웃에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다. 그 중심에 나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그런데 그 날 너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선지 밤에 목이 아프고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6차전 내내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7차전까지는 갈 수 없다는 각오로 버텼다."

-6차전에서도 4타수 무안타였고 총 14타수 1안타. 이번 시리즈에서 안타는 3차전 좌전 2루타 한 개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두 팀 모두 타선이 터지지 않았기도 했지만 본인도 부진했다.

"솔직히 리그 최고의 홈런왕 박병호. 강정호 선수도 1할 대 타율에 머물지 않았나? 내가 타격에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 또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내가 아니라도 해 줄 수 있는 선배님들이 많다 생각하고 난 내게 주어진 수비나 주자 플레이에 집중하고자 했다. 사실 내가 정형식이나 박찬도보다도 발이 더 빠르다. 100m 기록도 앞선다. 그런데 그동안 주변에서 그걸 믿어주시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오해가 어느 정도는 풀리지 않았을까 싶다."

-6차전 1회 수비에서 서건창의 까다로운 타구를 잘 잡아냈다. 이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만약 놓쳤다면 전체 흐름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려운 타구는 아니었다. 목동이나 대구 보다는 넓은 잠실이 수비하기는 훨씬 수월하다. 솔직히 내가 지명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비 때문이다. 어느 자리든 편하고 자신 있다. 그런데 많은 게임에 나서지 않아서 인지 아직 부족하다 여기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박)해민이가 갑자기 다치고 난 뒤 그 자리를 내가 메운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도 꽤 계신 것 같다.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는데 욕먹지 않고 무난하게 넘어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지난해 이맘 때 쯤을 떠올리면 인생 역전을 이룬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상무 테스트를 보지 않았나?

(2012시즌을 앞두고 연습경기 도중 파울 타구를 치다 손목을 다쳐 2시즌 동안 재활군을 오락가락하다 결국 작년 말 시즌 종료 후 수술대에 올랐고 구단권유로 상무에 지원했으나 불합격 된 바 있다.)

"1년 전이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정말 최악이었다. 입단 한 지 3년 차고 나이는 찼고 뭔가를 해놔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군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상무에 입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순간을 만끽 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전화위복이 됐다. 많은 선배님들이 한국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끼워 보지 못하고 은퇴를 하셨다고 한다. 내가 언제 또 한국시리즈 반지를 끼워 보겠는가?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상무에 합격하면 당분간 팀을 떠나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좋은 추억을 갖고 떠날 수 있어 아쉬움 보다는 속이 후련하다. 삼성 입단 후 3년 내내 팀이 우승하는 모습을 TV로만 보면서 언제쯤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고 떠날 수 있어 행복하다. 6차전 9회말 투아웃 이후 관중석을 한 번 쭉 돌아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파란 응원도구가 넘실거리고 관중들의 함성까지 가슴이 벅찼다. 그 자리에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고(웃음) 야구를 시작한 이후 힘들었던 고비. 삼성의 지명을 받고 좋아했던 순간,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던 날들 그 모든 것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곤아 그래도 나름 잘 버텨 여기까지 왔구나' 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잠실 외야에서 나름 영화 한 장면 찍었다(웃음)"

- 내년 시즌의 목표가 궁금하다. 너무 이른 질문인가?

"아직 합격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발표 전날 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만약 합격 된다면 이번에 함께 테스트에 참가한 (권)희동이에게 타격 전반에 걸친 여러가지를 배우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방망이 만큼 배울점이 많은 타자다. 팀을 떠나 있는 동안 내 기량을 더 키워 다시 한 번 챔피언 반지를 챙길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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