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내가 차붐입니다, 하하하!

풋볼리스트 2014. 4. 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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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돌아다니면서도 '따뜻한 축구'가 늘 숙제였다.재미난 일이생길 때마다 이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는데 컴퓨터에 앉아 정리를 할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구자철이랑 박주호가 있는 마인츠에 갔다가 오늘은 런던으로 다시 넘어가야 한다. 토트넘과 성용이네 팀(선덜랜드) 경기가 저녁에 있어서다. 토트넘에는 벨기에 선수들이 여럿 있고, 벨기에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가 속한 조에서 가장 스타가 많은 화려한 팀이다.

어제 마인츠에서 만난 투헬 감독은 이름이 토마스다. 키가 너무 커서 다부져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공을 썩 잘 찼을 것 같지 않은, 그러나 사람은 그만일 것 같은, 그래서 토마스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차, 다음 경기에 80분쯤 들어와서 한 골 넣어주면 어떨까요?""너희들 [나를 살만한] 돈이 있어?""아... 그게 문제구나!"

하하하.유쾌하고 귀여운(?) 친구였다.

자철이랑 주호는 마인츠의 스타다.훈련을 보러 나온 꼬마도 사인을 받겠다고 서 있었다.나에게는 관심이 아예 없다.다가가서 얘기했다."꼬먀야, 너 혹시 차붐이라고 아냐? 나도 분데스리가에서 골 많이 넣었는데."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나를 옆눈으로 흘겨보며 성가셔했다. 구단에서는 홍보 메시지를 남겨달라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느냐 호들갑인데 이 꼬마는 영 관심이 없다.그래도 이 이상한 할아버지가 궁금하기는 했는지 저쪽으로 가서는 친구들하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찾아보는 눈치였다. 갑자기 시끌시끌해지더니 꼬마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사진 찍자며 쫓아왔다. 이쯤되면 역전 성공이다.

짜아식. 내가 차붐이라니까. 하하하.

(사진/마인츠 구단 제공)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이렇게 말을 안하면 나를 모른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79년 입단했으니까 35년이 지났다. 40대 성인들도 자기가 꼬마였을때 아버지 손을 잡고 운동장에 와서 나를 보았던 기억을 얘기하는 상황이니 20~30대 청년들은 가끔 보게 되는 TV특집이나 과장섞인 구전을 통해서만 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시장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하자 '차붐' 얘기를 SBS 카메라 앞에 침을 튀기면서 마구 늘어 놓았다. 그는 한국하면 차붐이 떠오르는, 바로 그 세대였다. 어찌나 열심히 얘길하는지 더 듣기가 민망해서 "그게 나야. 내가 그 차붐이야!" 했더니 배만 뽈록 나온 이 아저씨가 쓰러지려고 했다. 모두들 난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들 하던데 나를 한눈에 못 알아보다니...여행이 즐겁다. 나를 못알아봐도 즐겁다.

뉴캐슬에 가서 성용이를 만났다. 큰맘먹고 와이프한테 성용이 주라고 용돈을 줬다. 200유로. 나에게는 엄청난 돈인데 이 녀석은 지가 돈을 많이 벌다보니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이것 밖에 안주는 내가 시시해보였던지 두리한테 바로 전화로 확인까지 한다.

"형, 아버님이 용돈으로 200유로를 주시는데..."

너무 짠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200유로? 야, 그거 우리 아버지 전 재산이야! 밥값은 니가 내야할 것 같다!""밥값이 300유로는 나올 것 같은데?""니가 맛있는거 사드려라!"

어차피 이럴거였다면 100유로만 줄 걸. 후회스럽다.소문은 빨라서 청용이라고 안 줄 수 없었다.맨체스터에서 청용이한테 또 200유로를 줬다.사흘만에 독일에 있는 녀석들도 다 알고 있어서 이제는 건너뛸 상황이 안됐다.

그래도 자철이는 달랐다. 용돈을 받아서 써야하는 유부남에게 200유로는 큰 돈이다.유일하게 나를 이해했다.와이프가 기름값으로 20~30유로만 준다니 지맘대로 쓰는 저 녀석들하고는 같을 수 없었다.이 녀석만 아주 만족한 분위기였다.주호도 장가를 가면 200유로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겠지.

그나저나 이제 동원이랑 정호한테도 가야하는데 돈이 없다.4월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5월치를 가불해야 할 형편이다.거기다 국내선수들까지 용돈을 줘야한다면 끝이다.(배)성재랑 (김)찬헌(PD)이는 "국내파라고 용돈을 차별하면 감독님 이미지가 확 나빠진다"고 조언한다.그런가?그건 그때가서 해결해야지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

화요일에는 런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히딩크를 만난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또 맡게 되었으니 축하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독일의 남쪽 아우크스부르크로...즐거운 여행은 계속된다.따뜻한... 식구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는 4월 한 달 유럽에서 여러분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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