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아들과 함께 기다리는 그리스戰

풋볼리스트 2014. 3. 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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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미국 경기 중계 여행 뒤끝은 유난히 피곤하고 힘들었다. 미국전을 준비하면서 상당히 많은 미국 경기들을 몇날 몇일 밤새워 돌려보며 공부를 했는데 준비한만큼 밀도 높은 해설을 할 만한 경기 내용이 아니어서 영 허망하고 아쉽다. 내가 이렇게 답답한데 팬들이라고 뭐 달랐겠는가.

이제 월드컵도 4개월 남짓 남았다. 월드컵 준비 기간은 항상 시끄럽다. 늘 그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웠던 때는 2002 월드컵을 앞둔 히딩크 감독 때였다.그때도 대표팀은 1.5진쯤 되는 팀이 장기간 LA 에서 합숙을 했었다. 당시 막내였던 두리도 거기 있었고 해설에 발을 담그고 준비하던 나도 거기에 있었다. 한 달 가까이 있었는데 나는 두리를 딱 한번 봤다. 떠날 때만 해도 기름기가 돌고 생기가 팔팔하던 녀석이 완전히 노숙자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시커멓게 탄데다 기름기는 훈련으로 다 짜내버린, 가마니처럼 거친 얼굴이었다. 거기다 입술까지 부르트고 터져서 도저히 정상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어느 팀이라도 동계 합숙은 모든 선수들을 까칠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지만 그때처럼 애가 '없어보이던[?]' 때는 처음이었다.

하루 휴가라서 나랑 아내가 묵는 호텔로 찾아온 것인데 종일 내 침대에서 잠만 자고 갔던 기억이 난다. 두리 입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끝없이 세어나왔다. 힘들어서 죽겠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두리는 대표선수가 된 즐거움과 신기함이 아직 그득하던 때라서 다른 선배들에 비해 그렇게 '쌩으로' 힘들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빠, 대표선수가 되니까 훈련하는데 돈도 주네????!!!!!!"당시 두리는 돈을 버는 프로 선수가 아니었다. 엄마한테 한달에 15만원씩 용돈을 받으면서 아껴 쓰라는 잔소리는 100만원 급으로 듣던 대학생 때였다.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축구선수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훈련을 했을 뿐인데도 '훈련비'라는 것을 주니까 너무 신기해서 나한테 몇번씩 자랑을 하다가 엄마한테 통장째 압수당했다. 하하하.

그때 대표팀은 지금 FC서울 감독인 최용수와 두리가 최전방 투톱을 섰다. 중계하는 내가 보기에도 발이 땅에 붙어있는지 떠다니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선수들의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몇 일쯤 밤을 세우고 나면 머리도 몸도 띵하면서 몸도 판단력도 컨트럴이 안되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우리 선수들이 바로 그런 상태로 경기를 하는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 몸을 가진 선수들로는 조직력을 테스트하지는 않는다. 아니 조직력을 테스트하려면 그런 몸으로 운동장에 내놓지 않는다.어떤 날은 오후에 경기가 있음에도 오전 훈련을 '빡쎄게'[표현이 거칠지만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못찾겠다..]한 뒤에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경기 내용은 당연히 엉망이었고, 팬들이 열을 받아 흥분하고 화를 내는 것 역시 당연한 상황이었다. 5:0, 즉 '오대영'은 히딩크의 한국 이름이 되고 말았다.

히딩크는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없는 기술보다는 극한 상황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을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는 것이 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인간이 고통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한계가 참 끝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히팅크가 노린 바로 그 극기 훈련은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돌려주었다.무더운 6월의 날씨에 연장전까지 뛰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나나 시청자들까지도 '이제는 도저히 더 못뛰겠구나...'하는 순간에도 우리 선수들은 훈련된 투혼으로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물론 온 국민들의 응원 열기 역시 같은 몫으로 선수들을 일으켜 세웠지만 그런 훈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들이 하는 그 고되고 힘든 훈련은 결국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과 같은 목적에서 진행된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나에게 "(경기력이 떨어지니) 좀 까달라!!"고 했고, 나는 훈련의 이유가 분명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수 없다고 했다. 걱정이 넘친 TV에서는 생방송으로 격렬하게 토론까지 했고, 온 나라는 이보다 더 시끄러울수 없을만큼 시끄러웠다.때가 때이니 만큼 신문들은 너도나도 할것없이 축구 지면을 한없이 넓혔고, 모든 방송이 월드컵 특집을 편성하고 보도하면서 축구가 '국민교양 필수과목' 정도로 등극했던 때였다. 그러다보니 나만보면 어려운 전술이니 작전, 용병술같은 것들을 가지고 어찌나 따지고 묻는지 목욕탕 가기가 겁날 정도였다. 욕조에 자칫 잘못 들어갔다가는 끝나지 않은 열변때문에 도중에 나오지도 못하고 물풍선이 되고 말 정도였다.

그런 열기와 반대로 대표팀은 평가전만 하면 빌빌거리고 맥을 못추니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주목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조바심에 대표팀은 국민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인들의 정서와는 전혀 동떨어진 엘리자벳이라는 '여자친구'의 존재까지 불에 기름 끼얹는 것처럼 팬들을 자극했었다. 선수들이 합숙을 하는 현지 호텔에 엘리자벳이 함께 묵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까지 일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일이 이렇게 시끄럽자 히딩크는 가삼현 총장을 만나 한국의 감독직을 그만두겠다고 했고 그 옆에 있던 여자친구 엘리자벳은 그러면 안된다고 다독였다고 한다. [이 얘기는 당시 국제업무를 총괄했던 당사자가 직접 들려준 얘기다.]

아슬아슬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마치 그런 우려가 있기라도 했냐는 듯 잘 끝났다. 이제 우리는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고마운 사람으로 히딩크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결과적으로 히딩크가 홀랜더[뱃사람] 다운 배짱으로 그 말많은 훈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무한정으로 뛸수있는 정신력과 의지를 키울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엘리자벳이 있어서 히딩크가 한국에 계속 있을 수 있었던게 참 다행인 결과가 되었다.세상사라는게 참.........

승부차기를 끝내고 오른 팔을 쭈욱 뻗고 승리를 알리던 홍명보선수가 이제 감독이 되어서 월드컵을 준비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이제 다시 축구가 시끄럽다. 시끄럽다는 것은 축구가 다시 무대의 중심에 섰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그 시끄러움이 무척 반가운 사람이다.브라질을 우승시킨 내 친구 빠에이라 감독은 "80이 넘은 우리 엄마도 나의 선수 선발에 간섭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팬들의 특권이다.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에 나온 클린턴 전 대통령이 우리들[대통령들]도 바보는 아니라고 해서 크게 웃었던 적이 있다. 모두가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고, 잘못되고 있는 일들일수록 관심과 비난 때문에 더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보니 마치 멍청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듯 조롱하고 즐기는 분위기를 얘기한 것이다.

하하하. 맞다.그러나 상관없다.

오늘밤 그리스 경기를 마치면 수많은 자칭 타칭 전문가들이 새로 태어날 것이다.홍명보 감독보다 자신이 더 잘할 것 같은 기분으로.환영합니다!!!당신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F1의 세계적인 영웅이자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맨인, 그리고 두리가 존경하는 미샤엘 슈마허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에 아내가 오래 전부터 두리한테 여러 차례 부탁하는 걸 들었다. 슈마허의 인간성을 한국팬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한 꼭지 써보라고. 동계훈련을 떠나기 전부터니까 언젯적 얘긴가 싶은데 오늘 뜬금없이 메일로 글이 왔다.

"엄마 메일 열어 보세요. 슈마허 얘기는 아닌데 그냥 적어 봤어요"

두리가 글을 쓰면 아내는 무조건 칭찬이다. 얘기 거리를 잘 찾는다느니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안다는니..하면서.나는 아니다. 맞춤법이 왜 틀리냐로 시작해서 물음표와 느낌표가 왜 구분이 안돼냐? 글이 이렇게 길면 언제 숨을 쉬느냐...까지.

조금전 갑자기 두리 멜을 받더니 내 원고를 빼고 두리걸 올리자고 한다.오늘 귀네슈를 만나기로 해서 기껏 부지런히 썼더니!

그나저나 슈마허 얘기를 쓰라니까 왜 대표팀 얘기를 쓴 건지.암튼 그런 사정으로 오늘은 '따뜻한 축구'를 두 개가 올리게 생겼다.

이번엔 두리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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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주장이자 수 년간 바르셀로나 수비를 책임졌던 푸욜이 팀을 떠난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높은 레벨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욜'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아니 지금도 정말 대단하다.그는 그만이 가진 장점으로 수 년간 최고의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 남았다.푸욜은 어쩌면 바르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선수다.피케나 부스케츠, 아니면 예전에 마르케스처럼 수비에서부터 정교하게 공격을 작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은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그것은 아마 팬들이 푸욜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크게 봐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한국에 들어온 지 정확히 일년이 됐다.장시간 한국 축구 팬들의 생각과 문화를 접할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였다.유럽과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바로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인것 같다.유럽은 선수의 장점을 크게 보는 것 같다 .반대로 우리는 선수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는 그동안 우리 축구 문화는 잘못한 점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배운 탓에 온전하게 즐기는 행복을 못누리는게 아쉽다고 하셨다.독일은 선수를 평가할 때 70점 정도에 놓고 시작하는 것 같다.즉, 분데스리가에서 뛸 정도면 70점은 이미 된다는 것이다.그러니 나름대로 우수한 선수인 것은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그러고 난 뒤에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차츰 발전 해나가는 선수에게 점수를 더 준다.

반대로 우리는 100에서 시작한다.즉 완벽해야 한다.그리고 나서 완벽하지 못한 선수의 실수, 단점을 찾아서 점수를 깎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선수는 없다.내가 본 K리그에는 분명 좋은 가능성을 가진 선수가 많다.물론 그 숫자가 독일이나 다른 유럽 국가 보다는 적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좋은 장점을 가진 선수들은 분명히 있다.

대표팀은 소속팀과 다르다. 많이 다르다.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가 소속팀에서 보여준 기량을 곧장 대표팀에서 그대로 보여주기는 힘들다.문제는 대표팀은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줄 시간적 여유가 소속팀에 비해 많이 적다는 것이다.즉 대표팀에서는 한 두 경기만에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팬들도 대표팀에 뽑힐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면 그의 장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조금은 시간을 주고 기다려줬으면 한다.우리나라는 선수층이 두껍지 않다.19~20세 때부터 바로 두각을 나타내고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는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우리는 선수를 만들어서 써야 한다. 즉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최대한 고칠수 있게 해야 한다.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이 선수들도 모두 K리그에서 기다려준 덕택에 저만큼 성장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프로라면 비판은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안고 가야 한다.하지만 선수의 단점이 아닌 장점부터 보고 비판을 하게 된다면, 그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밤은 다 함께 우리 선수들의 장점을 더 많이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좀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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