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유쾌한 친구, 히딩크를 만나다

2014. 4. 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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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히딩크를 만났다

"60살? 그럼 넌 젊은이야!"

하하하.

지팡이를 짚고 내가 묵고있는 암스텔호텔로 찾아온 히딩크가 날더러 젊은이(jungerman)란다.히딩크와 나는 잠깐잠깐 만날 때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하고 하면서 헤어지는 정도였지 이렇게 마음 놓고 수다판을 벌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구스 히딩크.오늘 내가 새로 알게 된 그는 나이만큼 노련하고 덩치만큼 유쾌한 사람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쭉 적어봤다.히딩크를 꼭 만나고 싶었다.그래서 바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내가 연락을 한 바로 그 날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그를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발표했다.이렇게 되면 난감해 진다.바빠지기 시작할거고 그러면 못 볼 수도 있다.그래도 닥달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렸다.약속이 계속 밀리는데 거절할수 없는 사람이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그건 내가 누구보다 더 잘안다.

히딩크는 나에게 누구보다도 고마운 사람이다.나는 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히딩크가 아니었다면 당시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두리를 대표팀에 불러들일 만큼 배짱있는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그는 두리에게 참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아니 내가 그렇게 느꼈다.두리가 골을 넣었다.두리를 마땅찮아 하는 사람들이 잠시 조용해 졌다.그런데 다음 경기에서 히딩크는 두리를 노출시키지 않았다.겨우 회복한 상처를 잠시 덮어 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세심한 배려이고 마음씀이었다.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느꼈었다.

새벽 5시 기차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암스텔담까지 쫒아온 아내는 샴페인을 준비시켰다.돔페리뇽 빈티지 2004, 아주 고급 샴페인이다.그리고는 비를 맞으며 나가더니 오렌지색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와선 노 감독의 취임을 축하해주고 싶어했다.차붐의 아내가 아니라 차두리 엄마의 마음인것 같았다.

2002년 우리가 보았던 히딩크보다는 살이 많이 쪘다.내가 보기에 살이 찐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는 살이 빠졌다고 우긴다.수술하기 전 모습에 비해 살이 빠졌다는 얘기다.샴페인을 나누면서 히딩크의 유쾌함은 나에게로 전염되어 왔다.

"98년에 너가 나를 망하게 만들었잖아!"

나의 불만에 히딩크는 두손을 모으고 꼬꾸라지면서 "미안해!"를 연발했다.우리는 방이 떠나갈 듯 웃었다.나의 가장 아픈 이야기를 이렇게 즐겁게 쏟아낼 날이 내 인생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SBS 카메라 3대가 한 시간 가까이 돌아가는데,나도 그도 전혀 상관없는 기분이 되어 속에 있는 것들을 토해냈다.16년동안 쌓여 있었던 것들이다.후련하다.

히딩크가 지도했던 러시아 선수들,네덜란드하고 붙어있는 이웃나라 벨기에의 수퍼스타들,그리고 알제리 선수들까지 내 아이패드에 올려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함께 칭찬하고 감탄하고 걱정도 했다.이렇게 축구를 얘기할 때가 나는 가장 행복하다.내가 두리를 유독 좋아하는 것도 축구얘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동료의식때문이다.이런걸 '의기투합'이라고 하나?히딩크 역시 나 못지 않게 기분이 한껏 업 되었다."SBS 월드컵 따봉!" 을 함께 외치면서 웃을때는 나도 잠시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나같은 사람을 마치 거나하게 취한 것 처럼 풀어놓게 만드는 유쾌함은그 당시 상환에서 두리를 대표선수로 뽑아들이는 배짱과 함께내가 평생 가져볼수 없는 히딩크만의 재산이다.

내일 바켄바우어를 만나러 뮨헨으로 간다는 내 말에 안부 전해달라고 부탁한다.독일 친구들은 히딩크에게 히딩크는 나의 독일 친구들에게 안부를 부탁한다.이게 좁으면서도 하나의 끈을 같이 붙잡고 있는, 내가 사는 축구세계다.오늘은 분데스리가의 식구가 되어서 축구를 했던 나의 젊은 날이 새삼 고마워지는 가슴 찡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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