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박주영, 그리고 우리들의 상처

풋볼리스트 2014. 3. 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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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그리스 전에서 박주영이가 결승골을 넣었다.

박주영이 얘기만 하면 어찌나 욕을 하는지 겁이 나서 이번에는 기자들이 물어도 대답을 아예 안했다.

지난 몇 번 주영이 얘기하고 먹은 욕이 내가 60 평생 살아오면서 먹었던 욕을 다 합친 것보다 곱절은 많았던 것 같다. 하하하.

언젠가는 나를 욕하는 댓글이 3000개가 넘은 적도 있었다.

사실 기사에 딸린 댓글들을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이번 경기가 끝나고는 황선홍 감독이랑 최용수 감독이[신태용도 그랬던거 같은데] 주영이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길래 슬그머니 아랫쪽 댓글을 봤더니 역시 난리가 났었다. 나한테만 그러는게 아닌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하하.

박주영.

주영이가 월드컵에 가야한다는 것에 대부분 전문가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지 않은걸 보면 박주영의 대표선수자격 논란의 핵심은 주영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짧게 자른 미국 교포가수가 군대에 가겠다고 해놓고 뒤로 다른 짓을 한게 알려지면서 국법을 뛰어넘는 여론과 민심의 재판을 받고 한국에 발을 못들여 놓은 적이 있고, 어느 대선후보 역시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지면서 전세가 완전히 뒤바뀐 적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병역의 의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그 심정을 이해한다.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 우리집 막내가 해병대에 입대한 후 훈련을 마치고 포항에 있는 보병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그 무섭다는 해병대 훈련을 받는 내내 아내는 해병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종일 걱정하고 불안해 하면서 기다렸다.

천자봉에 오른다고 할 즈음에서야 아내도 겨우 여유가 조금 생겨보였다. 어느날 두리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주 늦은 밤에 독일에 있는 두리 대신 조문을 하고 영안실에서 나와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데 라디오에서 우리 군함이 서해에서 가라앉았다고 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것 같아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티비를 켜고 소리없이 지켜보기를 몇일째 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두려움으로 긴장했지만 자식들이 군대에 가 있는 부모님들의 불안과 긴장에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당시 분위기는 '행여 전쟁이라도 하게 되면 우리아이들은.......?' 하는 막연한 상상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날 저녁엔가는 갑자기 공중전화로 "티비랑 인터넷 좀 켜 봐줘요. 혹시 전쟁 난거 아니예요?"하면서 겁에 질려 전화를 한 적도 있다. 놀래서 티비를 켜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장군들이 포항에 모이느라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뜨고 앉고 하니까 그 요란한 소리에 전쟁이 난줄 알고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다고 했다. 해병이...한심하다며 야단치는척 했지만 사실 내 마음도 많이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는중에도 훈련을 마친 이등병들은 연평도 백령도로 배치되고 있었다. 보통때도 나같은 부모들은 아들이 백령도에 배치되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그때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백령도에 배치받고 벨트를 조여맨 정복을 입고, 소리나는 까만 워커까지 신은 이등병들이 바닷바람 맞으며 부두에 도열해 백령도행 배편을 기다리는 사진이 해병대 카페에 뜨자 아내는 펑펑 울었다. 지금 저 녀석들이나 부모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 마음이겠냐며.

천안함의 상처가 크게 남아서 마음이 썩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6개월쯤 지났을때 연평도에서 해병이 두명이 세상을 떠났다. 월드컵을 다녀온 사이 막내는 통신장비를 들고 행진을 하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목 인대가 끊겨 수술을 하고 부대로 복귀한 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아마도 힘이 좋고 덩치가 있으니까 무거운 통신장비를 책임졌던 것 같은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던게 분명하다. 밤 늦게 분당 수도통합병원에 조문을 갔다. 부모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어쩔줄을 몰라 대성통곡을 하고 해병대 전우회 분들은 늦은시간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셨다. 차범근이라고 봉투에 썼다. 그래도 너무 미안해서 차두리라고 하나 더 썼다. 그리고 아내가 마저 차세찌라고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는 봉투를 하나 더 만들었다. 너무나 미안하고 면목이 없는데 달리 그들에게 미안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 정부에는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들도 군대에 보내지 않은 높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 높은 사람들은 아들같은 군인들의 심정이나 사기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는지, 그 상황에서 복무기간을 늘리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당사자격인 우리들은 정말 욕이 마구 나왔다.

내가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서 '아무렴 우리 아들이 남아서 나라를 지켜줘야지!'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진짜다.

독이 오른 아내는 '사지육신 멀쩡한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나의 적'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입대 직전 한일전에서 쇄골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깁스를 한 채 공군에 입대했던 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내무반만 지키다가 왔던 터여서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입장은 못됐지만 그 심정은 나도 같았다. 그래서 감히 나도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영이의 대표팀 복귀를 두고 또 어떤 친구들은 내가 대표팀을 잘 얘기해주는 댓가로 홍명보 감독과 두리를 대표팀에 뽑아주는 '거래'를 한거라고 추측한 모양이다. 왠만하면 웃을텐데 좀 씁쓸하다. 나는 홍명보 감독하고 그런 거래를 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다. 또 두리 역시 그렇게 까지 쓸모없는 선수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누가 감독을 하던지 대표팀을 공격하고 비난해 본 적이 없다. '거래'같은 것을 할 만큼 욕심을 부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추측을 하게 만든 것 역시 이 사회를 끌고가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씁쓸하고 염려스러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요즘 인터넷이나 티비 신문을 통해 보고 듣고 하는 엄청난 사건들 중 꽤 많은 것들이 조작과 거래 뭐 이런 떳떳하지 않은 일 들이다 보니, 젊은이들은 세상일이 다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화부터 내는것 같다.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더러는 그런 것들이 사실로 밝혀지고...

앞으로의 세상을 책임질 이 친구들에게 건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게 우리의 몫일터인데 정말 부끄럽고 또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조금 무거운 얘기를 하면 '너도 정치하려고 하냐?' '국회의원 나가려고 하냐?' 따지는 사람들이 꼭 있다. 아니, 축구감독은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건가요? 내가 좀 무식하기는 하지만 무식하다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걱정마십시요. 축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무슨 정치까지 하겠습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그렇게 주제 모르고 날뛰면 나 이혼당합니다.

그냥 박주영을 생각할 때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 생각 저 생각이 겹쳐 뒤늦게 꺼내본 얘깁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입은 상처를 아프게 건드리니 더 큰소리로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주영아, 너때문에 나는 욕심 사나운 노인이 되어 있고, 황선홍 최용수 신태용 같은 대단한 선배님들은 욕을 바가지로 먹고있다.

알지?

죽어라고 해라. 죽을만큼 해야한다.

꼭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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