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나의 '베프' 차두리는 짠돌이 (영상)

2014. 2.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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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는 엄마한테 매주 10만원씩 생활비를 낸다.혼자쓰기에는 너무 넓다고 할만큼 큰 새 집을 통으로 쓰면서 빨래 청소 식사까지 해결해준다.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게 저렴한 하숙비다.

그런데 두리는 기회만 있으면 이 돈을 떼어 먹는다.그러고는 엄마랑 싸운다.얼마전 두리가 장기간 합숙을 나갔다가 돌아왔다.괌에서 한 달, 그리고 일본에서 3주 정도였으니 꽤 오랫만에 온 것이다.이렇게 되면 아내랑 두리의 계산이 상당히 복잡해진다.거기다 두리가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의 밥도 안 사놓고 합숙을 가버려서, 밤중에 고양이 밥 사러 돌아다니느라 돈을 썼으니 계산은 더 꼬이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밀린 액수가 만만치 않았던지 두리는 청소를 한 달에 한 번만 해주고 한달에 10만원만 받으라 짜증이고, 엄마는 전기 수도 난방비가 얼만지 아냐고 목소리를 높인다.결국 두리가 없는 동안의 생활비를 모두 탕감해주는 대신, 앞으로 매주 10만원씩만큼은 절대 떼어먹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신경전이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활비 10만원를 내는 날이면 두리 지갑에는 왜 7만원이나 8만원밖에 없는 것일까?식탁앞에서 벌이는 복잡한 돈 계산을 지켜보는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이게 전부라며 7만원이나 8만원을 내놓고는 "내일 은행에서 찾아다 드릴게요!"하면서 넘어간다.아내는 "너 그렇게 말해놓고 언제 갖다 준 적 있었어?" 하고 따지지만 나머지 돈을 받는 것은 나도 단 한번 본 적이 없다. 돈도 잘버는 놈이 좀 그렇다.

합숙을 다녀와서 모처럼 저녁을 먹게 되어 있던 지난 수요일 저녁에는 '돈을 아껴쓰라!'는, 엄마로부터 늘 듣는 잔소리가 예약되어있는 타이밍인데 그날 오후에 대표선수 명단이 발표되었다.일순간 온 가족이 조용해 졌다. 생활처럼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 우리집 막내의 예리한 분석에 의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닥치면 엄마가 싸늘하게 말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그날 이후 말이 없다.

어제 저녁 밥을 먹는데 두리가 훈련을 마치고 왔다. "축하한다!"고 악수를 해줬지만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한마디로는 얘기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선발이 됐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는 것이 신경쓰였는지 두리가 문자를 보냈다."아빠도 엄마도 기쁘셔요?"그냥 기쁘다고 하기에는 뭔가 걱정스럽다.그렇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기에는 두리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어른이다.그래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우리 사위한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이미 십 년이 넘게 우리집 식구가 되었으니 지금 이 일이 우리한테 전화해서 축하해 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얘기다.어쩌면 본인도 우리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뭔가 조금은 난감하고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그러면서도 대견하고 두리가 고마운......

두리는 꼭 대표선수를 하고 싶어했다. 정말로 하고 싶어했다.그래서 한결같이 참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그 마음을 나도 아내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물론 두리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도 알고 있다.더러 선배들이 두리한테 농담처럼 얘기한다고 했다. "야, 너는 이 힘든 운동을 왜 하냐?"고.아마도 '부자 아빠가 있는데...'라는 뜻인 것 같다.

보기에 따라 두리는 아주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축구를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절실하다.사람들은 갖가지 시선으로 두리를 바라보고 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도 있고 미워하고 한심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내가 아빠로서 가장 고마운 것은 반듯한 축구선수, 열심히 인생을 사는 모범적인 인간이고 싶어하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사는 성숙함이다. 그런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동안 두리는 차범근의 아들이라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그런 보이지 않는 힘은 두리에게 자신감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수 있게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두리를 좋아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빡빡하게 인생을 사는 아빠때문에 두리는 축구를 하면서 참 많은 상처를 받고 또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98년 월드컵을 겪을때에는 이미 정해졌던 대학을 못갈 뻔 하기도 했다.중국에 있던 내가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들어왔더니 정말 두리의 이름이 입학예정자 명단에 없었다. 누군가 한국축구에 발을 못붙이게 해야한다고 했다더니 정말이었다.아빠로서 가장 마음아팠던 시기였다.

반대로 나는 두리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욕을 먹어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스타의 아들로 풍요롭고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지만 두리는 아버지인 내가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상황이 두리를 어렵게 몰고 가도 두리는 나이보다 지혜롭게 그것들을 극복해나갔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때 16강 경기를 마치고 두리는 전세계에 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정말 펑펑 울었다. 지금도 우리 가족들만 두리가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알고 있을 뿐이다. 두리에게는 참 힘든 월드컵이었고 고맙게도 팬들은 두리를 진심으로 지켜줬다. 그 때 두리도 오범석이도 그 나이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처를 입었다. 그러니 어린애에 불과한 오범석이가 받을 상처 역시 두리나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역지사지. 두리는 오범석이를 위로하고 걱정했다. 월드컵 후에도 서로 문자를 주고받는 걸 보니 둘 다 좋은 녀석들이다.

그런데 두리가 다시 그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족들은 축하해야 할 일인데도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내 탓이다. 이런 기억들을 더듬다 보면 두리에게 빚을 지고있는 나를 확인하곤한다.그래서 두리를 보면 늘 마음이 쏴--!하다.나처럼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수 있다는 것도 두리를 보면서 배웠다.

지난해 환갑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나의 인생의 기둥이 되어주었던 60명'을 기억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적이 있다.내 인생 최고의 친구는 누굴까?며칠을 생각했다.결론은 두리였다.물론 두리의 베프는 차범근이 아닐 것이다. 하하하.

이제 두리는 겁많고 착하기만 했던 아들이 아닌 내가 의지하는 존재로 컸다. 내 인생의 축복이다.언제든지 내 편이 되어주고 끊임없이 나를 이해해주며 항상 나의 이상과 삶을 불평없이 지지해주는 아들이다.

차두리!나의 베프 차두리 화이팅이다!

그리고 대표팀 수당받으면 엄마 생활비도 좀 올려드려라.10만원이 뭐냐? 아, 짜다!

(http://www.youtube.com/v/83l_xnNn9UQ?version=3 & hl=ko_KR & rel=0)

[차붐TV] 어느 부자의 흔한(?) 축구 토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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