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오늘, 영화 보러 갑니다!

조회수 2013. 12. 30. 17: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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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가 내일 밤 2013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을 한단다.97년에는 내가 보신각 종을 쳤다. 그때는 고등학생이던 두리가 신이나서 나를 따라갔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월드컵 예선통과를 아주 멋있게 해내서 종을 치는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차두리는 지가 뭘 한 게 있다고 종을 치러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각 분야에서 수고하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한다니까 두리는 그냥 FC서울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 대표로 가는 것 같다. 그 정도라면 차두리한테는 어울릴 수 있겠다.

이날 행사가 끝나면 시장님이랑 참석자 모두가 명동에 칼국수를 먹으러 간다며 서울시에서 한 사람씩은 같이 와도 된다고 했단다. 아빠가 가시고 싶으면 같이 가셔도 된다고 선심쓰듯 잘난 척을 한다.

"내가 너를 따라가라고?"

순간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지만 조금 지나니까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슬슬 생긴다. 그런데 내가 두리를 따라가면 애들 말처럼 폼이 망가지는 것일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SBS 월드컵 CF에서도 두리한테 내가 밀리는 분위기라는 게 중론인데 내가 두리를 따라 종치는 것을 구경가면 좀 그렇기는 하다. 요즘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약해지는 것은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뭘 하자고 하면 감지덕지 무조건 고맙다는 것이다.

< 사진 : 우리집 앞뜰에서의 즐거운 한 때다. >

오늘은 우리 SBS 중계팀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송년모임으로 모인다. 사실 이럴 때면 두리엄마가 확실한 '물주'니까 나는 당연히 중요한 사람인데도 도리어 젊은 친구들이 싫다고 안하고 놀아주는 게 그저 황송할 뿐이다. 배성재, 김찬헌 피디에 박문성, 장지현, 김동완 그리고 권용민, 이화영, 차두리 또 항상 열심이어서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서형욱에 우리들의 영원한 물주 오은미 여사까지! 모두 열심이고 가끔씩 모여서 식사를 하고 싶은 좋은 친구들이다.

지난 해에는 우리집에서 송년모임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저녁모임이 마땅하지가 않다. 성재가 8시 뉴스팀으로 가는 바람에 주중 저녁은 불가능하고 주말 저녁은 EPL 중계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한다. 할 수 없이 계획을 바꿨다. 모두들 만두랑 칼국수를 먹고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단관하는 걸로 송년모임을 대신하자고 했다. 좋은 생각이다. 점심만 먹으면 내가 돈을 너무 적게 쓰는 것처럼 보여질텐데 영화까지 보면 그래도 좀 볼륨이 있는 송년회가 될 듯하다.

평소에 나는 영화를 안본다. 거의 안본다. 영화관을 가본 지가 몇십년은 된것 같다.여행을 많이 하니까 비행기 안에서 가끔 영화를 보기는 하는데 요즈음은 기내에서도 축구경기를 컴퓨터로 몇 경기씩이나 볼 수 있어서 그거 보느라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됐다.

그래서 나는 영화 배우도 영화 쪽 소식도 전혀 모른다. 언젠가 프랑크푸르트 공항 라운지에서 야구모자를 쓴 어떤 사람이 자신이 '김기덕'이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 나는 그를 몰랐다. 집에 와서 두리한테 김기덕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그 분은 자기 세계가 분명한 천재수준의 감독'이라고 가르켜줘서 겨우 알았다.

그 이후로는 인터넷에 이름이 뜨면 보게 되는데 그때는 야구모자를 쓰고 있더니 요즘은 머리를 기른 것 같다. 살도 찐것 같고.

김기덕 감독님, 그때 미안했습니다. 내가 사실 무식하기는 합니다. 축구 말고는 아는게 없어서..

그런 내가 오늘 정말로 몇십년만에 영화관을 간다."나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감히 이렇게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따라 나선다.

젊은 친구들이 나를 데려가 주는 것이 황송해서 따라 나서는 것도 있지만 혹시 자기들하고 감이 다르다고 나를 왕따시킬까봐 따라 나서는 것도 없지는 않다. 더구나 성재는 그동안 내가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컴퓨터와 각종 기기를 살 수 있도록 두리엄마를 조르고 회유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터라 성재가 하는 일에 감히 토를 달아서는 안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 사진 : 나는 성재의 '을'이다. 하하하. >

지금 분위기로는 성재가 나의 '갑'이다. 몇가지 더 남아있는 '구매 목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성재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재가 며칠 전에 노트북을 새로 샀다. 황금색 노트북 사진을 두리엄마한테 보내주고는 어느 장사꾼도 못따라 갈 만큼 기막힌 사용후기를 장황하게 적었다. 또 두리 엄마한테 자판이 쫀득거린다는 둥 하면서 자랑멘트를 끊임없이 보내는 눈치다. 그리고는 드디어 '감독님이 브라질 월드컵 가시기 전에 틀림없이 이거 사실 것이다에 저는 3만원을 겁니다!"로 운을 뗐다.

하하하. 우리 성재의 센스! 이제 시작하는거지!!!!

나는 당분간 그냥 성재가 하자는대로 할거다. 영화관도 갈거고 칼국수도 먹을거고. 성재가 앞장서면 컴퓨터도 새로 생기고 아이패드는 물론이고 황금색 노트북까지 생길수 있는데 뭔들 못하겠나.

하하하.

오늘은 날씨도 풀린다고 한다.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이 만두와 칼국수를 먹고 영화관으로 쭉 가는 것은 정말 즐거울 것 같다. 두리와 성재를 양쪽에 거느리면 나는 저절로 힘이 생기고 두리엄마는 약해진다. 아내가 좋아하는 이 두녀석은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나는 이 두 녀석들이 '나의 갑' 임을 인정한다. 나도 이제 그정도의 거래는 할만큼 노련해 졌다.

이래서 오늘 하루는 또 아침부터 즐겁다.기대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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