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아.. 착한 요기' 조용한 후배, 뢰브 감독을 만나다

풋볼리스트 2014. 4. 1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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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후배로 만난 뢰브는 이제 독일 대표팀 감독이다

'요아힘 뢰브'는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이름이다.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두번째 시즌을 시작할 때, 부흐만 감독의 눈에 띄어 슈트트가르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스카우트 되어 온 이 스무 살 짜리 유망주를, 우리는 '아힘'이라고 불렀다.원래 이름이 '요아힘 뢰브'인 그가 독일대표팀 감독이 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는 '요기'가 되었다.

당시 스무살 짜리 아힘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더구나 아힘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기간이 1년 정도 였기 때문에 내가 그를 기억하는게 도리어 신기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아힘과 나는 자주 만났다.98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을 때 나는 독일 원정경기를 계획했었다.VFL 슈트트가르트팀과 경기를 하려고 알아 봤더니 감독이 아힘이었다.슈트트가르트는 당시 피파 부회장이었던 마이어 포펠트가 회장으로 있었다.당시 독일 국내리그 사정은 친선경기로 시간을 빼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그럼에도 내가 전화를 했더니 아힘은 딱 잘라서 거절을 못했다.나중에 우리쪽 사정으로 원정은 취소됐지만 그때 나는 아힘의 성품이 너무 착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그 후 클린스만 감독의 코치로 있으면서 더 자주 보게 되었고, 클린스만 후임으로 감독이 되었다.아힘이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표팀 감독이라는게 거친 일을 해야만 하는 자리인지라 걱정도 없지 않았다.

대표팀을 맡은 후 아힘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행여 이상하게 변했을까봐 약간 신경이 쓰였다.갑자기 코가 높아졌다든지 거만해졌다든지.....하하하.

이제 월드컵이 두달 남짓 남았다.감독에게는 스트레스가 최고점을 향해 그 지수를 높여가고 있는 시점이다.영국을 거쳐 독일에 도착한 나는 우선 아힘에게 문자를 보냈다.SBS에서 '차붐의 축구 동료들과 월드컵'이라는 특집을 만드는데 너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알렸다.그리고 다음날 전화를 했다.아힘은 라치오의 경기를 보기위해 로마에 있었다.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았다.그 다음날은 챔피언스리그를 보러 도르트문트에 간다고 했다.경기전 오후 4시 반쯤 도르트문트에 있는 호텔에서 보자고 하는데 나는 히딩크를 만나러 암스텔담에 가야했다.다음날은 또다시 새벽에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서 미팅을 하고 다시 뮨헨으로 간다고 했다.챔피언스리그 뮨헨과 맨유의 경기가 거기서 있었다.그러나 나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보러 아우스부르크에 가야 했다.이미 약속이 되어 있고 구단에서도 알고 있는 일이라 그냥 막 취소하기에는 미안해서 안된다.아힘도 나도 틈이 없이 빡빡한 스케쥴이다.서로 시간을 맞추느라 서로 몇번씩 전화를 하면서 '넌 너무 착하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결국 모처럼 프라이부르크의 집으로 돌아간 아힘의 점심시간을 뺏을 수 밖에 없었다.12시 반에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아힘은 "그래도 두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냐!"며 30 분을 당기자고 했다.그날도 아힘은 두 시 이후에 약속이 줄줄이 잡혀있었다.며칠만에 집으로 돌아간 것을 빤히 아는데 나는 염치없이 덥썩 그러자고 했다.정말 착하다. 이렇게 착하기는 쉽지 않다.

아힘이 만나자고 한 식당은 부자 노인들이 주로 다니는 아주 격조 높은 호텔 식당이었다.우리 SBS 스텝들은 고급 식당에 들어가기위해서 타고 다니던 미니버스안에서 가장 말쑥한 옷들로 갈아 입느라 바뻤다. 열흘만의 일이다. 페브리즈도 뿌렸다. 갑자기 모두 말쑥해 졌다.도착한 아힘은 스테프들에게 한사람 한사람 악수를 청했다.옷을 갈아입은 보람이 있다. 하하하"우리 스태프들이 너를 만난다고 아주 흥분했어"아힘은 왜?왜?를 연발하며 도리어 우리 스테프들한테 미안해하며 수줍어 했다.

나는 1981년 아힘이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왔을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여줬다.첫 마디가 "내 다리가 옆에 있는 부흐만 감독보다 더 가늘다"며 실망을 했다.듣고 보니 그렇다.하하하.사진속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서 너는 아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아힘도 모르겠다고 했다.그럼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지?그런 일이 한 두 번 일까만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사진을 찍었을까?

아힘은 비서도 없이 기사도 없이 혼자서 스케줄도 관리하고 운전도 하면서 다녔다.그럼에도 축구협회에서 자기한테 참 잘해주고 많이 도와주고 있다며 고마워했다.연어 스테이크를 먹었다.축구하는 사람들은 언제 만나도 축구얘기가 제일 재밌다.아힘도 역시 벨기에를 H조 최고로 꼽았다.스타가 수두룩한데다 지역 예선 경기를 너무 잘한 탓이다.

독일은 불과 얼마전까지 아힘의 보스였던 클린스만의 미국하고 같은 조다."프란쯔(바켄바우어)가 독일이 1위로 갈거라고 자신하더라!"고 전해줬다.독일땅에서 프란쯔의 지지를 받는것 만큼 든든한 일은 없다.아힘도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얘기가 끝나갈즈음 자기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내가 이제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내일 토니랑 (아힘도 프랑크 푸르트 시절 장비를 담당했던 토니가 챙겨주는 옷을 입고 경기를 했으니 우리들에게는 식구들 얘기를 한 셈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기로 해서 오늘 올라가면서 아울렛에 들렀다 갈거라고 얘기해줬다.꽃샘추위로 눈이 내리는 추운 날에 서울을 떠나와서 겨울양복만 잔뜩 들고 왔는데 여기는 꽃들이 이미 피고 이제 지려고 하는 참이었다.얇은 양복이 필요했다.어쩌다 보니 매일 카메라 앞에 서야하는 반 연예인이 된 탓에 옷 입는 것을 신경써야하는 처지가 되었다.내 얘기를 듣더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내가 코리나한테 전화해놨어 .VIP로 해줄거야. " .코리나는 아울렛에 VIP 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VIP에게는 20%를 추가로 더 할인해 준단다.아힘의 전화 한 통화로 우리 스태프들까지 갑자기 VIP가 되었다.아.....착한 아힘.

늘 하는 것처럼 아힘도 카메라 앞에서 "SBS 따봉!"을 해야했다.카메라팀은 호텔 앞에서 하고 싶어했다.기꺼이 따라 나왔다.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드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아힘은 "따봉!"을 했다.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서 가장 귀여운 따봉!이었다.아힘은 우리가 손님이라며 밥값을 내겠다고 서둘렀다. (위 사진)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밥값을 내는 법이다.한참이나 실갱이를 벌였는데 계산은 이미 SBS가 끝낸 후였다.하하하.

"요기! 난 너가 꼭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마음을 담아서 응원하마!"

이건 나의 진심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보는 인사치레가 아니었다.독일 대표팀이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감독이 순해서 팀이 너무 나약하다'며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아힘이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심성이 착한 아힘, 그가 35년전 그 모습 그대로 있어서 나는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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