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할아버지의 꿈

조회수 2014. 1. 17.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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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들렀다가 자동차 전시장에 갔던 적이 있다. 화장실에 작은 원탁까지 갖춘 소형 미니버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가 되기 전이었고 상당히 바쁜 때였다.'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저 차를 꼭 사야지. 애들이 싸울 테니까 의자마다 이름 표를 만들어서 붙여주고 내가 직접 운전해서 유치원이랑 학교로 데리러 가야지. 애들이 나를 엄청 반기겠지?'

나중을 상상하며 십 년이 훨씬 넘게 이런 꿈을 꾸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나의 이런 시시콜콜한 꿈을 얘기하곤 했었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그런데 이제 손주가 넷인 할아버지가 되었다. 제일 큰 외손주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다. 손주 넷 중에 가장 숫기가 없고 예민하다. 그래서 할머니의 관심과 손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이번 감기는 참 묘하고 질기다. 아내가 감기 때문에 영 기운이 없어서 비실거리는데 집에 온 손주들이 자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내는 "할머니는 너희들이 자고 가고 싶어해서 너무 고마운데 담 주에 와서 자고 가자"며 겨우 달래서 보냈다.손주들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싶어 하는 게 정말 고맙다. 왜 그럴까? 친손주도 외손주도 우리 집에 오면 집으로 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나랑 아내는 손주들의 맘을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비굴할 정도로.... 하하!

두리까지 끌고 손주들 넷과 줄줄이 동대문 장난감 시장을 누비는 재미는 말로 다 얘기해 줄 수가 없다. 가끔 '차두리 왔다'고 '싸인 받으라'고 소리를 치는 눈치 없는 가게 아저씨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곤란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재미 다. 발 디딜 틈이 없는 롯데월드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것도 손주들이 있으니까 즐거웠다.

평창동에 집을 지으면서 가장 먼저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 손주들이었다. 설계를 하고 인테리어를 도와주던 분들도 말끝마다 우리 손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하는 우리 부부를 신기해 했다. 손주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을 구석구석에 만들었다. 옥상에는 커다란 욕조를 만들어서 여름이면 온종일 물놀이를 한다. 물놀이에 정신을 팔다가 배가 고프면 옆에 그냥 심어놓은 방울 토마토를 컵으로 하나 가득 따서 우걱우걱 먹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머리 속이 상쾌해진다.

지하실에는 옛날 동네 목욕탕에 있음직한 탕이 있다. 수도꼭지도 동네 목욕탕 수준이다. 이것도 손주들한테 점수 따려고 애쓴 흔적이다. 아이들은 확실히 물을 좋아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일이는 요즘 '또봇'에 빠졌다. 자동차가 네 갠가 다섯 개가 붙어있는 또봇을 들고는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친다. 주인공이 두리인 것도 하나인 것도 다 안다.

우리 손녀딸들은 둘 다 씩씩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주놀이를 최고로 좋아한다. 모든 여자아이들에게는 '공주'의 꿈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고민에 빠졌다. 큰 녀석에 이어서 둘째 손녀가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숲 자람터에서 놀기만 하는 서영이는 노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 또래 애들이면 다 한다는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도 아직 모른다.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우리 딸 하나는 자기 애들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학교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학교를 찾고 있는데 없단다. 한글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도 일정수준 이상이어야 입학원서를 낼 수 있다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공립학교의 사정도 비슷한 모양이다. 이 정도면 우리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큰일난 거 아닌가 싶다.

큰 녀석은 독일학교엘 다닌다. 2학년인데도 아직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지만 소심한 성격에 비해 그다지 열등감을 안 느끼는 것을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학습만 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잘 지도해주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게으른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움을 줄 수도 없으니 그나마 참 다행이다.

25년전 독일에서 처음 귀국했을 때 그러니까 하나랑 두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시험 점수가 나쁘다고 아이들 손바닥을 때리더라는 얘기를 듣고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다. 시험점수가 낮은 것이 나쁜 짓은 아닐 텐데 왜 그게 체벌 대상이 되는 건지...

독일 얘길 자꾸 해서 미안한데, 거기서는 아이들이 생일이면 그날은 숙제를 안 해도 됐다.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다. 나도 그게 정말 좋은 선물인 것 같아서 흐뭇했다. 또 방학이면 그냥 놀았다. 온종일 놀았다. 그것도 좋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는데 적응을 잘 못했고 그래도 우리는 우리 식으로 꿋꿋하게 키웠다. 바르게 건강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고 위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로 자랐다. 올바른 삶을 배우지 못한 수재들보다 나는 우리아이들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려고 늘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우리 손주들에게도 주장해야 하는 건지 자신이 없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겐 자존감도 허락하지 않는 학교나 친구들 분위기가 우리 손주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자라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다. 물론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공부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만 능력을 나누는 바람에 다방면의 많은 인재들을 공연한 열등생으로 만들어서 사회적 인적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닐 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래서 지난 해 세계를 누비는 싸이를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통쾌했다. 내가 오늘 너무 잘난 척을 하고 있다...하하.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기 시작 한 것은 12년전 보았던 소형버스가 수입된다는 기사를 읽고 혹시 아내가 보았으면..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딴 데로 이야기가 흘러버렸다. 자동차 의자마다 이름표를 붙여줄 손주들이 이제 넷이고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은 내가 유치원이랑 학교에 데리러 갈수 있는데...마나님께서 한번 고려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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